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평론]평면과 화면의 새로운 중립지대-김중식의'더블 팝 아트'에 부쳐

2009. 12. 3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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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과 백자철기 136x245cm

이미지를 화면에 정착시키는 일은 회화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다양한 변화를 밟아 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상을 '묘사하고' '그리는' 일은 회화의 가장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방법론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한편으로는 고답적인 목적의식으로 말미암아 회화를 오랫동안 정체시키는 원인으로서 작용하여 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현대회화는 바로 이 정체성(停滯性)의 장애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표현의 한 대상으로 설정한 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현대회화는 우선 회화 자신을 묘사하는 지점, 예컨대 '회화란 무엇인가?'하는 자의식으로 향한 물음과 더불어 그 기능과 역할, 나아가서는 그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에 시선을 두고 자신의 미래를 역동적이고 광활한 실험의 영역으로 이끌어 갔다.

바로 '그리는' 일의 앞뒤에 자리 잡을 행위성, 곧 '긋는' 일과 '칠하는' 일이 회화의 전면으로 돌출하게 되는 예가 그것이며 추상회화의 새로운 전개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실마리를 확보하기 시작했었다. 무엇인가를 그리는 전후의 긋는 일과 칠하는 일은 그 무엇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자유로움과 연결 된 채, 스스로의 진행형으로서의 동작 상태를 표현대상으로 승격시켰기 때문이며 한결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자세를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클라크케이블과 백자주자 135x180㎝

그리고 이러한 자립적 시각의 확보는 문맥적으로 '무목적의 목적성'과 같은 자율의 이념아래 보다 다양한 창조적 방법론을 일구어 내며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게도 되었다.

그것은 특히 긋는 일과 그리는 일의 전초단계로서 상정되는 '스미고' '흘리고' '뿌리고' '번지고' '찍는' 일들을 화면에 자립적으로 실존시킨 채, 마침내는 행위와 장(場;바탕)과의 상호관계로부터 실행되는 '뚫고' '찢고' '태우는' 따위의 이른바 개념적 공간창조로 까지 이어지는 추상의 맥락을 열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추상으로 향한 일방적 관계가 팝아트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미지의 재등장과 함께 표현방법에 있어서 차갑고 기계적인 메커니즘의 활용을 통해 보다 복합적인 이미지의 문맥을 형성하며 더욱 자율적인 회화의 신화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작가 김중식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회화를 출발시킨 채, 회화의 본질과 그 기능에 관한 물음을 시각적인 재해석의 실험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표현어법으로 승격시켜 놓았다. 그는 우선 두 가지의 서로 상충되는 화면을 겹치게 하여 이미지를 중첩시키는데 그것은 손으로 그리는 대상적 이미지의 화면과, 구멍이 병열로 뚫린 인쇄 메커니즘의 평면적 화면이 한 곳에 상충하여 일련의 시각적 '일루저니즘'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그러한 것이다.

오드리 헵번의 회상 135x180㎝

이 양면적 복합체의 화면은 마치 그리는 일과 찍는 일의 주객관적인(상호 객관주의) 접합 점을 교란시켜 일어나는 인식의 혼란을 상징하는 듯 이미지의 감각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공간창출이라는 이중적인 시각상을 한 화면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관계의 조율을 통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해 보고도 있다. 이른바 '그린 화면'과 '인쇄화면의 비교를 통한 상호관계를 시각적으로 조율한 채, 그림의 주객관적 프로세스가 갖는 차이점을 표현의 한 양상으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그것이며 여기에서 비교, 종합되는 두 개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그려진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려진 것과 인쇄된 것 사이의 관계가 절충적으로 예시되는 듯한 느낌을 던지고도 있다.

그것은 결국 '인쇄 이미지의 묘사와 그 묘사 이미지의 표현'이 기묘하게 만나 또 다른 일루전의 세계를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새로운 시각적 창조성의 문제를 다각적인 차원에서 다루어 보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회화가 회화 자신의 수단과 방법론을 실험과 표현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소년의 미소

그것은 특히 기존의 익명적이고 균질적인 인쇄 이미지를 손으로 그리고 그 위에 인쇄의 메커니즘과 같은 망점의 그림을 중첩시킨 다음, '그리는' 일과 '찍는' 일의 상호관계를 중립적으로 설정한 채 그 망점 구멍들의 숱한 개체성이 기묘하게 통일적인 평면의 구성인자로서, 전체로 향해 다시 환원되게 해 주는 구조다.

그 결과, 전체와 개체는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의 존재성을 순환시키는 자세를 갖으며 하나의 표현으로서 성립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종래의 팝 아트와는 다른 김중식만의 팝이라 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포스트 팝 아트의 한 양상이라 할 수 있는 '더블 팝 아트'(원래 팝아트는 대중이라는 '팝'과 순수미술이라는 "아트'의 합성어인 까닭에 미술 자체를 연구 분석하는 미술이라는 뜻에서 아트+팝+아트로서 '더블 팝 아트=이중의 팝 아트'라 불러 본다.)의 세계가 거기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도 팝아트의 대중소비문화의 아이콘과 일상적 소재들을 그대로 원용하여 등거리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그 소재는 대중미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한 단편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회화라는 실험대 위에 놓인 이미지의 발생과 그 프로세스의 해부라 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이미지의 발생과정이 갖는 미술적 시스템의 한 양태의 객관적인 노출과 그 응용일 따름이다.

맬러린 먼로, 달 항아리, 반가상, 모나리자, 오트리 헵번 등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이미지가 화면에 그려지면서도 그것이 어딘가 생경하고 중화된 느낌을 동반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가 거기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팝 아트의 새로운 변주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비판적 회화의 새로운 추진자로서 화단에 새롭게 데뷔하고 있는 셈이며 거기에 나타나고 있는 일루전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가 애당초 갖는 오류와 착각의 프로세스를 새삼스럽게 기만하여 화면이 갖는 무수한 시각적 정서와 감수성을 또 다른 차원 속에 새롭게 일구고 환기시키는 순환적 추진체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근원은 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한 점이 모여 큰 형태가 되고 깨진 유리조각이 모여 원형이 되고, 작은 먼지가 모여 형태가 만들어지고, 나의 그림은 언제든지 깨질 수도 있고, 흩어져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질서가 깨어질 수도 있는 그런 집합체인 것 같다."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의 아르케에 대한 독백 같은 작가 자신의 독백은 그의 순환적 의식의 한 단면을 다시금 확인하는 느낌이다.

글: 윤우학(미술평론가)정리:스포츠월드 온라인 뉴스팀 ◆김중식(Ye Kim)

충남 공주.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와 파리 그랑쇼미에르 아카데미 수학. △개인전=필립 강 갤러리 기획전(필립 강 갤러리), 찬란한 유산 소품기획초대전(갤러리 작), 신한PB갤러리초대전(역삼동 스타타워), 공평아트스페이스 초대 기획전(공평 아트센터) 등. △아트페어=코엑스KIAF 아트페어 필립강 갤러리(코엑스대서양홀), AHAF ART FAIR 필립 강 갤러리(그랜드하얏트호텔, 서울), ART0 ART FAIR 필립 강 갤러리(해운대 센텀호텔, 부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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