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14) 장군총과 태왕릉

2009. 9. 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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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鴨綠江)은 흐른다. 천지(天池)의 맑은 물은 백두의 골을 흘러 흘러 임강(臨江)을 지나, 집안(集安)을 거쳐, 단동(丹東)에서 황해와 만난다.

 압록강 중류의 바로 옆, 집안 땅에 고구려의 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집안현을 보는 것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읽는 것보다 낫다'고 했을 정도다.

 기원전 37년 혼강(渾江) 유역에서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는 서기 3년 홀본성(紇本城, 지금의 환인)에서 압록강변으로 천도한다. 그리고 국내성(國內城)과 위나암성(尉那岩城, 지금의 환도산성)을 축성하고 425년 동안 '강한 왕국' 고구려의 정치 문화 경제 중심지였다.

집안시 경계를 알리는 현대식 문루

 원시 시대부터 인간이 정착해 농경문화를 만들었던 강가의 비옥한 땅에는 성곽이 남아 있고, 궁궐의 흔적이 있고, 수많은 고분 속에 고구려인의 숨결이 숨 쉬고 있다.

 2004년 7월에는 고구려왕성, 왕릉과 귀족 고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륙의 동북을 호령하던 고구려인들의 높은 문화와 정신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중국은 꽃 피는 5월부터 가을의 문턱인 10월초까지 집안시 문화광장에서 화려했던 고구려의 이야기를 대형 무용극 '몽영고구려(夢榮高句麗)'란 공연으로 재현하고 있다.

 집안 주변에는 1만여 기의 고구려 고분이 있지만 특히 '통꺼우(洞溝) 고분군'이 유명하다.

장군총 전경

  고구려 유적의 으뜸은 역시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將軍塚)'이다. '동방금자탑(東方金字塔),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돌무덤이다.

 집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4.5km 떨어진 용산(龍山) 자락에 우뚝 서있다. 먼 발치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앞쪽 화단은 세계문화유산을 상징하는 심벌로 장식해 놓았다.

 장군총은 위풍당당하다. 거대한 정방형 돌계단을 보는 듯 하다. 거친 듯 정교하게 다듬은 돌덩어리 1100여개를 쌓아올려 총 높이는 13.1m, 한 변의 거리는 31.58m인 총 일곱 단의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 중 가장 큰 돌은 높이 5.7m, 폭 1.12m, 두께 1.10m로 약 32톤이다.

계단식으로 축성한 장군총과 호석

  돌무덤은 사방에서 11개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이 받치고 있다. 원래 한 면에 3개씩 12개로 추정되는 호석 중 1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묘실은 다섯 번째 단의 정중앙에다 입구를 내고 한 변을 5m, 높이를 5.5m로 만들었다. 안쪽의 네 개 면은 여섯 단으로 석축을 쌓았고 천정은 넓이 50여㎡, 무게 50여톤에 달하는 커다란 석판으로 덮었다. 묘실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다. 1800년대 말까지 이곳에 두 개의 붉은 관이 놓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군총의 맨 위쪽 가장자리 돌에는 5m 간격으로 직경 약 9㎝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곳에 울타리를 박고 향당(享堂, 제를 올리는 건물)을 세운 흔적이란다.

 장군총에 서면 앞이 탁 트여 시원하다. 멀리 광개토대왕 비각와 태왕묘가 보인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이 곳에서 멀리 아버지의 묘를 내려다보고 있다. 과연 장군총이 장수왕릉일까.

천정석의 아래쪽 가장자리의 홈을 파 놓은 장군총의 배총

  장군총의 모퉁이에는 왕의 첩이나 호위 장수들의 묘로 추정되는 배총(陪塚, 딸린 무덤) 다섯 기가 있었다. 지금은 동북쪽 모서리에 고인돌 모양으로 한 기가 남아있다. 천정으로 사용한 넓은 석판의 안쪽 가장가리를 삥 둘러 홈을 파놓은 것이 눈에 띤다. 결로(結露) 현상을 막기 위한 고구려인의 지혜다.

 장군총의 북쪽면에는 관람객용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다. 돌과 돌 사이로 잡풀이 자란다. 세월이 돌 위에다 생명을 불어넣은 것일까. 장군총은 말이 없다.

 아들 장수왕의 묘는 당당하게 세월의 풍파를 이겨냈건만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묘는 그저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언덕 같다. 천년의 세월 동안 무너지고 파헤쳐진 틈새로 초록 풀만이 무성하다.

형태를 알 수 없게 훼손된 광개토대왕릉과 철제 계단

  한 면이 약 60m 안팎인 거대한 능임을 알려주는 것은 장군총처럼 주변에 놓인 커다란 호석과 높이가 14.8m인 봉분 정상 부근에 듬성듬성 남아 있는 석축 뿐 이다. 묘실도 초라하다. 그래도 현존하는 고구려왕릉 중 유일하게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능묘다.

 서기 391년에 세워져 '호태왕릉(好太王陵)'이라 불리는 광개토대왕묘 역시 철 계단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능 위에 서면 집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압록강 건너 벌거벗은 북녘 땅 만포시의 산야도 뚜렷하게 다가온다.

 호태왕릉은 장군총과 달리 묘실 입구가 서쪽으로 나있다. 대륙으로 꿈을 키우던 '위대한 왕'의 마음을 후손들이 잊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 객원기자 www.chinain.co.kr>   < scnewsrank > 고현정, 표정연기 100종 세트에 이어 16종 세트 나와 입을 연 이영애 "2세 계획은 나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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