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우유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
'유기농'이라는 단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믿음은 의외로 강하다. 그 믿음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특별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안전할 것이라는 신뢰이다. 유기농 우유는 유기농 사료를 먹은 젖소가 생산한 우유를 말한다.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의 성분은 다르지 않다. 우유 생산 업체와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기농 우유에 특별한 성분이 없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우유 전문가로 꼽히는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는 "국내 젖소 품종은 99%가 홀스타인종이다. 같은 종에서 생산된 우유는 성분이 다르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한 우유업체 관계자도 "우유업체 사이에 경쟁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부담이 팽배하다. 이런 과정에서 기능성 우유나 유기농 우유가 탄생했다. 유기농 우유라고 해서 성분이 뛰어난 제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기농 우유가 아이들의 성장 발육이나 가족 건강에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일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기농 우유는 일반 우유보다 2~3배 비싼 값에 팔린다. 이 가격에는 젖소 관리 비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고 있는 매일유업 관계자는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의 차이점은 제품의 주성분인 원유의 품질 관리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를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 유기농 우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기농 농산물 인증 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정한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기준은 사료·목초지·축사·방목장(운동장) 면적·인증 유무 등 10가지에 달한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에게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사료를 제공한다. 젖소가 마음껏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넓은 초지도 갖추어야 한다. 축사도 일반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 축사보다 넓다. 젖소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방목장 면적 기준과 2급수 이상의 생활용수 사용, 중금속 토양 오염 기준, 치료할 때 전담 수의사 처방 등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일반 우유에는 초지·축사·방목장과 관련한 별도 규정이 없다. 대신 축산법에 따라 마리당 면적이 아닌 전체 축사 면적만 따질 뿐이다. 생활용수나 중금속 관련 규정도 적용받지 않고, 수의사 처방 없이 목장주가 아픈 젖소에 대해 처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관령 목장의 젖소들. ⓒ연합뉴스 |
안전성·품질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어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 관리 조건이 이처럼 까다롭다 보니 유기농 인증을 받은 목장은 전국 20여 곳에 불과하다. 많은 관리 비용과 적은 생산량으로 인해 유기농 우유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우유업체 관계자는 "유기농 우유나 일반 우유를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비싼 유기농 우유를 선택하는 것은 우유 자체가 아니라 자연 보호, 동물 보호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가격이 비싼 만큼 안전성은 뛰어날까? 전문가들은 일반 우유에 비해 유기농 우유의 안전성이 뛰어나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서울우유를 생산하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유기농 우유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도환 서울우유 중앙연구소 계장은 "서울우유도 유기농 우유 생산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생산 라인을 돌리지 않고 있다. 초지에서 뜯어먹는 사료 외에 보충해주는 사료가 농후사료이다. 옥수수, 콩이 주원료인데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 사료를 하나하나 검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유기농 사료라고 하지만 100% 안전하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인증 제도이다. 유기농 인증에는 국내 인증과 국제 인증이 있다. 국내 인증은 우유를 짜내기 6개월 전에만 유기농 사료를 먹이면 된다. 국제 인증을 받으려면 송아지 때부터 유기농법으로 키워져야 한다. 일부 업체는 국내 인증보다 더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획득한 유기농 우유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인증 제도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유기농 우유 총판업자는 "국가 기관이 아니라 민간 단체가 국제 인증을 내준다. 사실상 우유 생산, 유통 설비 등을 평가·분석·관리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수수료를 받고 인증해주는 상황에서 인증 제도를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유기농 우유가 소비자에게 특별한 우유로 인식되자, 일반 우유가 역차별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유기농 우유에 비해 일반 우유는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젖소에게서 갓 짜낸 우유를 원유(原乳)라고 한다. 원유에는 세균이 있다. 살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우리가 마시는 우유가 된다. 원유에 있는 세균 수에 따라 우유의 위생 등급이 결정된다. 등급 판정은 농림수산식품부와 낙농진흥회가 정한 우유 산정 체계 기준에 따른다. 1A 등급 우유는 ㎖당 세균 수가 3만개 이하, 1B 등급은 ㎖당 3만~10만개이다. 유제품업계에서는 흔히 1A와 1B 등급을 통틀어 '1등급 우유'라고 부른다. 1993년 원유 위생 등급이 도입된 이후 1등급 원유가 98~99%를 차지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우유는 모두 1등급인 셈이다. 우유를 짜는 단계(착유), 원유 운송 단계에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CCP)을 적용하는 등 선진국 수준의 위생 관리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또, 1등급 우유가 2등급 우유보다 3배가량 비싸기 때문에 젖소를 키우는 목장주로서는 1등급 품질을 지키려 필사적이다.
김근배 중앙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 교수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한 농산물로 만든 사료를 젖소에게 먹였다고 해서 우유에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는 않는다. 농약 성분, 세균 검출 등의 검사를 통과한 우유만 판매된다. 또, 젖소가 병에 걸리면 약을 주사하는데, 젖소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우유 생산은 중단된다. 따라서 일반 우유가 유기농 우유에 비해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일 뿐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우유의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다"라고 강조했다.
노진섭 / no@sisapress.com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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