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 "DMZ 근처 농지 사라" 권한 까닭은?



'상품투자의 귀재, 금융시장의 인디애나 존스, 월가의 전설….' 짐 로저스 앞에는 늘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만 어쨌든 지금 그의 명함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한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杰姆ㆍ羅杰斯.' 중국어로 읽으면 '제무 뤄제쓰'로 얼추 영문과 비슷한 발음이 나온다.
그의 현주소는 싱가포르 분레이가(街). 월가를 호령하던 투자 거장은 어느새 친근한 아시아 지역 주민이 돼 있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로저스는 아시아와 원자재, 그 가운데 농업의 투자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주식보다 상품을 선호하는 투자관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웬걸, 한국에 대해선 전에 없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눈치다.
지난주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행사장인 서울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은 올 때마다 발전상이 놀랍다. 참 기분 좋다"며 운을 뗐다.
인터뷰에 앞서 핑크색과 하늘빛이 섞인 나비 넥타이를 정성스럽게 매만졌는데 공식적인 첫 인사는 "한국 사람들은 복 받았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앞으로는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전 세계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직도 한국을 개발도상국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로저스 회장은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며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되면 말 그대로 파워풀(powerful)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식되는 북한이 오히려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얘기다.
흥미로운 얘기도 꺼냈다. "나 같으면 한국 비무장지대(DMZ) 근처에 농지를 사 두겠어요. 아마 투자 차원에서 수익률이 괜찮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정치ㆍ군사적인 이유로 자유로운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향후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면 환경적 가치(생태보호구역)와 생산적 가치(농업 또는 공업단지)가 가격 대비 크게 뛸 것이라는 계산이다. 서울과도 가까워 부동산으로서의 잠재가치도 높다.
사실 여기에는 원자재와 아시아에 대한 로저스의 밝은 전망이 깔려 있다. 최근 다우지수가 1만을 넘나들고 있지만 주식시장에 대해선 "향후 10년간 박스 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비관적이다.
실제 최근 2년간 중국 주식 외에는 어떤 주식도 산 적이 없다고 했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향후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고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또 다른 거품이 미국 채권시장에서 터질 것"이라며 조만간 미국 채권을 모두 팔 생각이라고 했다. 반면 원자재 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원자재 시장은 외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며 1999년 이미 호황이 시작됐지만 그는 향후 10년 동안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데 공급은 매우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80~90년대 광산, 설탕농장은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원자재 공급이 모두 줄었다. 미국의 경우 1969년 세워진 납 제련소가 가장 최신 시설이며 유전들도 모두 60년대 이전에 발굴된 것들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이지만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중국도 이제는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 됐다.
로저스 회장은 "세계 경제가 회복되든 더 나빠지든 원자재는 가장 매력적"이라고 단언했다. 세계 경제가 나아지면 그만큼 생산적인 수요가 더 생길 것이고 다시 침체기에 들어설 경우 각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더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결국 실물자산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우디 정부는 1988년 이래 매년 원유 매장량이 260억배럴이라고 발표하고 있어요. 어떻게 21년 동안 매장량이 변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믿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어느 순간 원유 가격은 올라갈 거예요."
현재 중국과 인도의 1인당 원유 소비량은 각각 한국의 10분의 1, 20분의 1 수준이다. 두 나라 23억명의 인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원유를 쓰게 될지 쉽게 상상이 간다. 반면 최근 국제에너지기구는 원유 공급이 매년 6.7%씩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5~20년 뒤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원유를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근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금(Gold)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로저스 회장은 "2018년께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지금은 금을 살 시점은 아니라고 했다.
"현재 금과 은을 가지고 있지만 더 사지도 않고 그렇다고 팔 생각도 없어요. 경험상 뭔가가 계속 오를 때는 투자하기 좋은 타이밍이 아니에요. 그러니 지금 당장 투자를 한다면 금보다는 차라리 고점 대비 70% 싸게 거래되는 은이나 60% 싸게 살 수 있는 플래티넘을 고르세요."
개인투자자들에겐 향후 원자재 가격이 조정받길 기다려 분할 매수할 것을 권했다. 현재 펀드를 환매한 뒤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면 은이나 천연가스처럼 가격 부담이 덜한 원자재에 투자하되 수수료가 싼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형 펀드에 가입할 것을 추천했다.
원자재 투자 전문가라면 원자재 가격 상승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직접 선물시장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몸값이 뛸 원자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농작물이다. 작물 공급량은 수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로저스 회장이 DMZ와 민통선 근처 농지를 사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심지어 "진로를 고민한다면 농업분야에 뛰어들라"고 조언할 정도다. 이 부분에서 그는 다시 한번 통일 한국의 잠재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통일되면 북한의 풍부한 원자재와 남한의 자본, 기술력, 경영능력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동시에 7500만명의 내수시장이 형성된다. 게다가 미래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한자와 유교문화를 공유하며 또 한 번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로저스 회장은 "한국이 일본을 위협할 만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북통일이 예상외로 '빨리'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북한을 스리랑카, 미얀마 등과 함께 투자유망 지역 리스트에 올려 놓은 상태다. 아직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북한에 사모펀드(PE) 등 새로운 투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닌 게 아니라 로저스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은 미국이나 서구에 관심을 갖는 대신 아시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성공하면 세계 1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한국인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2~3년간 다른 나라에서 살며 전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중국어 배울 기회, 두 딸에게 선물로 주려고 싱가포르로 이사왔죠
67세 로저스 회장의 평생 투자철칙은 '실제 이해하는 것에만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새로운 투자대상을 찾아나서기 위해 두 번이나 세계일주에 나섰다. 1990~1991년 오토바이를 타고 22개월간 52개국, 10만4607㎞를 돌았으며 1999년엔 노란색 메르세데스를 타고 무려 3년 동안 116개국 24만4620㎞를 달렸다.
두 번째 여행에는 스물여섯 살 연하인 아름다운 예비신부 페이지도 동행했는데 밀레니엄을 맞아 여행지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1999년 5월 18일부터 31일까지 한국에 머물렀는데 당시 "한국에 여전히 투자규제가 많은 점과 남아에 비해 여아 수가 적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한 바 있다(개고기와 번데기는 아주 맛있다고 했다).
이번에 서울을 찾은 로저스 회장은 일정이 조금 피곤하다면서도 자신이 '역사적인 전환점'을 겪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세기를 미국이 지배했듯이 21세기는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아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년의 투자대가는 뉴욕의 아파트를 팔고 싱가포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저축도 미국 은행이 아니라 싱가포르 은행에 한다. 그는 "내가 어린 두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시아에 살면서 중국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만족해했다.
"역사적으로 권력은 돈이 있고 자산을 쥐고 있는 쪽으로 움직이죠.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전 세계 채권국과 자산이 모두 아시아에 있습니다."
그는 전반적인 세계 경제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통화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미국 경제 자체적인 문제의 분출이 남았다고 본다. 돈을 좇아 움직이는 로저스 회장이 아시아 경제의 항구로 이사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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