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보존 가치' 적산가옥을 어쩌나


[한겨레] 아파트·막개발에 해체…"순수한 일본식 없다" 비판
소유주가 문화재 지정 반대…"세 감면 등 혜택 줘야"
1894년 지금의 효창공원 일대에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 지역에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군용 물자를 조달하거나 일본 음식점을 열어 생활했다. 용산의 일본인 인구는 1895년 100여명에서1909년에는 1만명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용산 가운데서도 일본인들이 특히 많이 살았던 지역은 지금의 원효로 1~4가, 한강로 1~3가, 문배동, 신계동 등이었다. 이 지역들은 1925년 일본인 거주 비율이 90% 이상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한국을 떠나자 용산 등 일본군 주둔지역에 지어진 일본인 건물들은 모두 국가에 귀속됐다. 이를 한국인들은 적산(적의 재산)이라고 불렀다. 최규철 서울시 문화재과 문화재관리팀장은 "해방 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적산가옥을 싼 가격에 불하해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살았던 적산가옥은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삶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 용산 곳곳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 "맞배지붕과 기와의 모양을 보니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네요."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청파3동 선린중학교 근처 골목에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이 말했다. 황 위원장이 가리킨 2층 주택은 처마가 1층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지붕의 각도도 무척 예리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황 위원장은 "일본은 비와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이를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 지붕을 가파르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원효로1가로 접어드니 뾰족한 지붕 3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3층 높이의 창고가 나타났다. 현재 롯데기공과 롯데햄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이 건물은 네모반듯하고 삭막한 다른 현대식 건물과 달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건물 앞에서 만난 이선우 롯데건설 건물관리총괄기사는 "일제 때 지어진 건물인데 6·25 때는 미군 병원으로도 사용됐다고 들었다"고 건물의 역사를 전했다.
이 건물에 대해 문화재위원인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학)는 "1930년대 후반 일본인들이 창고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며 "겉모습이 훌륭하게 남아 있어 지금 모습 그대로 잘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만 용산구 청파동과 원효로, 용문동 골목에서 주택, 식당, 사무실 등으로 활용되는 수십채의 적산가옥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적산가옥은 일제의 잔재인가? 이런 '적산가옥'들은 그동안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주목받지 못했고,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용산은 최근 땅값이 크게 올라 적산가옥들이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형편이 됐다. 김정동 교수는 "1960년대부터 양옥이 도입되면서 적산가옥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 아파트 바람은 적산가옥을 포함한 단독주택들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산가옥을 일본식 주택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붕 형식과 창문 등은 일본식이지만, 온돌과 두꺼운 벽을 사용한 것은 한국식이며, 벽난로·입식 구조는 서양식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적산가옥엔 일본인들이 산 기간보다 해방 뒤 한국인들이 산 기간이 더 길다. 김정동 교수는 "일본인들이 남긴 건물이어서 막연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근대 시기 한국에 도입되고 적응한 주택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산가옥을 보존·활용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문화재청이 2005년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용산구 적산가옥 2채를 등록문화재로 올리려고 했지만 소유자의 반대로 실패했다. 김수정 서울시 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은 "잘 지어진 적산가옥들을 등록문화재로 올리면 정부의 지원도 받고 적절히 활용할 수도 있다"면서도 "현재는 소유자들이 개발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보존·활용하는 방안은 거의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황평우 위원장은 "한옥과 근대건물, 적산가옥 등 옛 건축물들을 보존하는 경우 세금 감면이나 보수 지원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 적산가옥
'적산'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으로,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에 지어 살았던 집을 일컫는다. 인천·목포·포항 등 항구도시에도 적산가옥과 건물들이 많았다. 포항시는 구룡포의 적산가옥을 보존해 관광지로 만들었다.
군산·포항선 관광자원으로 활용
적산가옥은 군산, 포항, 목포, 부산, 인천 등 식민지 수탈의 근거지였던 항구도시에 많이 남아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일제 때 적산가옥과 근대건축물들을 역사 교육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올해 일제강점 100년을 맞아 월명동·영화동을 '근대역사 경관'으로 지정하고 이곳의 적산가옥들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군산 내항은 일제 강점기에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기지로 이용됐다. 월명동·영화동에는 이때 지어진 적산가옥 100여채가 아직 남아 있는데, 군산시는 이 일대에 근대역사 탐방로(3㎞)를 만들 계획이다. 또 등록문화재인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장미동 옛 나가사키18은행 군산지점, 개정면 옛 시마타니 농장 귀중품 창고 등은 각종 공연장과 미술관 등 '예술창작 벨트'로 조성된다.
포항 구룡포에도 적산가옥 40여채가 남아 있다. 구룡포는 1910년대까지는 한적한 어항이었지만 그 뒤 현대식 방파제가 생기면서 경북 최대의 어업기지가 됐다. 대형 어선을 이끈 일본인 선주·선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을 상대로 한 상점과 유곽(성매매 지역)이 들어섰다. 1933년에는 구룡포에 270여가구 1100여명의 일본인이 살았다고 <영일군사>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 구룡포 읍내 장안마을에는 좁은 골목 좌우로 일본식 2층 목조가옥들이 즐비하다. 포항시는 이곳을 보존·개발해 일본인과 내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부산과 목포에도 여전히 적산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부산의 경우 영화 <친구>를 찍었던 남포동 건어물 도매시장의 건물 대부분이 적산가옥으로 이뤄져 있다. 목포도 호남평야의 쌀을 실어 나르던 항구답게 중앙동과 만호동 등지에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적산가옥들을 역사 교육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전주 대구/박임근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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