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 리포트③] '여보세요?'에서 '국진이 빵'까지

문혜원 기자 2010. 5. 1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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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문혜원 기자] 김국진은 본인 얘기를 좀처럼 꺼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굴곡진 인생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롤러코스터의 정점에 있을 때(왕년에 잘 나갔을 때)' 방송출연 횟수와 각종 수상 기록, 유행어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TV를 틀면 매일 김국진이 나와 쑥스러운 웃음으로 친근감을 더했고, 연말의 각종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은 항상 맨 마지막에 불리곤 했다.

개그맨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단 빵을 출시해 방과 후 아이들을 슈퍼마켓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주인공도 김국진이다.

한때 방송가 안팎에서 김국진을 개그계의 '기록 제조기' 라고 칭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김네스북'을 만들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김국진은 그렇게 놀라운 기록들을 새기며 방송인의 삶을 살아왔다.

◆ 김국진의 영향력…"제 4의 방송사 사장?!"

김국진은 최근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설명하며 쑥스러운 듯 고백했다. 그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를 부끄러워해 써온 것을 그저 읽겠다"며 놀라운 얘기들을 꺼냈다.

이 가운데 '방송계를 움직이는 4인'에 선정된 사연은 전성기 시절, 그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 방송가 소식지에서 김국진은 MBC사장, KBS사장, SBS사장과 함께 그 4명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라지만 그는 실제 케이블 방송을 인수해 '방송사 사장'이 된 이력도 있다.

애완동물 붐이 일던 2003년, 김국진은 애완방송 '펫채널'의 대표를 맡았다. 그는 시트콤에서 수의사 역할을 하는 등 애완동물 마니아로 비쳐졌다. (그의 별명 중엔 흡사한 외모 덕에 '치와와'란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그의 쇠퇴와 운명을 같이했다.

사업 실패와 상관없이 방송가에서 그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방송가를 움직일 만한 개그맨은 이경규, 심형래, 임하룡, 전유성 등이었다"며 '사장급' 영향력을 부정하면서도 "김국진은 이들 사이에 치고 나온 유일한 후배 개그맨으로 보면 된다"고 평가했다.

◆ 연말 시상은 김국진을 위한 것?

최근 몇 년 간의 연말시상에서 연예부문 대상을 '국민 MC' 유재석과 강호동이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전성기 때의 김국진은 이들보다 더 높은 인기로, 각종 상을 독차지했다.

1991년 제 1회 '대학개그제'에서 동상을 타며 연예계에 입성한 김국진은 이후 2001년까지 상복이 줄을 잇는다. 주요 상만을 간추려도 한 보따리다.

1992년 KBS 코미디대상 '신인상' 1995년 MBC 코미디대상 '인기상'(당시 대상은 이경규였다) 1996년 MBC 코미디대상 '대상', '특별상'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코미디언 '연기상' 1998년 제25회 한국방송대상 '남자코미디언상' 1998년 8. 15 정부 수립 50년 '최고 인기 스타상' 1998년 제9회 '한국 방송 프로듀서상' 1998년 MBC 코미디대상 '대상'

이뿐 아니다. 개그맨인 본업과 함께 친근한 이미지로 시트콤에서도 활약하며 '연기상' 혹은 '특별상' 수상자에도 김국진의 이름은 올랐다.

◆ 김국진의 유행어

개그맨들은 자신의 유행어 하나를 만드는 것도 버겁다고 한다. 본인만의 유행어를 밀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애처로울 정도다.

하지만 전성기의 김국진은 별 것 아닌 말을 내뱉어도 곧바로 유행어가 됐다. 특유의 혀 짧은 발음으로 '여보세요~?' 라고 말하면 시청자들은 빵빵 터졌고 너도나도 전화를 받을 땐 이 말투를 따라하곤 했다. 이밖에 '어라?', '나 소화다 됐어요', '밤새지 마라 말이야', '오마이갓!', '사랑해요~' 등 김국진의 유행어 수만도 20개에 이른다.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당시의 개그는 부드럽게 얘기하는 게 큰 유행을 탔다"며 "김국진은 간결한 표현으로 뉘앙스와 콘텐츠에 맞게 멘트를 던지면서 유행어를 많이 만들었다. 김국진,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다"고 분석했다.

◆ '국진이빵'의 신화

김국진의 당시 인기를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국진이빵'은 빼놓을 수 없다. 식품회사 '삼립'에서 1999년 3월 출시한 '국진이빵'은 김국진의 캐릭터를 이용해 소위 '대박'을 터뜨린 제품이다.

삼립의 마케팅 담당자에 따르면 당시 '국진이빵'은 하루 60~70만개가 판매됐다. 이는 연매출 2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로 당시 삼립의 매출액 10%(전체 매출액 200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삼립 관계자는 "중박 이상이면 성공했다고 했는데 당시 '국진이빵'의 인기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빵에 인기 연예인의 스티커를 넣는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가 어린이 고객에게 먹혀들었고 삼립은 덩달아 '국진이빵'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삼립 관계자는 또 김국진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김국진의 경쟁력은 남녀노소가 고르게 호감을 갖고 있는데 있었다"며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베이커리 사업과 매칭이 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어린이들은 귀엽고 친근한 국진이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은 버리고 국진이 스티커만 모으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도 유명한 일화다. 아이들 사이에선 500원 짜리 스티커를 사면 빵이 공짜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후 삼립은 당시 최고의 걸 그룹 핑클을 후발 품목으로 내세워 '핑클빵'을 선보였지만 '국진이빵' 매출의 70%선에 그쳤다.

사진 = TV리포트 DB, 국진이빵 CF 화면 캡처, 블로거 Kookan21 제공문혜원 기자 gissel@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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