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쟁력 평가, 신뢰도 부족" 인정

2009. 9. 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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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뉴스 톺아읽기] 기업 CEO 설문, 발표 때마다 일희일비 해프닝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6위나 추락해 19위를 기록했다고 언론이 난리법석이다. 국가 경쟁력은 WEF(세계경제포럼)과 IMD(국제경영개발원)에서 해마다 발표하는데 그때마다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가 쏟아진다. 잦은 파업과 과도한 정부 규제가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감세와 규제 완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정책 기조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달라진 게 없다. 문제가 뭘까.

제도적 요인이 28위에서 53위로, 노동시장 효율성이 41위에서 84위로, 금융시장 성숙도가 37위에서 58위로 떨어지는 등 대부분의 평가항목에서 순위가 내려갔다. 특히 특히 노사협력(131위), 해고비용(109위), 정책에 대한 인지도(100위), 은행 건전성(90위), 은행대출 용이성(80위) 등의 세부항목에서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기술수용 적극성(15위), 시장규모(12위), 기업혁신(11위) 등은 강점으로 꼽혔다.

▲ WEF 국가경쟁력 순위.

기획재정부는 당혹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전체 110개 항목 가운데 설문조사 항목이 78개로 3분의 2나 돼서 설문자들 특히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5월에 집중된 설문조사 당시 쌍용자동차 파업 등 노동시장이 크게 불안정했고 경제·사회 상황 악화가 약점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애초에 조사 시점에 따라 국가 경쟁력 지표가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고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주관적 요소가 많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걸 시인한 셈이지만 기획재정부는 해마다 여기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경제지들은 특히 후진적인 노사관계를 문제삼으면서 강성노조의 파업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해 왔다. 오히려 문제는 노사관계가 세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마인드 아닐까.

▲ 동아일보 9월9일 사설.

이번 조사에서 통계자료 항목은 평균 1.5단계 하락했지만 설문조사 항목은 15.5단계나 떨어졌다. 객관적 요소보다 주관적 요소가 더 크게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특히 꼴찌 수준을 기록한 노사협력(131위)과 정부 규제에 대한 부담(98위), 은행 대출 용이성(90위) 등은 우리나라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이 항목들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이들의 불만이 국가 경쟁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국제적 시선을 모은 쌍용차 파업 사태, 화물연대 죽창 시위 같은 후진적 노사관계와 이로 인한 사회 불안, 정치적 갈등이 주된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WEF 보고서를 인용해 "노사관계를 선진화해야 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히려 대결적 노사관계를 조장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신문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조선일보 9월9일 3면.

동아일보는 한술 더 떴다. "노동시장과 관련한 정부의 개혁능력 부족,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투쟁적 노사관이 두루 반영된 결과"라면서 "중하위권 국가 경쟁력을 그냥 두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 신문은 "노동시장 비효율과 정부규제 및 금융시장 취약성은 어느 조사에서나 공통으로 등장하는 한국의 고질병"이라면서 "선진시장으로 가자면 경제규모만 커져서는 안 되고 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쳐 한국병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지난 5월 발표된 IMD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27위를 기록, 지난해보다 4계단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비록 4개월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국가경쟁력 순위가 큰 편차를 보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고경영자 1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지만 각 분야의 대표성을 담보할만큼 정밀한 표본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민간 국제기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국가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정책 지표로 삼는 것도 문제가 많지만 언론이 이를 입맛대로 재단하고 해석하면서 정책 기조를 뒤흔들어 왔던 것도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보수·경제지들이 "강성노조 때문에 경쟁력 떨어졌다"고 비난하는 것 만큼이나 오마이뉴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한 것도 자가당착적이다.

애초에 국가 경쟁력을 하나의 지표로 산출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 문제가 많다. 설문조사의 대상과 주체가 다 다른데다 그 결과를 두고 순위를 매기거나 해마다 그 등락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IMD 국가경쟁력 지표의 경우 2007년 7위에 올랐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아예 순위에서 빠져 있는 상태다. 외신 보도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국가경쟁력 순위에 목을 매는 나라는 없다.

미디어오늘은 해마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객관성과 신뢰도에 문제제기를 하고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를 비판해 왔는데 올해 WEF 발표 관련 보도는 비교적 예년보다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6단계 추락", "노동부문 효율성 꼴찌", "노사관계 후진성 국가 경쟁력 갉아먹어" 등 선정적인 제목이 눈에 띄지만 상당수 신문이 WEF 발표를 단순 인용하는데 그쳤고 기사 비중도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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