[이웅진의 '화려한 싱글은 없다'] <18> 신혼여행의 역발상


저의 결혼식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사업을 막 시작한 때라 여러모로 힘이 들었고, 또 추수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도 걱정거리를 안겼습니다. 어려운 형편 탓에 제대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픕니다. 서울 근처에서 하루를 보낸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변변한 사진 한 장 없는 제 신혼여행은 이상하리 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 시절이 생각날 때면 곁에 있는 아내를 쳐다봅니다. 그러면 고마움, 사랑스러움, 이런 감정이 꽉 차오릅니다.
저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더군요.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사업가입니다. 그 또한 결혼 무렵 처지가 어려워서 친구의 차를 빌려 서울, 경기 일대를 도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이렇게 초라하게 보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살면서 아쉬움도 있었을 테지요. 이후 사업이 잘 돼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이 부부를 단단히 결속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눈물의 신혼여행이라고 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신혼여행만 생각하면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아내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추억이 그를 참게 하고,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나요? 좋은 곳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싸구려 여관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보며 별을 세던 신혼여행의 낭만은 느끼지 못했답니다.
결혼생활의 나이테가 어느 정도 늘게 되면 부부를 이어주는 것은 대부분 신혼여행의 추억입니다. 부부가 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케 해준 날들이지요. 안락하고 화려한 신혼여행보다는 준비과정과 내용면에서 충만해야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입니다. 부모 세대에는 온천이 최고의 신혼여행지였습니다. 1970, 80년대에는 경주나 제주도에 많이들 갔습니다. 해외여행이 본격화한 90년 이후에는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대세입니다. 참고로 2009년도 조사를 보면 해외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커플이 응답자의 81.1%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남녀라면 이러한 추세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편리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신혼여행은 대개 패키지를 택합니다. 본인의 취향은 배려되지 못한 채 여행사의 일정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몇 쌍이 그룹을 이뤄 함께 다니므로 저녁이나 돼야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멀리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으로 떠난다면, 오고 가는 데 비행기 안에서 1, 2일을 보내야 합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넉넉지 않고, 여러 면에서 제한적인 여행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해외로 신혼여행을 갑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심리도 있겠고, 국내 여행지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생 추억으로 남을 신혼여행의 정답은 작금과 같은 유형은 아닐 듯 싶습니다. 해외여행 비용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획자가 돼 특별한 코스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해외로 나가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들 하는대로 따라하지 말고, 신혼여행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패키지 여행은 좀 더 나이가 들고, 안정적인 패턴을 원하는 결혼 10, 20년째에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남녀본색]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신혼부부의 연도별 신혼여행 비율 추이를 조사했다. 출처는 격년으로 이뤄지는 연구소의 결혼비용보고서다. 조사 결과, 2003년에 31.3%였던 국내여행은 2009년 18.9%로 감소했다. 반면 해외여행은 같은 기간 68.8%에서 81.1%로 증가했다. 신혼여행지는 2009년 동남아시아(46.4%), 오세아니아(12.3%), 유럽(9.7%), 미주(5.7%), 동아시아(5.4%), 기타(1.4%) 순이었다. 1년이면 32만~35만쌍이 결혼한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해외로 신혼여행을 간다. 신혼부부당 여행경비를 400만원 정도로 계산하면, 신혼여행으로만 한 해 1조원이 이상이 외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관광정책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객 유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내국인, 특히 신혼부부들이 국내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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