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전준엽의 미술산책-차혜림 '정신계 보여주는 회화'

윤시내 2010. 1. 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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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준엽(화가) = 인간이 세상만물 중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정신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동식물도 정신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물질계의 지배력이 크다. 물질의 원리, 원칙에 따라 삶의 행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는 말이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생존을 위해 약자를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런 법칙으로 유지되는 것이 자연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정신계의 역할이 훨씬 크다. 정신의 힘은 인간을 동식물과 차별화하는 뚜렷한 기준인 셈이다. 정신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감정, 이성, 생각, 기억, 상상, 무의식, 영혼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니까. 정신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부자나 스타 혹은 최고 권력자가 되는가 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공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우주의 끝까지도 갈 수 있고, 죽음의 세계나 전생, 다음 생까지도 빈번히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정신계다.

그러나 확신이 없다. 물질계에서는 증명이 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감이 지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나가는 현장, 몸이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과 긴장, 화해와 이완을 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들 삶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계의 수호신인 과학의 힘이 막강한 시대다. 정신계의 일들을 증명하고 우리의 눈앞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신계의 힘이 강한 곳이 있다. 종교나 예술 분야가 그렇다. 특히 정신계는 예술가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모든 예술은 정신의 표현이니까.

이러한 정신계와 물질계의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는 작가가 차혜림이다. 그의 작품은 정신계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현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회화라는 시각 예술로 정신계를 그려내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어린 시절 추억, 소망, 꿈, 그리움, 회상 같은 것이 주제로 나온다. 살아오면서 만난 무수한 인연이나 경험, 환경의 조건 등이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의 정신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화상적 성격이 짙다. 차혜림의 정신계는 어떻게 생겼는지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자.

'날자! 날자!'라고 제목을 붙인 작품이다. 이상의 대표작 '날개'의 끝부분을 연상시키는 설정의 그림이다. 날아오르고 싶은 모든 인간이 욕망을 자신의 소망으로 번안해 보여주고 있다. 화면 아래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의 얼굴이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위쪽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 속 작가 자신인 듯하다. 그 위로는 유체 이탈한 혼령의 모습을 한 신체들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날아오르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담은 이미지다. 누구나 이처럼 날아보고 싶을 것이다. 때론 욕망으로 불리지만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는 소망인 것이다.

작가는 현실 속 자신의 모습만 손에 잡힐 듯 그렸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망은 단색조의 추상화처럼 처리했다. 정신계에 속하는 소망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소망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설득력 있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 따뜻한 추억을 담은 '따뜻한 봄날에'라는 작품이다. 제목처럼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즐거웠던 시간으로 돌아간 회상의 모습이다. 역시 얼굴만 현실의 모습으로 그렸고, 회상 부분은 노란색 톤의 단색조 추상 기법으로 처리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같은 방향을 웃으며 바라보는 포즈다. 아마도 소풍이나 수학여행 같은 가슴 벅찼던 시간의 추억일 것이다. 회상 부분을 그려낸 방식을 보자. 이 그림의 주제도 그것이니까. 다정한 모습을 추측케 하는 포즈의 연장선을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점묘법 분위기가 나는 작은 점으로 화면을 빼곡히 채웠다. 시간이 한참 지난 시절은 어쩌면 이처럼 기억의 작은 입자가 되어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현실 속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작은 입자가 만드는 희미한 형상 같은 것은 아닐까. 따뜻한 봄날 같은 소중한 기억을 그린다면 이런 분위기가 날 것이다.

정신계에 본격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은 '메모리' 연작이다. 그 중 한 점을 보자.여자의 얼굴이 화면 양쪽에 배치돼 있고, 두 인물의 머리카락이 화면 가운데서 엉키고 있다. 어떤 기억일까. 분위기로 봐서 유쾌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갈등 정도의 기억일 것이다. 선택의 갈등처럼 보인다. 두 인물이 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인 듯싶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선택의 결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면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이 그림처럼 우울한 분위기로 떠오를 것이다.

차혜림이 보여주는 정신계의 모습은 기발한 발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체성의 접근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진지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63호(2월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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