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르포] '범죄와의 전쟁' 남아공, "관광객 안전은 책임 못져"
[스포탈코리아=루스텐버그(남아공)] 김성진 기자= "요즘 좀 나아졌어요. 정부에서 경찰에게 남의 집 담벼락을 무단으로 넘는 자에게도 발포를 허용했거든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2년째 거주하는 현지 교민이 전한 섬뜩한 이야기다. 2010년 월드컵 개최를 5개월 앞둔 남아공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남아공은 최남단 케이프반도에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는 멋진 암석 곶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남아공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넬슨 만델라와 흑백 갈등 그리고 세계 평균을 웃도는 높은 범죄율은 남아공에서 연상되는 첫번째 이미지다. 이 중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건 하루가 멀다 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강력 사고의 온상으로서의 이미지다. 이미 남아공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치안 부재의 나라라는 오명까지 얻은 상태.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한 팀들의 숙소에서조차 도난 사고가 발생했으니 월드컵을 앞둔 남아공 치안에는 이미 오점이 수두룩한 상황이다.
실제 남아공 경찰청이 발표한 2008년 범죄 통계에서도 치안 부재는 여실히 드러난다. 남아공 인구 10만 명당 살인 사건으로 죽는 사람이 38.6명이다. 살해당하는 사람의 숫자는 하루 평균 50명이 넘는다. 세계 평균보다 무려 7배가 높다. 이 통계 보고서는 남아공에서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은 영국의 27배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루 평균 강도 사건은 494건, 상해 사건은 558건에 달한다. 성폭력 사건은 7만여 건 이상이다. 현지 교민의 증언에 따르면 SBS-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가 지난해 남아공 현지 로케 촬영을 진행할 당시 촬영지 바로 옆에서 흑인 갱단끼리 칼을 들고 난투극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흔하디 흔한 범죄…남아공 정부, "관광객의 안전은 담보하지 못해"
현지 교민의 증언도 이러한 통계를 뒷받침한다. "대낮에 길을 가다 여성을 승합차로 납치하는 일 정도는 빈번하게 볼 수 있어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순식간에 강도로 돌변해 속옷만 남겨놓고 모두 강탈해가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한국 대표팀의 안전을 맡고 있는 김성태 안전담당관도 남아공의 치안상태를 둘러본 뒤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남아공 정부 측에서는 월드컵 때 대표팀의 안전만큼은 책임진다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관광객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치안 부재를 인정하는 말이죠. 둘러보니 치안 강화 활동도 형식적일 뿐이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눈 앞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 옆에서 범죄가 일어나도 앞만 보며 갈 길만 간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원으로 운영되는 공권력도 재빠른 대처에 나서지 못해 범죄 예방은 더욱 요원하게 느껴질 뿐이다.
남아공에서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원인으로 일평생 인권만 부르짖은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증언이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인권운동 덕택에 남아공에서 흑인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됐지만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빈민층 흑인들이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한 채 범죄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남아공 사람들, "만델라가 범죄 키워"…만델라, "인권에서 교육으로"
만델라 전 대통령 역시 이러한 점을 인식, 자신의 모토를 '인권' 대신 '교육'으로 대체했다. "교육이 더 나은 미래다." 남아공대학교(UNISA)에는 이 같은 만델라의 발언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교육을 통한 범죄 예방은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다. 결국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빼들었다. 경범죄에도 경찰이 발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해 지난해 여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아공 정부의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은 현재까지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다. 케이프타운 같은 관광지에서는 자원봉사 안전요원들이 각 블럭마다 배치돼 24시간 범죄를 예방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남아공의 국제인권위원회(엠네스티)는 남아공 정부의 이 정책을 비난하며 철폐할 것을 요구해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남아공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과 교육 강화 정책으로 인해 범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축구를 위해 남아공을 찾을 소수의 외국인들에게 여전히 남아공은 머나먼 위험구역으로 느껴진다. 선수단의 안전과 원정 응원단의 안전을 모두 책임지기에 남아공 정부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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