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프랑스 비시정부 총리 피에르 라발 총살형
1945년 오늘 독일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괴뢰 정부였던 비시 정부의 총리 피에르 라발이 국가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1883년 6월28일 프랑스 중부 샤텔동에서 태어난 라발은 원래 동물학을 전공했다. 1903년 사회당에 입당한 뒤 생디칼리즘 사상가 조르주 소렐 등의 영향으로 진로를 바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1914년 사회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상원의원으로도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화주의자 성향이 강했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등으로 우경화 바람이 불던 20년 사회당을 탈당했다. 1930년대 외무장관 등 수많은 장관직을 역임했고 두 차례 총리직에 올랐다. 그의 정치적 성향도 차차 우파쪽으로 이동했다.
라발은 반공주의자였다. 외무장관이던 35년 나치 독일에 공동 대항하기 위한 소비에트와의 협정을 지연시켰고 파시스트가 장악한 이탈리아와의 협력을 추구했다. 40년 히틀러의 군대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파리까지 쳐들어오자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필립 페탱 등과 함께 '휴전파'의 선봉에 섰다. 이후 페탱의 비시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무장관과 부총리로 활동했다.
라발은 그해 10월 독일과 개인적으로 협상했다는 이유로 페탱에 의해 해임당했다. 하지만 42년 히틀러의 신임을 얻으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노쇠한 페탱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총리에 오른 42년 4월부터 비시 정부는 완전히 나치 체제로 변질됐다. 라발은 독일의 승리를 확신하고 이를 공공연히 선전했다. 나치의 각종 억압과 유대인에 대한 말살 정책에 협조했다.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공격이 시작되자 나치 정권은 그해 11월 비시 정부가 통치하던 프랑스 남부 지역마저 독일 점령 지역으로 바꾸어 버렸다.
44년 프랑스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자 라발은 독일의 보호를 받기 위해 동쪽으로 달아났다. 45년 독일이 항복한 후에는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떠돌다 8월말 미군에 항복했다. 프랑스로 송환된 라발은 대법원에 의해 반역죄가 선고됐다. '국민 영웅'이었던 페탱에 비해 라발은 변론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었다. 재판도 급속도로 진행됐다. 라발은 음독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사형대에 서야 했다.
라발은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재판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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