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아이폰 한 방에 'IT 코리아' 휘청
애플의 아이폰 열풍이 거세다. 애플은 인터넷의 미래인 '모바일 웹'의 초반 주도권을 잡았다. IT 코리아의 인터넷 서비스 산업과 IT기기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의 막강 포털과 휴대전화업계 강자인 삼성의 좋은 시절은 끝나는가….
"한편으로 씁쓸하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지금의 '상황 변화'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아이폰 한 방에 이렇게 순식간에 빗장이 허물어지는 조짐을 보니…."
햇수로는 10년이 넘었다. 정보 인권적 측면이나 웹 접근성 측면에서 시민사회·학계의 인터넷 규제에 대한 문제 제기의 역사다. 그동안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규제와 통제는 더 강화됐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4월 1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전격 방문, 인터넷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최 위원장은 본인확인제도(인터넷 실명제), 위치정보법 규제 등을 개선하겠다며 "법적 규제를 푸는 데는 대통령도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뀐 계기는 무엇일까. 민 교수는 단언했다. "산업 논리로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규제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뒤처지게 생겼으니까 그제서야 큰일이 났다고 인식한 것이다."
정부 IT정책 전향적으로 바뀐 까닭은
어떤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구한말의 위기 상황으로 비유한다. 정부는 허울 좋은 'IT(정보통신)강국론'에 취해 쇄국정책을 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보이콧'하자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월 1일 인터넷기업CEO들은 불만을 털어놨다.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든지 외국기업도 국내법을 따르게 하든지 아무튼 똑같이 해 달라." 그가 예로 든 것은 인터넷 실명제와 저작권 문제였다. 왜 유튜브는 저작권과 본인확인제에서 자유로운가. 김상헌 NHN 대표도 거들었다. 국내법을 지키면 해외 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받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리는 "글로벌 사업 환경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되는 업계의 애로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구글코리아 손원진 사장도 참석했다. 이튿날 구글코리아는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 내용은 한국 포털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됐을 뿐 구글의 입장은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는 것.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마케팅 및 홍보총괄 상무는 "우리는 한국 법을 존중했기 때문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역차별 운운은 '사실'과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본인확인제라는 '법을 지키기 위해' 구글은 한국에서 업로드와 댓글을 금지시켰다. 구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러한 조치는 한국 정부에 큰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본인확인제만이 아니다. 공인인증서 문제도 한국IT의 '유례없는 갈라파고스적 진화'의 사례로 지적돼 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익스플로어와 보안문제에 취약한 액티브X를 설치하지 않으면 인터넷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을 두고 나온 말이다. 전 세계에 98%가 넘는 인터넷익스플로어 사용률이 결국 '디지털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규제에 대한 정부 태도도 최근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국무총리실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공인인증서 찬반 진영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결국은 파워게임이라고 본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웹'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공인인증서 의무화 폐지를 주장하는 운동을 수년 전부터 벌여 왔다. 김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한 한 '학계와 업계의 카르텔'이 있어 왔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저쪽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술에 난해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용역페이퍼를 내면 무사통과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보안학계도 보안업체들이 먹여 살린다. 결국 용역을 수행하는 교수들도 다 저쪽 목소리를 내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던 상황이 아이폰이 나오면서 바뀐 것이다. 왜? 아이폰에서 금융 거래가 안 되니까."
2년 늦은 한국의 아이폰 열풍
4월 초부터 비록 소액이나마 아이폰을 통한 결제가 가능한 길을 정부가 터 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이폰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심지어 '트로이의 목마'로 비유하는 경우까지 있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 소장은 "국내 판매량이 50만대를 돌파했다고 하지만 이미 대세의 흐름을 탔다"고 평가했다. 그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 IT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2000년 이후 해외에서 나온 소셜미디어의 90% 이상은 한국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국민이 원하지 않으니 없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이폰이 출시가 안 됐다면 관심이나 있었을까. 아이폰이 2년 전에 출시됐다면 그때 붐이 일었을 것이다." 류 소장의 말대로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아이폰 열풍'은 지각돌풍이다.
해외에서 아이폰 열풍과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이 만들어진 것은 2007년이다. 민경배 교수는 "심지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은 4G로 가는 상황에서 3G를 한국시장에서 재고를 정리하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류 소장은 아이폰의 전 세계적 성공에는 애플과 CEO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리더십이 있다고 말한다. 잡스는 1970년대부터 40여 년 컴퓨터의 역사적 산증인이다. MS가 잘나가던 시절에 그는 패배자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창업한 회사인 애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복귀.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튠스와 앱스토어. 그가 내놓는 갖은 제품들은 전략적이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류 소장은 전했다. 류 소장은 인터넷의 미래인 '모바일 웹'을 둘러싼 초기 전쟁에서 이미 잡스의 애플이 기선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웹의 운영체제와 플랫폼을 두고 상반된 두 가지 전략이 제시된다. 구글은 플랫폼으로서 안드로이드를 개방했다. 반면에 애플의 플랫폼 정책은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류 소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 역시 지난 30년 동안 배운 것은 애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오픈한다고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잡스는 애플은 애플만이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운영체제는 그래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다."
애플이 만들어 놓은 앱 시장은 개발자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2007년 이후 애플의 앱스토어에 등록한 앱 수는 18만여 개에 이르고 있다.
4월 9일 애플은 아이폰 4G에 탑재될 새로운 운영체제(OS4)를 발표했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든가 앱을 폴더에 집어넣은 것 등의 특징은 진작 나왔어야 하는 기능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추가된 아이애드(iAds) 기능에 주목한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미디어 경영학 박사)은 아이애드를 "애플이 국내 포털을 포함한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 산업에 던진 경고장"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애플은 동적인 위치정보로부터 이름·연락처·생년월일 등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이미 확보하고 있고, 이에 기초해 정교한 '데이터마이닝'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광고주에겐 매력적인 영역을 개척한 것"이라면서 "위치정보를 포함해 모바일 웹에서 '검색'을 장기적인 수익모델로 삼고 있는 구글과 달리 애플의 아이애드는 광고 하나하나가 작은 광고 앱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애플로서는 사용자가 50만명에 불과한 작은 시장이지만 100만명이 넘어서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고, 기존 인터넷포털 사업자들의 가장 큰 수입원인 광고시장을 잠식하게 된다면 역전은 순식간에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하반기 아이패드 애플 전략 전면화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일부의 관측과 달리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를 지나면 애플의 전략이 확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아이패드의 타깃층은 얼리어댑터가 아니라 대중시장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서 "실제 아이패드가 잠식할 시장은 e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언론시장과 모바일 쇼핑 콘텐츠 소비양식을 종합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류 소장에 따르면 '모바일 웹'은 먼 미래가 아니다. "포털들의 좋은 시절은 갔다. 불과 1, 2년 전의 네이버를 보라. 얼마나 막강했는가. 이제 PC웹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PC를 사지 않은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PC 앞에 앉아 웹 서핑을 하는 시간은 현재도 아이폰이나 스마트폰이 잠식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들이 모바일 웹 환경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지난해부터 스마트폰용 앱을 내놓고 있다. 현재까지 내놓은 것은 뉴스, 지도, 미투데이 등 총 11종. 다음도 4월 13일 주요 서비스를 망라한 '다음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앞서 다음 역시 지도 및 TV팟 앱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은 인색하다. 민경배 교수는 "국내 포털들이 내놓은 앱 서비스를 보면 자신들의 유선서비스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방식"이라면서 "하나의 앱을 터치해 그 안에서 복합적 기능을 원스톱으로 하는 '앱포털' 개념으로 가고 있는데 당장 수익보장은 될지 모르지만 모바일 인터넷 생태계에는 부정적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소장은 "포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앱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모바일 웹에서는 '여럿 중 하나(one of them)'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면서 "포털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서희 NHN 홍보팀 과장은 "밖에서는 '공룡 포털'이라고 비난하지만 구글과 같은 해외기업에 비해 자금 여력이나 개발 인력이 부족한 것이 솔직한 상황"이라면서 "구글 같은 경우도 유선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였는데 지금같이 성장한 것을 보면 시장선점 전략이 맞는지, 치밀하게 준비하다가 혁신적인 모델로 치고 나가는 것이 맞는지 특히 IT 쪽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비스 산업만이 아니다. IT 기기 하드웨어 업계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단적인 예가 휴대전화 업계다. 강 연구원은 휴대전화업계가 아이폰이 들어왔을 때 벌어질 파장은 예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미 유럽시장에서 아이폰과의 경쟁을 경험했다. 미국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휴대전화업계는 자신의 경쟁력을 강력한 내수시장에서 얻었다. 한국의 휴대전화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혁신에 대한 강제'를 한국 소비자들이 해 줬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국내에는 탑재시키지 않은 GPS 기능 등을 포함하고도 단가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폰이 출시가 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쉽게 먹었던 시장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밖에 안된다. 나는 업체들이 거만했다고 본다. 업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IT코리아, 위기를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결국 'IT코리아'는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마는 걸까. IT코리아의 위기에 대한 최근 보도에 자주 인용되는 자료가 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IT경쟁력은 16위였다. 2008년 8위보다 무려 8계단이나 하락한 수치다. 2007년의 이 조사연구에서 한국의 순위는 3위였다. 상위군에서 급락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2위→15위)이다.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의 경우 주로 연구개발(R&D) 환경 점수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IT 관련 특허점수가 인덱스 모델에 포함된 변화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류 소장은 "설령 삼성전자나 네이버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으로 착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급 인력을 독점하고 있는 포털이 망한다면 그 사람들이 회사를 나와 다양한 벤처로 흩어질 수도 있으니 오히려 한국의 IT는 지금보다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배 교수는 "현재까지 IT코리아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지만 터닝포인트를 만들어갈 계기는 또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폰 보급이 수십만대를 돌파했는데 그 속도가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고 하고, 또 순식간에 앱개발 시장이 활성화된 것을 보면 그런 저력이 앞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싸이월드는 왜페이스 북이 되지 못했나
정보통신(IT) 전문가들은 모바일웹에서 구글 대 애플의 플랫폼 싸움 이외에 구글 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전선도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구글의 대항마로 흔히 언급되는 것은 페이스북.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페이스북의 '원조'는 한국의 '싸이월드' 아닌가.
싸이월드는 왜 페이스북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싸이월드와 네이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SK컴즈의 신희정 차장은 "한국어 기반 서비스이기 때문에 해외에 퍼져 나가는 것이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싸이월드가 해외 진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싸이월드가 북미시장에 진출한 것은 2006년 8월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업을 접은 상태다. 신 차장은 "게임 등과 달리 SNS는 그 나라의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4월 4일 미니홈피 API를 공개하는 오픈 플랫폼 정책을 발표하는 한편 1촌 이외에 '팬'이라는 네트워킹을 선보이는 등 나름대로 SNS를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는데도 언론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싸이월드의 처지는 '금속활자 발명'의 처지와 닮아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발명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온라인의 모든 서비스는 생애 주기를 갖게 마련"이라면서 "마찬가지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트위터가 5년 뒤에도 지금 같은 주목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싸이월드 1촌은 네트워크로서 엄청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결정적으로 새로운 정보의 유입이 없이 뻔한 이야기만 오고 갈 수밖에 없는 폐쇄성에서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SK컴즈가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할 지적들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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