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실패 '100일 콘서트' 일본은 성공..왜?

신동립 2010. 5. 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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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한국에서 아이돌 개념에 들어맞는 연예인이 등장한 건 1970년대부터라 봐야한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이라 불릴만한 형태가 등장한 건 1996년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그룹 H.O.T를 내놓으면서부터다. 그러니 2010년 현재 한국 아이돌 산업은 15년차인 셈이다.

그 15년 간 한국 아이돌 산업이 내놓은 전략들은 무궁무진하다. 그 중 특기할 만한 것들만 꼽아 봐도, 핑클의 '프린세스 메이커'형 성장 이미지 전략, 신화의 스마프(SMAP)형 개별 활동 전략, 아이비의 저(低)노출 고급화 전략, 악동클럽의 아사얀(ASAYAN)식 TV 오디션 버라이어티 전략 등이 있다.

이 중엔 성공한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모두 후대에는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악동클럽은 제대로 활동조차 하지 못했지만, 같은 전략을 통해 빅뱅, 원더걸스 등이 성공적으로 론칭될 수 있었다.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전략도 있다. 당시로서도 너무 대담한 것이었고, 지금 봐도 이런 게 과연 먹힐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2~2003년 사이 god가 펼쳤던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다.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이하 '100일 콘서트')는 그 자체로는 성공적이었다. 일단 "TV를 벗어나 공연장 중심 음악 문화를 주도한다"는 취지에 지상파 방송사 메인뉴스에서까지 전폭적인 관심을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돌 그룹이 이런 식의 연속공연을 펼친다는 건 당시로서 대단한 충격이었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이었다. 서울 정동의 팝콘하우스에서 2002년 7월11일부터 9월22일까지 45회, 그리고 2002년 12월25일부터 2003년 3월30일까지 55회를 진행하면서 전석매진을 기록했다. 팝콘하우스 규모가 2000석 정도니 약 20만 명가량이 콘서트를 보러 온 셈이다. 매번 구성을 달리하는 콘서트 형식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 100회차 암표는 200만 원 이상에 거래됐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러나 '100일 콘서트'는 '뒤끝'이 안 좋았다. 일단 콘서트 직후부터 god 인기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100일 콘서트'에서 찾는 분석이 많았다. 아무리 서울시내 중심가에서 연달아 공연했다 하더라도, 결국 기존 열혈팬층의 결집용 서비스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들 열혈팬층으로부터 계속 돈을 '짜내는', 전형적인 리피트 비즈니스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100일 콘서트'를 기점으로 대중과의 접점이 희미해지고 god 팬덤이 자폐화돼 대중으로부터 버림받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100일 콘서트'가 결국 자폐적 리피트 놀이에 머물렀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god 몰락이 '100일 콘서트'로 비롯됐다는 주장은 무리다. god는 이미 2000~2001년을 정점으로 세가 꺾이고 있었다. 이미 세는 개별 활동을 강화한 신화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100일 콘서트' 직전 발표된 5집은 사실상 졸속음반으로 평가받으며 판매량이 급속도로 줄어있었다. 2004년 모든 아이돌 전략의 집결체인 동방신기가 등장하면서부터는 더 손쓸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세간의 평가는 마찬가지다. '100일 콘서트'는 god의 몰락과 궤를 같이 하는 통에 그 원흉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어린 팬들을 상대로 한 무리한 장삿속'이라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으니 유사한 전략이 다시 시도될 가능성도 극히 미미하다. '100일 콘서트'는 그렇게 전무후무한 이벤트, 한국 아이돌사(史)에서 상당히 특이했던 이벤트로만 남게 된 셈이다.

지금 이 '100일 콘서트'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전략의 계승자가 드디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실 나타난 지는 꽤 됐지만, 활동이 지지부진했던 통에 크게 부각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 계승자는 지금 인기 최상종가를 달리고 있고, 그 인기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100일 콘서트'에 근거한 전략이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계승자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나왔다. 그래서 더 주목이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일본 소녀 아이돌 그룹 AKB48은 국내 일본 아이돌 팬덤 내에서 이미 익숙한 존재다.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에 의해 2005년 첫 등장했으니 벌써 6년차가 된 그룹이다. 무려 40여명이 넘는 대형 그룹이라는 점, 졸업과 가입을 반복하며 계속 멤버 '물갈이'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이 또 다른 소녀 아이돌 그룹 모닝구 무스메와 유사해 모닝구 무스메 국내 팬덤 상당수를 흡수하기도 했다. 안무가가 모닝구 무스메를 담당했던 나츠 마유미라는 점도 모닝구 무스메 팬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AKB48에서 진정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모닝구 무스메와의 유사성, 또는 그 원형이었던 오냥코 클럽과의 유사성이 아니다. AKB48은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한 그룹이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전용극장에서 멤버들인 거의 매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AKB라는 그룹명 자체가 아키하바라의 약칭이니, 과연 공연중심 아이돌이라는 점을 최대 차별성으로 걸고 나온 그룹다웠다. 멤버들의 정식 호칭 역시 '극단 단원'이다.

이 같은 전략은 사실 AKB48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중반 활동했던 여성 댄스팝 그룹 도쿄 퍼포먼스 돌의 전략이다. 도쿄 신주쿠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매일 공연을 열다가 결국 부도칸 공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도쿄 퍼포먼스 돌이 상당부분 인디/언더그라운드 색채를 지우지 못한 반면, god와 AKB48은 메인스트림 기획사에서 만들어낸 대중친화적 대형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AKB48의 시동은 천천히 걸렸다. 2007년 '보쿠노타이요우'까진 고작해야 모닝구 무스메의 아류 내지 그 정도 위상으로만 바통을 이어받을 존재로 각인됐다. 그러나 버라이어티를 중심으로 조금씩 위상을 확대해나가다, 지난해 10월 발매된 싱글 '리버'가 오리콘 위클리 1위를 차지하면서부터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어 2010년 2월 발매된 '사쿠라노시오리' 역시 1위를 차지하며 발매 첫주 무려 22만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하자, AKB48은 이제 모닝구 무스메 아류 따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성공모델이 돼버렸다.

4월7일 발매된 베스트 앨범은 발매 첫주 약 29만5000장을 팔았다. 이에 대해 아키모토 야스시는 "천천히 올라갈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콘셉트에 지금까지 1890회 넘는 공연을 실시해왔지만, 극장 티켓을 손에 넣지 못한 분들이 여전히 존재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기쁨을 털어놨다.

결국 도쿄 퍼포먼스 돌로 시작돼, god에서 메인스트림 아이돌 버전으로 실험되고, AKB48로 꽃피운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이 전략은 '이미 뜬 아이돌'용이 아니다. 포화되거나 저하된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이 새롭게 론칭됐을 때, 비록 느리지만 공고한 팬덤을 구축시킬 수 있는 전략이다. god가 큰 재미를 못 보고 AKB48이 성공한 까닭이다.

둘째, 이 전략은 100일 등 기한 한정으로 매일 여는 것보다 1주일에 1회 정도라도 무기한으로 설정해야 효력을 발휘한다.

셋째, 아무리 뭐라 해도 이 전략이 대중용은 아니라는 점은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돌에 열렬히 반응하는 여타 그룹 열혈팬층을 점차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전략인 건 맞다.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장점이 무기한적 기회와 만나면 그런 화학작용이 나올 수 있다. 어차피 AKB48도 비즈나 라르크앙시엘 팬층이 사주는 게 아니라, 모닝구 무스메·베리즈코보·큐트·아이도링구 등 기존 소녀 아이돌 그룹 열혈팬층이 함께 구매하거나 그리로 팬덤을 옮겨 사주는 것이다. 여기에 멤버 솔로 포스터의 CD 무작위 첨부, 19종류의 다른 재킷 CD 발매 등 리피트 비즈니스 상술이 더해져 나온 게 AKB48 신화다.

넷째, 결국 공연장 중심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도 '돈이 드는 일'이다. 10대 소녀들이 팬덤 주류를 형성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 속성엔 잘 맞지 않는다. 일본에서와 똑같이, 한국에서도 소녀 아이돌 그룹에 적합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삼촌팬 현상 등 상대적으로 재력 있는 팬덤이 소녀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생성되고 있다. 이를 노리고 실험적으로 기획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100일 콘서트'가 AKB48로 이어져 아이돌 전략의 또 다른 성공사례를 낳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 맞다. 이제 아이돌 전략이라는 건 국적불문으로 통용되고, 서로 벤치마킹되며 점점 더 가다듬어지고 있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도했다 실패한 전략들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재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실정에도 맞을 만한 전략들은 해외에 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볼 필요도 있다. 이런 식으로 아시아 아이돌 산업은 점차 한 몸이 되고, 그 흐름 속에서 한류와 아류(亞流)가 교차하며 시장 확대와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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