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페이퍼진] 박종환 전청소년축구 감독 '멕시코 4강 뒷바라지'

2009. 7. 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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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 100년사에 `4강 신화' 두 가지가 기록돼 있다. 하나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4강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다. 그중에서도 멕시코 신화는 `박종환 신화'로도 통한다. 멕시코와 호주를 연파하고 8강에서 우루과이까지 깨버린 세기의 사건. 준결승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브라질에 무너지고 3~4위전에서 폴란드에 패해 4위에 그쳤지만, 세상에 한국 축구를 화끈하게 알린 쾌거였다. 희한한 일은 스코틀랜드와의 첫 경기서 0대2로 완패한 걸 빼놓고는 모두 2대1의 점수가 났다는 점이다. 이겨도 2대1로 이기고, 져도 1대2로 졌다. 매 경기 지옥의 승부였다는 얘기다. 그래서 온 국민이 더 흥분했고, 온 나라가 더 들끓었던 모양이다. 박종환 감독은 당시의 파죽지세 비결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다. "아, 우리가 이길 방법이 뭐가 있어. 전력 자체가 비교가 안 되니 체력하고 조직력밖에 더 있어. 그래서 얘들을 아예 기계로 만들었지, 뭐. 근데 진짜 재밌는 일은 따로 있어." 멕시코 얘기만 나오면 새삼 신바람 나는 박 감독이다.

◇박종환 감독은 2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얘기만 나오면 마치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처럼 진지해진다. < 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

 ▶피나는 준비, 비열한 그라운드

 "엄청 힘들었지. 멤버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는데 호텔은 꿈도 못 꿨어. 효창운동장 옆 여관에서 3인 1실로 합숙해 가며 운동도 거의 맨땅에서 했어. 잔디구장이라고는 파주 초입의 서울신탁은행 구장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신탁은행과 유독 연습경기를 많이 했단다. 잔디 한 번 더 밟아보려고. 박 감독은 빡빡한 훈련 일정에다 체력훈련 두 가지를 더 끼워넣었다. `운동장 열 바퀴'와 `마스크 훈련'이었다. 당시 실업팀, 대학팀들과 주로 연습경기를 했는데 `1실점=운동장 10바퀴'를 규칙으로 정해 놨다. 실업팀을 5대2로 이겨도 스무 바퀴를 뛰어야 했고, 경희대를 9대1로 이긴 날도 어김없이 열 바퀴를 돈 뒤에야 판을 접었다.

 "벌을 주자는 건 아니었어. 체력훈련의 연장선이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었지. 나중엔 강팀과 붙어도 한 골 이상 안 주더라고.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열 바퀴, 스무 바퀴 뛰는 것보다 경기 때 한 발 더 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지, 뭐."

 태릉선수촌에선 `미친놈들' 소리 들어가며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멕시코 고지대에서 버티자면 방법이 없었다. "처음엔 숨이 차서 5분도 못 뛰고 헐떡이더니, 나중엔 30분까지 뛰어내는 거야. 하니까 되더라고."

 야수처럼 강해진 체력 덕이었을까. 청소년팀은 국내 연습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지지를 않았다. 조별예선이 벌어질 멕시코 또르까에 도착해 적응훈련차 가진 멕시코 프로 2군 팀과의 3700m 고원 전투에서도 5대2로 이겼다.

 한국은 멕시코, 스코틀랜드, 호주와 함께 A조에 속해 있었으니 멕시코 신문들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얼마 후 불이익이 닥쳤다. 멕시코와의 2차전 전날 돌연 장소가 바뀐 것이다. 겁먹은 멕시코의 농간이었는데 FIFA까지 개최국의 텃세를 눈감아 줬다.

 경기 시각은 섭씨 35도의 낮 12시. 한국을 아예 녹여버리자는 심산이었다. 한데 박 감독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오냐, 한번 해보자. 뛰는 데는 이력이 난 우리 애들이다, 이놈들아.' 한국은 경기 당일 버스로 2시간을 이동하며 진을 뺀 후에야 10만 명이 운집한 아즈테카 경기장으로 들어섰다.물론 그곳이 강호 멕시코의 무덤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멕시코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출전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 폴란드와의 3~4위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골잡이 김종부(왼쪽).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주방장의 4강 신화

 당시 박 감독은 촌스러운 `파란 추리닝'을 입고 벤치에 앉았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웃는다. "아, 감독이 경기만 잘하면 되는 거지, 패션은 무슨…. 그냥 주는 대로 입은 거야." 박 감독의 신경은 온통 `이기는 것'에 쏠려 있었다. 이길 수 있다면 뭐든 했다.

 "안 해본 거 없어. 주방에 들어가 밥도 했는데, 뭘." 그랬다. 식사 당번은 박 감독이었다. 호텔 측의 허락을 받아 식당 한구석에서 요리를 했다. 모든 게 낯설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장을 봐 족탕에, 고기찌개에, 생선매운탕까지 해먹였다. 그러려고 애당초 30인용 압력밥솥과 기본양념을 가지고 갔다. 선수들은 쌀 닷 되씩 나눠 지고 갔고.

 천하의 호랑이 박 감독이 외국 호텔 식당 구석에서 밥하는 모습이라…. 좀체 연상이 안 된다. "밥만 했나, 뭐. 쌀 씻고, 찌개 끓이고, 설거지까지 다했는걸. 선수들이 일정 끝내고 유니폼 빠는 동안 난 샤워도 못한 채 식당에 들어가 밥 준비했어."

 멕시코를 깬 다음 날 점심을 준비하려고 식당으로 갔더니 난리가 났다. "주방 사람들이 신문을 갖고 와서는 나와 대조를 하더니 `뭐 필요한 거 없냐', `도와줄 거 없냐'며 법석을 떨더라고. 나를 한국팀 요리사로 알고 있다가 신문에 내 얼굴이 박혀 있으니 기절할밖에. 덕분에 쇠고기며, 마늘이며 잘 얻어먹었지. 자기네 나라를 깼는데도 되레 도움을 주더라고."

 멕시코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었으니 적잖이 놀랐으리라. 박 감독은 혼자 바빴다. 훈련시키고, 장보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팀 닥터가 없던 시절이라 다친 선수도 틈틈이 돌봐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불침번까지 섰다.

 "선수들 이탈 막으려고 밤마다 호텔 출입문을 지켰지. 현지 여고생, 여대생들이 선수들 꼬셔내려고 난리였거든."

 축구판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멕시코 4강'. 붉은 전사들의 놀라운 투쟁력과 `주방장 박종환'의 지극정성이 함께 빚어낸 신화라는 사실을 멕시코 사람들은 잘 안다.

  < 최재성 기자 kkachi@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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