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뿔테에 목매는 거죠?

2010. 4. 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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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욕망, 손쉬운 이미지 메이킹!

두말할 것도 없다. 이미지의 시대다. 그럼 당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뭘까? 성형수술? 이건 아프다. 비싸다. 수정 및 복원도 어렵다. 그럼 옷? 일주일은 7일이니 한두 벌로는 모자라다.

트렌드에 발맞추다가는 살림 거덜난다. 우린 연예인이 아니지 않는가? 혹시 아찔한 S라인이나 초콜릿 복근? 솔직히 이건 TV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간혹 주위에서 4등이라도 복권당첨 얘기는 들어봤어도 허리 34인치였던 남자가 어느 날 초콜릿 복근이 생겼단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역시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순식간에 이미지 변신을 꾀할 수 있는 것으로는 안경이 제격이다. 선택 및 착용이 간단하고 다른 아이템에 비하면 가격도 착한 편이다. 무엇보다 첫인상을 결정짓는 얼굴에서 선봉을 맡고 있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안경이라는 게 잘만 보이면 되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그냥 페이지를 넘겨라. 더는 할말 없다.

안경이 시력 보정을 뛰어넘어 이미지 연출을 위한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영심이를 따라다니던 왕경태나 신림동에서 십수 년째 칩거 중인 고시원생이 쓰던 뿔테 안경이 이제는 스타일리시한 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는 것이다.

고도근시를 가진 찌질이가 아니라 감각 있는 패셔니스타의 소품. 그렇다면 대체 왜들 이렇게 뿔테에 열광하는 걸까?

욘사마께서 두꺼운 머플러와 함께 쓰고 나온 일명 배용준 뿔테(폴 스미스 제품)가 안경점 진열대를 점령할 때만 해도 잠깐 유행하고 말 줄 알았던 뿔테. 지금은 어떤가? 난다긴다 하는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야심 차게 선보이는 시즌 액세서리 품목에 안경이 빠지지 않는다.

구치, 제냐, 타테오시안, 레이밴, 칼 라거펠트나 톰 포드의 신상 안경은 하나같이 뿔테로 시작해서 뿔테로 끝난다. 사실 이 안경테도 값이 만만치는 않다. 원가라고 해 봤자 뻔히 보이는 푼돈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기꺼이 지불한다. 복고 트렌드를 넘어 소비자의 니즈가 줄기차고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몇 종류의 안경 앞에서 선택을 고민 중이라면 뿔테를 가리키며 판매원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머, 훨씬 더 지적이고 젊어 보이세요. 확실히 고급스러워요."

우리는 단지 안경이 아닌 검은 뿔테가 주는 지적인 이미지, 브라운 뿔테가 주는 세련된 이미지를 구매하는 것이다. MB도 뿔테 앞에서 고민하더라.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측근들의 논리는 카리스마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고 쓰자고 주장하는 측근들의 그것은 '부드러워 보인다'는 것이란다. 아~, 이미지의 시대여.

이미지와 아울러 욕망의 시대다. 행복을 위해 욕망은 반드시 소비돼야 한다. 행복을 목적으로 한 욕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언제나 정당하다. 안경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영역에서 간소하게 욕망을 소비하는 도구인 셈이다.

시대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고 담론의 무거움에 괴롭지도 않은 지금은, 고종석의 말을 빌리자면 '안전한 허영놀이'가 유행하고 있는 때다. 대부분 가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쿠바의 한 혁명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다.

왠지 개념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다. 더구나 얼마나 낭만적인가? 자본주의가 팽배하다 못해 절대기준이 된 시대에 혁명을 위해 살고 죽는 드라마틱한 청년이 있었다니. 때는 이미지의 시대인지라, 굳이 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본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그

렇게 보이도록 해 주는 도구를 활용하면 이미지는 간단하게 빌릴 수 있으니까. 지적인 이미지를 향한 우리들의 욕망 혹은 허영은 안전하고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 뿔테가 있으니까.

마케팅에서는 '팔아야 할 것은 제품이 아니라 욕망이다'라는 전략이 있다. 다이어트 기능이 있는 제품의 특장점을 소구하기보다는 날씬해지고 싶은 여자의 욕망을 건드리면 제품은 저절로 팔린다는 것.

예는 이렇다. 뿔테 안경이 비주얼인 어느 안경 브랜드의 광고카피.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뒷주머니에서 꺼낸 렌즈 타월로 조용히 안경을 닦고 있는 모습은 더욱.' 이 문장의 속뜻을 라이브하게 해석하면 이렇다. '당신은 이 안경으로 인해 아주 멋진 남자로 보일 거예요. 여자들이 한방에 훅 갈지도 몰라요.'

이미지와 욕망의 시대에 뿔테는 안전한 허영심을 편리하게 메워준다. 남자나 여자나 구두가 패션의 완성이라면 안경은 패션의 시작이다. 작은 소품 하나로 완벽한 스타일 변신이 가능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뿔테는 2010년에도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마케팅 상품인 셈이다.

정성배 카피라이터LG애드, 대홍기획, TBWA/KOREA, 이노션을 거쳐 피디프로덕션 메리고라운드의 기획실장으로 커뮤니케이션 중이다.

K2 'Climb the life', Mercedes-Benz '나는 미래를 기다린 적이 없다' 캠페인을 비롯해 쏘나타의 'Art of Technology'등의 광고 카피를 만들었다. 광고와 사람만큼 트렌드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카피라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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