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 마음의 고향
[한겨레]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일본에서 왕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 또는 고유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을 모신 곳이 바로 신사(神社)다.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도리이(신사 정문)를 앞세운 신사 하나쯤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으며 일본 정치권의 참배 문제로 공분을 자아내는 도쿄의 야스쿠니신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신사는 따로 있다. 일본 열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인 혼슈 중남부 지역에 위치한 미에현의 이세신궁이다.
이세신궁을 찾았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신사 들머리에 세워놓은 도리이가 빗방울을 튀겨냈고, 내궁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나무난간은 물기를 머금어 번들거렸다. 400년의 나이테가 그려진 삼나무는 흩뿌리는 빗줄기에 아랑곳없이 위엄을 풍겼다. 무채색의 하늘은 낮았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는 내궁의 정전(正殿)은 낮게 신음했다. 지천명을 넘겼음직한 초로의 신사에게 "미에현의 매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술어는 형용사이겠거니 했는데 고유명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답은 "미에현은 이세신궁이다"였다.
이세신궁이 무엇인가. 미리 살펴본 자료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 역사를 간직한 일본 최대의 신사. 일본 전역에 산재한 신사들의 총본산. 도쿄의 메이지신궁, 오이타의 우사신궁과 더불어 일본 3대 신궁의 반열에 올라 있음.' 가이드 역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 꼭 한 번 후지산에 오르고 이세신궁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빗속의 신사를 섬기는 일본인들은 경건했다. 웃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천황의 조상신을 제사 지내는 이세신궁은 추도시설이자 종교적 건물이지만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참배 이후 이세신궁을 찾는 것은 일본 정치계의 연례행사가 됐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다섯 번이나 참배했다. 정치인들은 이세신궁을 통해 사제 구실을 자임한다. 정치적 권위 획득과 국민 단결이 노림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총리의 이세신궁 참배가 일본 평화헌법이 정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이다. 이세신궁에서 정치와 종교는 따로 놀지 않는다.
내궁 지척에 듣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물게 하는 이름의 골목길이 나 있다. 오카게요코초. 우리말로 풀면 '덕분에 골목'이다. 에도 메이지 시대를 재현한 풍물거리에는 유달리 먹을거리가 많다. 지지고 볶고 끓이는 냄새가 거리를 메운다. 이세신궁을 참배한 사람들 거개가 당연한 수순처럼 단팥으로 겉을 싼 떡인 아카후쿠를 산다. 떡은 300년의 역사를 지녔다. 미에현의 또다른 볼거리인 세키슈쿠는 그 옛날 먼 길 죄어 이동하던 사람들이 중간에 잠시 묵어 가던 일종의 역참 마을이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단층 가옥들은 더러 상점으로, 더러 살림집으로 여전히 쓰임새를 잃지 않았다. 녹슨 광고판, 이가 빠진 질그릇, 골동품 커피포트 등 추억의 오브제들이 거리 곳곳에서 시간을 뒤로 당긴다. 골목 어딘가에서 부어오른 발바닥을 주물렀을 과객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길 떠난 자의 외로움을 달래줄 유곽이 존재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세키슈쿠는 정주하지 않는 자들의 공간이었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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