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나쁜 엄마의 아들/박상규

2009. 6. 2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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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산골 조그만 동네에 남자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이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는 젊은이의 아들 영진입니다.

이 젊은이는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사뭇 고개를 숙이고 동네 사람들의 얼굴 보기를 꺼려했습니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은 젊은이를 보고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영진이와 또래인 지한이도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 젊은이를 보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지한이는 관심을 가지고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습니다.

"무슨 염치로 이 동네에 발을 들여놓은 거야?"

"사업한다고 저희 부모 등골 빠지게 벌어 장만한 땅 다 팔아다가 없애 버리고 뭘 또 부탁하려고 여기를 온 거야."

"그야 빤하지 뭐. 다방 마담하고 낳은 아이를 길러 달라고 왔겠지."

"하여튼 그 어르신들 자식 잘 못 둬서 늦게까지 고생하는 것 보면 안타까워요."

"젊은이가 예쁜 여자 얼굴에 반해서 저희 부모 땅 팔아 시내에 다방을 차려서 몇 년 동안 살림 한답시고 흥청망청 살다 아주 망해 버렸으니 이제 어찌할 거야?"

"그 다방 마담은 돈 다 날려 먹고는 남편과 아들까지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가고 말았대."

"그 여자 참 나쁜 엄마네요."

"젊은이 앞길 망친 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가슴에 못 박아놓고, 자기만 편하려고 떠난 그런 여자는 정말 나쁜 엄마가 분명하지."

아들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할아버지는 곁에 보이는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늙은 부모를 본 젊은이는 고개를 더욱 숙인 채 벌벌 떨었습니다.

"이 놈의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났어? 당장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난 네 놈을 용서 못한다. 지금 당장 되돌아가지 않으면 이 몽둥이로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쳐들어 아들을 치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젊은이가 데리고 온 영진은 할아버지의 다리를 꼭 잡고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할아버지도 손자가 빌며 애원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어서 내 눈 앞에서 없어져버려."

"네 아버지 저는 갈 테니 아들 영진이나 좀 맡아주세요."

"……"

"영진이 여기 학교로 전학 시켜서 잘 좀 가르쳐 주세요."

"……"

할아버지는 아들은 미웠지만 손자를 맡아서 키워주고 가르쳐 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영진아……"

할아버지는 들었던 몽둥이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손자 영진을 두 손으로 와락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안돼 보였습니다.

여태까지 젊은이를 흉보던 동네 사람도 할아버지의 우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영진이 아버지는 슬금슬금 도망가듯 동네를 빠져 나갔습니다.

"자식 잘못 둬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불쌍한 우리 손자 영진이를 잘 감싸 안아 주세요."

영진이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한이에게도 한 마디 했습니다.

"지한아, 앞으로 우리 영진이와 친하게 잘 지내줘."

"……"

"우리 영진이도 지한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할 거야. 아이들한테 우리 영진이 아빠 엄마 얘긴 하지 마라. 특히 영진이 엄마가 다방 마담이었다는 것은 아이들이나 선생님한테 말하면 안 돼. 절대 비밀로 해줘."

"……"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알면 영진이가 기가 꺾이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손자를 깔볼 거거든. 그래서 지한이한테 비밀을 지켜 달라는 거야 알았지?"

"……"

지한이는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영진 할아버지가 부탁하는 말에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한은 영진이가 지한이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얼굴도 더 잘생긴 것 같아 모든 면에서 밀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할아버지는 영진이를 고개 너머에 있는 학교에 전학을 시켰습니다.

영진이는 지한이와 한 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전학을 온 영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영진이는 아빠 엄마와 관련된 비밀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아이들 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전학 온 영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선생님 체육해요."

"체육은 왜?"

"새로 전학 온 영진이가 얼마나 센지 알아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졸라서 선생님도 아이들을 씨름장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씨름장에 반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습니다.

보통 때처럼 씨름은 작은 아이들부터 붙었습니다.

이기는 아이에게 다음 아이가 계속 맞붙어 마지막에 남은 아이를 가려서 챔피언 인정해 주는 것이 이 반의 전통입니다.

영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영진은 여러 아이들을 힘도 안 들이고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아이들은 영진의 씨름 실력에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씨름 실력이 제일 좋은 지한이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기면 챔피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응원 소리가 커졌습니다.

"지한이 이겨라."

"영진이 이겨라."

두 편으로 갈려서 하는 응원전은 뜨겁고, 신났습니다.

드디어 영진과 지한이가 씨름을 하기 위해 서로의 허리를 붙잡고 앉았습니다.

"너 나 이기면 안 돼"

"왜?"

"네가 나를 이기면 너의 비밀을 다 얘기할 거야. 알았지?"

"……"

지한이는 작은 소리로 영진에게 말했습니다. 위협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영진은 그 소리를 듣고 힘이 빠졌습니다.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실력이 비슷한 지한이와 영진은 있는 힘을 다해 이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구경하는 아이들은 손에 땀을 쥐고 씨름을 지켜보았습니다.

영진은 배지기 수를 넣어 지한이를 멋지게 쓰러트렸습니다.

모래밭에 얼굴을 처박고 엎어진 지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선생님 한 번만 더 하게 해 주세요."

"영진이도 괜찮겠지?"

"네. 좋아요."

"그럼 3판 2승으로 우리 반 챔피언을 결정하겠다."

영진과 지한이의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네가 안 져주면 여기서 넌 나쁜 엄마 아들이란 비밀을 애들한테 말해 버릴 거야."

"……"

지한이가 또 한 번의 경고를 했지만 영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진이 이겨라."

"지한이 이겨라."

아이들의 응원 열기는 점점 뜨거워 갔습니다.

지한이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영진은 지한의 발을 걸고 몸을 들어 한 바퀴 빙 돌린 뒤 모래판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지한은 아까보다 더 형편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영진이의 손을 번쩍 들어 승리를 알렸습니다.

"야, 영진이가 이겼다."

"영진이가 챔피언이다."

모래밭에 내동댕이쳐진 지한은 반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영진에 대한 분함이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영진이는 나쁜 엄마의 아들이다."

지한은 큰 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영진이 엄마는 다방 마담이고, 영진이 아버지를 망하게 한 사람이래."

선생님과 아이들은 지한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한이를 보고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이렇게 말하고는 영진이를 돌아보며,

"지한이가 말한 것이 정말이라도 괜찮아. 용기를 가지고 살아."하며 위로해 줬습니다.

영진은 아픈 상처를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영진아, 힘내라."

"영진아, 괜찮아 영진이는 할 수 있어. 영진이는 우리 반 챔피언이다."

"지한은 비겁해."

"지한이는 그런 짓 다신 하지 마."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진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팔로 눈물을 닦으며 허리를 굽혀 꾸벅 절을 했습니다.

●작가의 말

우리 둘레에는 부모님의 헤어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크는 어린이가 참 많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은 삶의 용기와 희망을 잃고, 외롭고 우울합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하고, 또 함께하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어울림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까이에도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는 내가 됩시다.

●약력

박상규는 1937년 충북 제천시 한수에서 태어나고 충주에서 공부하고 자람. 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됨. '고향을 지키는 아이들' '참나무 선생님' 등 20 여권의 동화집을 냄.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려 있음. 초등학교 교사로 42년간 어린이를 가르치고 퇴직해서 지금은 충주에서 동화를 쓰며 살고 있음. 현재 한국어린이문학 협의회장으로 계간 '어린이 문학'이란 잡지를 발행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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