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클래식] '전설의 시작'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2009. 6. 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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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AS EXCLUSIVE ::: 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87.

월드컵 통산 5회 우승을 자랑하는 브라질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이다. 그러나 브라질이 처음부터 세계 최강은 아니었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벌어진 제 1회 월드컵부터 1954년 제 5회 스위스 월드컵 때까지 브라질은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 때까지 브라질이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은 1938년 이탈리아 월드컵 3위,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우승이었다.

그런 브라질이 1958년 제 6회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의 전설'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역대 최강의 팀'으로도 불리우는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을 [스타클래식]에서 다뤄보려 한다.

1950년 대까지 브라질에는 전국 규모의 리그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오주(州)와 상파울루주(州)의 클럽들은 운영에서부터 선수들의 기량까지 다른 주 클럽팀들 보다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브라질 대표팀은 리오주와 상파울루주에 속한 클럽팀 선수들 위주로 구성이 됐다.

그런데 리오주 축구협회와 상파울로주 축구협회가 서로 라이벌 관계였기 때문에 서로 자기네 주(州) 클럽 선수들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는 등 늘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당시 브라질 축구협회 회장은 주앙 아벨란제였고, 대표팀 감독은 비센테 페올라였다. 페올라는 상파울로 클럽 코치 시절 헝가리 출신의 베라 구트맨 감독을 보좌하면서 함께 4-2-4 포메이션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펠레와 가린샤가 58년 월드컵을 통해서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졌다는 건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 그런데 당시 '17세 소년' 펠레와 '말썽쟁이' 가린샤는 남미 예선 때까지 주전 멤버가 아니었다. 가린샤의 경우 개인 능력은 최고 수준이었으나 그의 지나친 개인기 위주의 축구는 팀플레이에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에 페올라 감독은 가린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스타 클래식 15. 가린샤> 편에서 이미 언급을 했었지만 58년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축구협회에서 대표팀 선수들 전원을 대상으로 지능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최고 점수를 받은 선수가 123점이었고, 당시 24세인 가린샤는 38점을 받았다. 의료진은 '38점이라면 4살 밖에 안 되는 아이의 지능이다. 이 점수는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는 지능'이라고 판정했다. 또한 17세의 펠레도 68점이 나왔는데 '68점도 유아 지능에 가깝다.'라고 의료진이 결론 내렸다.

당시 지능 테스트를 실시한 의사인 죠안 칼바레이스 씨는 "펠레는 아직 어린 애다. 이 정도의 지능이라면 우선 싸우려고 하는 의지가 없고 팀 플레이에 필요한 책임감이 전혀 없다. 가린샤와 펠레를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 시켜야 한다"고 코칭스태프에게 전했다.

의료진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페올라 감독은 고심 끝에 두 선수를 제외시키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동료 선수들이 이에 반대했다. 선수들은 페올라 감독에게 '가린샤와 펠레에 대해선 의사 보다 운동장에서 같이 뛰는 저희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두 선수를 제외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결국 페올라 감독은 선수들의 뜻에 따라 가린샤와 펠레를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당시 펠레와 가린샤는 주전 공격수인 마졸라와 죠엘의 서브 멤버로 스웨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가린샤와 펠레는 조별 리그 2차전까지 벤치를 지키다가 3차전인 소련과의 경기 때부터 주전 멤버로 기용됐다.

-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베스트 11(4-2-4 포메이션) -

FW: 쟈갈로...........바바.............펠레......................가린샤

MF: ...................디디............................지토.................

DF: 닐튼 산토스.......올라이트.......베리니............쟈우마 산토스

GK: ..............................쟈우마르...........................................

* 조별 리그 1차전. 대 오스트리아.

브라질은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스트라이커 마졸라가 2골, 왼쪽 풀백인 닐튼 산토스가 1골을 터뜨리며 오스트리아에게 3대0 완승을 거두었다. 특히 이날 왼쪽 풀백인 닐튼 산토스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닐튼은 경기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오바래핑을 시도했다. 그런데 닐튼이 오바래핑 할 때마다 페올라 감독은 벤치에서 '닐튼! 올라가지 마라!'고 고함쳤다.

하지만 닐튼은 감독의 지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틈만 나면 공격에 가담했다. 페올라 감독 입장에서는 닐튼의 오바래핑이 곧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닐튼이 마졸라와 원, 투 패스를 주고 받으며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그 후부터 페올라 감독은 '좋아!좋아! 닐튼! 계속 올라가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 조별 리그 2차전. 대 잉글랜드.

브라질은 잉글랜드를 맞아 경기를 주도했으나 돈 하우, 빌리 라이트 등이 버틴 잉글랜드 수비진을 부수는데 실패하며 0대0으로 비겼다. 잉글랜드전까지 가린샤와 펠레는 기용되지 않았다.

* 조별 리그 3차전. 대 소련.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이 이끄는 소련은 월드컵 첫 출전이었는데 6년 전인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기에 브라질로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소련전을 앞두고 닐튼 산토스, 쟈갈로 등의 중심 선수들이 페올라 감독에게 '감독님! 이 상태로는 불안합니다. 소련전부터 가린샤와 펠레를 기용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페올라 감독은 선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날 가린샤-펠레를 동시에 기용했다. 가린샤와 펠레가 처음으로 같이 뛴 최초의 시합이 소련과의 경기다.

기대대로 두 선수는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라이트윙 가린샤는 경기 시작 2분 만에 오른쪽 측면에서 특유의 페인팅으로 소련 왼쪽 수비수를 따돌린 후 강력한 슛으로 골 포스트를 맞히는 등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소련 수비진을 농락했다. 결국 브라질이 바바의 2골로 2대0으로 승리했는데 최고 수훈 선수는 가린샤였다.

* 준준결승전. 대 웨일즈

조별 리그에서 2승 1무를 기록한 브라질은 준준결승전에서 웨일즈와 맞붙었다. 소련전 주인공이 가린샤였다면 웨일즈전 주인공은 막내둥이 펠레였다. 이날 펠레는 후반전 디디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터뜨리며 1대0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 준결승전. 대 프랑스

테크니션 레이몽 코파와 이 대회에서 13골을 기록한 쥐스트 퐁테느가 버티고 있는 프랑스는 당시 세계 최강 중 하나였다. 브라질과 프랑스의 경기는 사실 상의 결승전이었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양팀이 치열한 접전을 벌일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브라질이 프랑스를 일방적으로 몰아 부쳤다. 이날 펠레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디디와 바바가 각각 한골 씩 터뜨리며 프랑스를 5대2로 물리쳤다.

* 결승전. 대 스웨덴

브라질의 결승전 상대는 주최국 스웨덴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수퍼스타 군나르 노르달은 없었지만 이탈리아 AC밀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닐스 리드홀룸과 쿨트 함린 등의 세계적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완파한 브라질 선수들은 우승을 자신했다. 결승전 전날 스웨덴의 연습 광경을 지켜본 가린샤는 '스웨덴은 올리아리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가린샤의 눈에 스웨덴은 리오주(州)의 2부 리그에 속해 있는 약소팀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은 것이다.

브라질은 전반전 시작 3분 만에 스웨덴의 리드홀룸에게 선제골을 빼앗겼다. 이 대회 들어서 처음으로 선제골을 허용한 브라질. 하지만 브라질 선수들은 당황하질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직 87분이란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첫 골을 허용한 9분 뒤에 브라질 스트라이커 바바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후 브라질은 디디와 지토가 미드필드를 완전 장악했고, 가린샤의 오른 쪽 돌파가 불을 뿜으며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 가린샤의 크로스를 받은 바바가 또 다시 한 골을 추가하며 전반전을 2대1로 마쳤다.

후반전 들어서 세 번째 골을 터뜨린 선수는 펠레였다. 왼쪽으로부터 패스를 받은 펠레는 스웨덴 진영 중앙 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 순간 스웨덴 수비수가 정면으로 달려 들었다. 그러자 펠레는 그 수비수 머리 위로 볼을 찍어 올린 뒤, 떨어지는 볼을 그대로 슛팅했고, 그 볼은 문전 안으로 깨끗이 빨려 들어갔다. 정말 예술적인 슛이었다. 이후 쟈갈로가 네 번 째 골을 넣었고, 종료 10분 전 스웨덴에게 한 골을 허용했으나 종료 직전에 펠레가 다시 헤딩으로 득점하며 결국 5대2 낙승을 거두었다.

우승을 확정 지은 브라질 선수들은 대형 스웨덴 국기를 펴 들고 그라운드를 돌면서 스포츠맨쉽을 발휘했고, 스웨덴 관중들도 브라질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시상식 후, 가린샤는 "겨우 여섯 시합을 하고 월드컵 우승을 한다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고 말을 남겼는데 그 정도로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의 전력은 막강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브라질 국민들 어느 누구도 58년 월드컵을 TV로 시청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 TV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핵심 멤버 -

* 디디(MF): 54년 스위스 월드컵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미드필더 디디는 50년대 브라질 축구 최고의 영웅이다.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주장은 중앙 수비수인 베리니였는데 베리니는 주장 완장만 둘렀을 뿐 진정한 지휘관은 디디였다. 디디는 동료들로부터 '축구공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선수'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미드필더였다.

디디는 어떠한 위치, 어떠한 각도에서도 강하고 정확한 킥을 구사했다. 브라질 대표로서 A매치 85시합/31골을 기록한 디디는 31골 가운데 12골이 프리킥으로 얻어낸 골이다. 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4-2-4 포메이션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사령탑인 디디가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로 경기를 리드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가린샤와 펠레에게 월드컵에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준 선수이기도 하다.

* 지토(MF): '브라질 역대 최고의 볼란치' 지토는 이 팀에서 공수의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무렵 대부분의 브라질 어린 선수들이 지토를 동경(憧憬)했는데 펠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58년 월드컵 때 펠레는 호텔 방에 "신이시여! 저를 지토와 같은 위대한 선수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탁월한 리더쉽까지 겸비한 지토는 당시 브라질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 닐튼 산토스(DF): 당시 남미 최고의 왼쪽 풀백으로 명성을 날린 선수다. 수비수이면서 공격수 못지않은 돌파력 능력을 갖고 있었던 닐튼 산토스는 4-2-4포메이션에 핵심적인 선수였다. 보타포고 후배인 가린샤를 대표팀 페올라 감독에게 강력히 추천했던 인물이 닐튼 산토스다. 그는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에게 큰 신임을 얻었다. 49년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된 닐튼 산토스는 63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A매치 83시합에 출전했다.

* 쟈우마 산토스(DF): 50~60년대 세계 최고의 오른 쪽 풀백으로써 맨투맨 마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던 선수다. 쟈우마 산토스는 58년 월드컵에선 결승전에만 출전했다. 브라질 대표 선수 사상 A매치 100시합 이상을 뛴 최초의 선수가 쟈우마 산토스다.

* 마리오 쟈갈로(FW): 돌파력이 좋은 레프트윙 쟈갈로는 탁월한 테크니션은 아니었지만 경이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전, 후방을 종횡무진 움직이는 선수였다. 언제나 성실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쟈갈로는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붙박이 레프트윙이었다.

* 바바(FW): 원래 바바의 포지션은 측면 미드필더였으나 58년 월드컵 때부터 센터포워드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센터포워드로 전향한 이유는 나이 어린 펠레를 이끌어주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에서 바바는 조별 리그 소련전과 결승전인 스웨덴전에서 각각 2골을 터뜨리는 등 총 5골을 터뜨리며 센터포워드로써도 위력을 발휘했다. 롱패스 능력이 탁월했던 바바는 대표팀 A매치 22시합/15골을 기록했다.

* 펠레(FW): 본명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 일명 '펠레'. 펠레의 아버지 돈디뇨는 1940년대 축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인해 일찍 은퇴하고 말았다. 펠레의 최초 축구 코치가 바로 아버지 돈디뇨다. 펠레는 아버지가 코치로 있던 바울로 클럽에서 기초를 닦은 후 15살 때인 1956년 명문 산토스로 이적했고, 그 이듬 해 16살의 나이로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리고 17살 때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가린샤(FW): '마법의 작은새' 가린샤는 펠레와 함께 브라질 축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 보다 왼쪽 다리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가린샤는 62년 칠레 월드컵에서 펠레가 부상으로 빠진 브라질 공격진을 이끌며 대회 MVP(비공식)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이 세계 축구사에 남긴 유산은 어머 어마하다. 우선 포메이션(시스템) 면을 들 수 있는데 58년 월드컵 이전까지 세계 축구의 주류는 WM 포메이션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 때부터 브라질이 처음으로 4-2-4 포메이션을 시도한 것이다. 당시 브라질이 구사한 4-2-4의 특징은 각 포지션에 핵이 되는 선수를 배치하고 그들을 기점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브라질은 이 4-2-4 포메이션을 60년대에 4-3-3 포메이션으로 승화시키며 62년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에서는 희한한 법칙이 하나 존재한다. 그 법칙이 유럽에서 개최됐을 때는 유럽팀이 우승을 했고, 남미에서 개최됐을 때는 남미팀이 우승을 했다는 것인데 58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은 그 정설(定說)을 깬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70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이 역대 세계 최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58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이 역대 최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렇다면 두 팀 중 어느 팀이 더 강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마리오 쟈갈로다. 쟈갈로는 58년 월드컵에는 선수로, 70년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우승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58년 월드컵 멤버와 70년 월드컵 멤버의 수준은 똑같다'고 말한다. 쟈갈로의 말이 정답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김유석(축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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