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세계인 유혹 나선 '떡볶이의 변신'

2009. 10. 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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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의 간식'에서 한식 주력상품으로… 퓨전떡볶이 개발 외국인 입맛 공략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궁중음식에서 서민들의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으로 바뀐 떡볶이가 열량만 높다는 정크 푸드(열량이 높고 영양가는 낮은 패스트푸드·인스턴트식품)의 오명을 벗고 세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난 7월 떡볶이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두 젊은이의 고군분투를 그린 EBS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떡볶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보다 앞선 5월4일에는 떡볶이가 비빔밥, 김치, 전통주와 함께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한 한식수출 4대 주력식품으로 선정됐다.

세계와 만난 떡볶이

"현지인들은 원더걸스 노래는 알던데 한국은 모르더군요. 그런데 신기하게 태극기는 또 알아봐요. … 당연히 떡볶이가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죠. 심지어는 음식인지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리사 박민철씨(27)와 박준호씨(24·우송대 외식조리학과)가 세계에 떡볶이를 알리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이들은 EBS <리얼 실험프로젝트 X>에서 기획한 'Do you know 떡볶이?' 편의 체험자로서 태국 방콕에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떡볶이를 몸소 연구하고 돌아왔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취지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 이들은 떡볶이를 선택했다. 박민철씨는 "떡볶이는 국내 소비량은 많지만 타 한식에 비해 해외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한국 특유의 매운 맛이 있는 떡볶이를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떡볶이 세계화를 위해 나선 곳은 태국 방콕의 카오산 거리이다. 세계 배낭여행객의 1번지라 불리는 카오산 거리에서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에게 떡볶이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한국식' 고추장 떡볶이를 만들어 카오산 거리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현지인과 여행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무료라고 설명했지만 맛을 보기는커녕 외면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박준호씨는 "그나마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도 먹어보지는 않고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 하는 수준이었다"면서 "그 가운데 맛 본 사람들도 맵다거나 애벌레 같이 생겨서 먹기 싫다며 자리를 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설문을 실시하고 반응을 살폈다. 이상하게 생겼다는 의견부터 맵다는 의견까지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우선 떡볶이 맛 자체가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떡이 주는 쫄깃쫄깃한 조직감(씹는 맛)을 꺼려했다. 특히 떡에 생소한 서양인들의 거부반응은 심했다. 떡볶이의 매운 맛도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매운 맛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매운 맛을 견디지 못했다. 매운 맛에 익숙한 태국인이나 멕시코인은 자극적이면서 끝이 깔끔한 매운 맛을 원했다. 결국 매운 맛과 쫄깃함이라는 떡볶이의 가장 큰 특징이 외국인에게는 단점인 셈이다. 이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박민철씨는 "떡과 고추장이 주재료인데 그걸 싫어하니 정말 난감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떡과 고추장이라는 최소한의 틀만 지키고 나머지는 모두 바꾸기로 결정했다.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 이들은 처음 시식회를 연 카오산 거리에서 다시 외국인에게 떡볶이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시식회가 아닌 판매였다. 1인분 가격은 현지인들이 길거리에서 사먹는 간식과 비슷한 20바트(약 730원)로 정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80인분의 떡볶이가 한 시간도 안 돼 다 팔렸다. 떡볶이 세계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박민철씨는 직접 부딪쳐 얻은 떡볶이 세계화의 성공 비결을 '현지화'로 내다봤다.

"떡에 익숙한 중국인과 일본인에게는 쫄깃한 떡에 순한 소스가 어울려요. 매운 고추를 즐기는 태국인이나 멕시코인에게는 인상적인 강력한 매운 맛의 떡볶이가 들어맞을 것 같아요.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는 부드러운 떡과 그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써서 친근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결국 그 나라의 입맛과 문화를 모두 고려한 현지화가 떡볶이 세계화의 필수조건인 것 같아요."

세계화의 주춧돌 떡볶이연구소

두 젊은이의 도전이 일회적이라면 이들보다 체계적으로 떡볶이 세계화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 바로 떡볶이연구소다. 지난 3월11일 개소식을 가진 이곳은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8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떡볶이 전문 연구개발센터다. 당연히 세계 최초의 떡볶이 연구소다. 이름만 듣는다면 웃음이 먼저 나오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연구소는 한식의 세계화 및 국내 농식품 수출 확대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상표 떡볶이연구소장(48)은 "떡볶이를 세계의 명품요리로 발전시켜 쌀 가공식품 산업의 수출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고 밝혔다. 연구소가 세워지기까지 정부의 떡볶이 산업 활성화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올 3월 농림부는 9000억원 규모의 떡볶이산업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14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구소는 이 가운데 일부 금액을 지원받아 떡볶이를 세계에 알릴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연구소의 목표는 단순명료했다. "한식 세계화며 수출경쟁력이며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우리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떡볶이를 개발해 조리법을 표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세계 각국에 떡볶이를 수출해 국내에 남는 쌀을 처리하는 동시에 쌀 가공식품산업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하필 떡볶이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불고기나 잡채 등 한식을 두고 떡볶이가 4대 주력제품에 선정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떡볶이는 영양소가 불균형하고 고열량인 길거리 '간식'이기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다른 한식들은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 수출하기 힘들다"면서 "떡볶이는 간소하게 만들어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다"고 주장했다.

세계화를 위한 노력

연구소가 떡볶이 세계화를 위해 내디딘 첫걸음은 지난 3월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연 '2009년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이었다. 농림부와 쌀가공식품협회가 주최한 페스티벌에는 외국인 1030명을 포함해 총 5만820명이 방문했다. 이 소장은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었다"고 회상했다. 행사장 규모에 비해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입장까지 한 시간 이상 줄을 섰고 시식용 떡볶이가 부족했다. 그만큼 떡볶이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소장은 "국민적 관심을 파악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면서 "이 자리를 통해 떡볶이에 관심을 보인 외국 사업체들과 상당한 사업의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떡볶이의 해외시장 안착을 위해 구상 중인 방법은 떡볶이 전문 프렌차이즈의 설립이다. 한국의 떡볶이처럼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 한 끼의 식사로서 세계에 진출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한국에서처럼 길거리에서 파는 수준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면서 "프렌차이즈가 성공하면 각국의 레스토랑에서 메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설명했다. 프렌차이즈의 성공을 위해서는 떡볶이의 표준화가 필수다. 나라마다 입맛에 맞는 매운 정도가 다르고, 떡볶이의 씹는 맛에 대한 선호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한식처럼 떡볶이도 '참기름 몇 방울', '고추장 적당히'처럼 조리법이 불분명하다. 떡볶이의 조리 과정을 하나로 묶어 입맛에 맞게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떡볶이 전문 프렌차이즈 성공의 열쇠다. 이 소장은 "120년 넘게 제조비법은 간직해 온 코카콜라처럼 남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비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화 추진을 위해 떡볶이를 알릴 수 있는 외적 작업도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떡볶이 영어 네이밍과 캐릭터 작업이다. 국내 영문표기법에 따르면 떡볶기는 'Tteokbokki'이다. 이는 너무 길고 복잡하여 외국인이 기억하고 발음하기 어렵다. 연구소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이름부터 친숙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언어학자와 요리전문가, 마케팅 전문가를 모아서 네이밍 작업을 시작했다. 이 소장은 "영어권 외국인이든 비영어권 외국인이든 모두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다"면서 "떡볶이의 발음인 '떡뽀끼'에 가장 유사한 'Topokki'로 표기하기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떡볶이 종류와 재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캐릭터를 완성했다. 예를 들어 길쭉한 떡볶이는 토키(Tokki), 어묵은 토코(Tokko) 등(사진참조)이다.

민간 차원의 도전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국민 간식'의 세계화가 주는 의미는 크다. 이는 국내 쌀 재고량 문제 해결과 쌀 가공식품 산업의 발전 등 경제적인 이익뿐 아니라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미국으로 유학 가서도 떡볶이 메뉴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박민철씨는 "떡볶이를 수출하는 것은 음식을 판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면서 "전자제품처럼 떡볶이로 한국을 세계에 알릴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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