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현실 "장애인 딸 가진 싱글맘.. 내 얘기 그렸어요"




[피플] 스포츠한국 '빨강 고양이' 연재 만화가인터넷에 솔직한 경험 올려 큰 호응'대중과의 소통'이 무엇인지 알았지요일 통해 안 '연하의 그'와 재혼불행은 한때… 지금 너무 행복해요
'우리 가족이 무지개 밑에 모여 있어요. 하늘엔 새들이 날고, 태양이 무지개 위로 떴네요…'
양평 가는 길, 중앙선 아신역이 바라보이는 2층 작업실 방문 옆에 작은 그림이 붙어 있다. 싱글맘으로 장애인 딸 은혜(21)를 키우다 뒤늦게 얻은 아들 은백(5)이가 그린 것이다. 그 위에 만화가인 엄마 장차현실(47)이 예쁜 글을 써넣었다.
방문에는 엄마가 직접 그린 은백이 모습,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백석의 시와 안도현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중에서 '독야청청'이란 시를 프린트해 붙여 놓았다.
장차현실은 지금 행복하다.
장차현실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아주 담백하고, 진솔하게 만화를 통해 털어놓은 작가다. 장애와 여성 문제를 주로 다룬다.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20대 여성 '자림'의 성장 스토리인'빨강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 '빨강 고양이'는 20대 여성 자림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생각이나 행동이 좀더 자유로운 20대 여성을 그리고 싶었어요. 자림이를 통해 동거나 다문화 가정 이야기, 소수자 이야기도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어떤 가르침을 주거나 서사적 스토리를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단지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만족해요."
- 일간지에 연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자연스럽게 생활 습관이 신문 마감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하루에 6~7시간씩 작업에만 매달려 살다가 금요일이 되면 제대로 씻고, 꾸미고 외출도 해요."
- 마감이란 것이 무거운 족쇄지요. '빨강 고양이'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지요.
"저는 항상 내 삶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상상력을 키워가지요. 아침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1회성 만화의 즐거움을 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특히 '빨강 고양이'는 척박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연애'의 재미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왜 '빨강 고양이'인가요.
"빨간색은 정열과 강한 욕구를 상징하는 이미지구요. 고양이의 습성이 젊은 여성의 내면 세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 '빨강 고양이'란 제목을 붙였어요. 고양이는 개와는 또 다른 특성을 지녔더라구요. 정을 주긴 힘들지만 한번 주면 더 확실하구요. 함부로 자기를 내주지 않을 뿐 아니라 뒤처리도 아주 깔끔해요. 제가 키우고 있는 '유키'란 고양이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요."
장차현실은 야한 작가였다. 1997년 조선시대 민담을 패러디해 색을 밝히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색녀 열전'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처음으로 연재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4년에는 '마님 난봉가'란 단행본을 출판했다.
- 여성의 관점에서 성을 다룬 작품들이 꽤 됩니다.
"결혼과 이혼, 싱글맘으로 생활하면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했어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은혜를 혼자 키우다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날 즈음부터 만화 속에 내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내자고 다짐했습니다. 작가도 재미있고, 독자도 재미있는 소재를 찾다 보니 민담이 눈에 들어왔고, 여자의 시각으로 바꿔서 바라보니까 옆집의 삼순이와 복실이가 보이더라구요."
- 성을 다루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섹시하진 않아도 나름 매력적이던데요.
"가슴이 빵빵하고, 허리가 잘룩한 여자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그림도 자연스럽게 둥글 넓적해지네요."
장차현실은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에도 그림을 그렸다.
1988년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모 잡지사에 들어가 일러스트를 담당했다. 그리고 1989년부터 프리랜서로서 일간지에 삽화를 그리거나 장애인 소식지에 습작을 게재했다. '광마일기' 등 마광수의 작품을 출판할 때는 북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때부터 만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명동 성당에서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다수 대중들과 함께 하는 예술이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할 때였어요. 그 때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고, 만화 강습을 받곤 했어요."
- 만화를 시작한 계기가 있을 텐데요.
"장애아를 키우면서 삽화를 그린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어요. 삽화를 그리려면 관계자들끼리 회의도 많은데 싱글맘으로서 장애아를 놔두고 외출하기 힘들잖아요. 특히 삽화에는 내 생각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돼 만화 쪽에 치중하게 됐어요. 삽화는 남의 생각을 대신 표현하는 일이지만 만화는 내 것을 담아내는 일이라 신이 나더라구요."
장차현실은 1990년 딸 은혜를 낳았다. 장애아였다. 주위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한 남편과는 차츰 거리가 멀어져 별거하다 결국 1998년 남남으로 갈라섰다.
은혜는 장차현실이 키웠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힘들다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지냈다.
은혜와 당당하게 살아가는 싱글맘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취재 왔던 기자의 권유로 '싱글맘의 장애아 육아 일기'를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많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 장애아를 키우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처음에는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힘들고 어려울 때 늘 곁에 있던 내 아이를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구요. 그리고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 반응은 어땠나요.
"솔직하게 쓰고 그렸기 때문인지 많은 격려가 쏟아졌어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가슴 벅차더라구요. 그것이 큰 힘이 됐어요. 대중과 소통하는 맛을 알게 해줬고, 기쁨을 받고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어요."
장차현실과 은혜의 이야기는 장애아와 싱글맘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전까지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은 장현실이었지만 이젠 어머니의 성까지 집어 넣은 장차현실로 살고 있다.
장차현실은 2003년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핑크 팰리스'를 제작 중이던 영화감독 서동일을 만났다. 영화 제작을 위해 자문을 구하러 온 청년이었다. 일로서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일곱살이나 어린 청년과 이혼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동거 생활에 들어갔다.
5년의 동거 생활을 하는 동안 2005년 둘째 은백이 태어났다. 장차현실과 서동일, 은혜와 은백이는 2008년 6월8일 가족식을 갖고 동거인에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족식에서 장차현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가족 속에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 옛 여인들의 감춰진 性, 솔직하게 끄집어 냈어요 작품 세계는…"고정관념 벗어날때 불행도 행복으로 뻥튀기 돼요" 장차현실은 '자람'이란 필명으로 '빨강 고양이'를 연재하고 있다. 장차현실이란 이름에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만화 속 주인공 '자림'은 앞으로 큰 딸 은혜가 가야 할 길이고, '자림 엄마'는 자신의 모습이다.'빨강 고양이'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장차현실은 '여성'과 '장애'를 화두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고정 관념과 편견에 맞서 여성과 장애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좋은 걸 좋다고 말 못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 못한 세월, 이제 더 이상 참고 살진 않으리.'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으로 긴 세월을 보냈던 옛 여인들이 만화작가 장차현실의 눈과 손을 거쳐 솔직하고 대담하면서도 화끈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색을 밝히는 여자들의 이야기 '마님 난봉가'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고 즐기자'는 건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장차현실도 처음부터 천연덕스럽게 성을 이야기했던 것은 아니다. 30대 중반까지도 '내가 불감증이 아닐까'의심할 만큼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다 모든 여성들도 자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고 용기를 냈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딸이 이야기의 중심인 탓이었다. '난 장애를 가진 딸을 낳고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나의 행복은 그 속에 있었다. 불행은 뻥튀기 되어 엄청난 즐거움을 가져다 주어다. 내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나의 딸을 이야기할 때 아이는 점점 뻥튀겨 졌다. 나의 믿음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옮아간다. 아이가 주는 나에 대한 믿음이 나를 좋은 엄마가 되게 한다.' 장차현실은 장애인 딸 은혜의 이야기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 놓았던 작은 것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장애 이야기가 아닌 딸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 혼자 돈 버는 여자 이야기, 살림 이야기 등을 그려 나갔다. 장차현실은 대표적인 단행본 '마님 난봉가'와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외에도 여성신문에 연재했던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도 출판해 장애와 비장애, 나이와 성별의 벽이 없는 가족 이야기를 전했다. 신문과 온라인에선 국민일보에 '현실을 봐', 세계일보에 '별 아이 현실 엄마', 인터넷 한겨레에 '장현실의 현실을 봐'등을 연재했다. 장차현실은 육아와 살림에 내몰린 여성의 이야기를 모아塚?내 날개 옷은 어디갔지?'와 제주도 여성 상인의 이야기를 그린 어린이용 위인전 '김만덕'에 삽화를 그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글=이창호기자사진=윤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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