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민 "생활고+자살결심..지난 9년간 내 인생은 단절이었다" (인터뷰)


[뉴스엔 글 윤현진 기자/사진 박준형 기자] "20년 돌아와 내 운명을 찾았다. 연기는 내 삶의 이유, 연기없이 난 살 수 없다"
배우 임성민이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로 돌아왔다.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대사 한마디 없는 식물인간 춘자씨다. 하지만 임성민은 말이 아닌 눈빛으로, 온 몸으로 연기했다. 오랫동안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잘라내며 삭발 투혼까지 발휘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춘자씨는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대화 한 번 나눌 수 없고 눈빛 한 번 제대로 마주칠 수 없지만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시종일관 누워만 있는 그녀를 끔찍하게 아껴주는 남편과 영혼으로 교감한다. 아내가 깨어났을 때 멋지게 보이고 싶다며 쌍꺼풀 테이프까지 붙이며 간호하는 남편의 사랑은 눈물겹다.
"이 영화는 감독님이 유독 배우들에게 큰 미션들을 주셨다. 김명민씨는 20kg의 체중을 감량했고 나는 삭발을 했다. 원래 삭발은 당초 대본에 없었다. 영화 촬영중 감독님이 증흥적으로 제안하셨다. 감독님은 강요하지 않으셨고 오로지 선택을 내게 맡겼다. 그리고 3일 후 삭발을 했다."
임성민이 이토록 과감한 변신을 감행한 이유는 사람들의 편견,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온전히 배우로 대중 앞에 서고 싶었다. 아직도 그녀를 아나운서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대사 한마디를 내뱉더라도 그것을 연기로 보지 않고 아나운서의 언변과 연결시킨다. 그래서 과감히 선택했다. 민낯에 삭발일지라도 아나운서가 아닌 배우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예전부터 대사가 없거나 말 못하는 독특한 역할에 대한 도전을 계속 꿈꿔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배우로서의 도전을 넘어서 인정받고 싶었다. 예쁘게만 보이려고 노력하기에는 그녀 자신이 너무 비겁하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
"난 소속사의 힘을 얻고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기획사 힘도 없고 감독님들이 생각했을 때 나를 연기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일단 반신반의한다. 비록 이번 영화속에서 삭발한 모습이 많이 비춰지지 않더라도, 설령 한 장면일지라도 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에 대한 내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로 살아가면서 이런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하고 싶은데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다 걸고 후회없이 연기하자고 생각해 삭발했다."
머리를 깎던 날 끝내 임성민은 눈물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배우이기에 앞서 한 여자였다. 평생 배우로 살 것을 다짐했지만 혹시나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지 쉽사리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녀는 배우이고 싶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꽃피워내야 할 과정이라면 부딪히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내가 갈 길은 배우다. 난 연기가 아니면 다른 것에서 의미를 못 찾는다. 그 전에는 내가 배우로 계속 살아가도 될지 의심도 했다. 30대까지는 계속 그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주어진 운명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용기내서 곧장 가지 못하고 20년을 돌아서 지금에 왔다.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머리를 자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배우로 살아가기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지난 9년간의 연기생활은 단절이었다. 작품을 한 번도 이어서 한 적이 없었다. 일도 기능적인 면이 있는 법인데 1년에 한 편 할까 말까한 작품을 끝내고 다시 8~9개월을 기다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연기에 대한 감을 놓치지 않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연기와 배우로서의 단절 때문에 생활고도 겪었고 자살도 결심했었다.
"유독 내가 고심 끝에 들어간 매니지먼트사들은 사장이 돈을 갖고 횡령하거나 도산, 또는 매니저가 매번 바뀌더라. 매니저와 호흡을 맞추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여러가지로 힘든 시절이 있었다. 정말 단절의 연속이었다. 다 됐던 캐스팅도 힘 있는 기획사에서 내세운 배우들이 꿰차면서 막판에 뒤집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말 힘들었다. 난 죽도록 열심히 하고 싶은데 할 게 없었다. 기회도 주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외면과 더불어 연예기획사, 감독들의 외면이 참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좋은 회사와 매니저를 만나 안정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임성민은 이토록 힘겨운 배우의 길로 들어섰을까? 다들 아나운서로만 먼저 떠올리는 그녀는 사실 10대 후반부터 배우를 꿈꿨다. 학창시절에는 응원단장, 치어리더, 중창단 등 늘 무대를 섭렵하는 그야말로 무대체질이었다. 중간고사, 학기말 고사보다 문학의 밤, 연주회, 콩트 등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워낙 보수적인 집안환경 때문에 연극영화과로 지원할 용기는 없었고 일단 영어교육학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삼수 끝에 아나운서에 합격했고 후회없이 정말 열심히 생활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다.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나운서로 합격했고 그것마저 쉬이 넘길 수는 없었다. 일단 뭐든지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KBS 공채 탤런트 시험에도 합격했었고 아나운서로 살아가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연극교실에 다니며 연기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연기란 살아있는 원천이다. 내 존재의 이유다. 왜 그러냐고 설명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비유하면 조금 거창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황병기 선생님이 가야금을 만나듯이 내게 연기란 그런 운명같은 존재다. 그만큼 당연하고 간절하다. 지난 40년동안 화두가 돼서 내 인생을 쫓아다니는 것만 봐도 난 정말 연기없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9년 경력의 배우 임성민은 벌써 불혹의 나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독신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다. 그녀가 처음 아나운서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일을 계속 하기 힘들었다. 결혼을 하면 방송을 놔야 했단다. 혹시 결혼해서 일을 이어가더라도 라디오 뉴스다 보조MC로 세월을 거꾸로 가야 했다. 그래서 결혼은 일단 제쳐두고 일에 더 매달렸었다. 사랑보다 일에 더 욕심이 많았다.
"처음 아나운서가 됐을 때 부장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방송하고 싶으면 결혼하지 말라더라. 아직도 그 말이 생생하다. 삼수 끝에 아나운서로 합격한 내 입장에서는 일을 놓칠 수가 없었다. 어렵게 됐는데 결혼해서 다 끝나면 어떡하나 억울했다. 난 일에서 더 큰 성취감을 얻고 보람을 찾는 타입이다. 일을, 연기를 못하게 된다면 난 살 의미가 없다.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그래서 20대에는 그런 이유로 결혼을 못했고 33살에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후에는 배우로 살기 위해 갖은 시련을 겪으며 자리를 잡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남자를, 사람을 더 현명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내 곁에 남자가 없다."
한편 임성민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이후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방영됐던 SBS 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 이후 1년만이다. 임성민은 2010년 첫방송 예정인 드라마 '동방의 빛'에서 명성황후의 상국 역으로 출연한다. 기존에 알려졌던 상궁의 모습이 아니라 독립운동에 은밀하게 가담하는, 궁 밖의 비즈니스에 충실한 상궁이다. 오는 11월부터 안동에서 첫 촬영을 시작한다.
윤현진 issuebong@newsen.com / 박준형 soul1014@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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