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믿을 '국가 경쟁력 순위'


[한겨레] 국가부도 아이슬란드 7위…한국 기업 사회적 책임 2위
기업인들 설문 결과가 나라 평가 좌우
뉴욕타임스·CNN 등은 아예 보도 안해
참고자료 불과…한국만 유독 '호들갑'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 7위, 세계경제포럼(WEF) 평가 23위.'
아이슬란드의 지난 2007년 국가 경쟁력 평가 순위다. 이 성적표만 본다면 '금융 강소국' 아이슬란드는 경쟁력이 탄탄한 우등생 나라로 불릴만 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금융위기 뒤 자국통화인 크로나 가치 폭락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은 지난해 뚜렷한 이유 없이 아이슬란드를 평가대상에서 뺐다. '허술한 성적표'를 슬그머니 감춘 꼴이다.
국제경영개발원은 지난 20일 '2009년 세계 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57개국을 대상으로 네가지 부문(경제성과·정부 효율성·경영 효율성·인프라)을 평가했는데, 우리나라는 종합 27위로 지난해(31위)보다 네 계단 상승했다. 국가 경쟁력 순위 발표는, 두 기관 말고도 미국 해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도 조사', 유엔개발계획(UNDP)의 '삶의 질 조사'처럼 특정 분야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기관은 어떻게 성적표를 만들까? 평가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조사방법의 얼개는 비슷하다. 통계수치 등 각 나라에서 발표한 공식자료와 기업인 설문조사가 두 축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은 설문자료와 통계자료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반영한다. 설문조사는 각 나라의 파트너 기관이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지난 2007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가 맡고 있다. 올해 2~4월 설문을 벌인 자료는 개발원이 수거해 직접 분석했다.
구체적인 설문대상과 질문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급 기업 임원들이 설문대상이며, 대형 상장기업 임원과 고소득 자영업자 가운데 수만명에서 1천여명 정도를 뽑아 설문지를 돌린다는 게 알려진 정도다. 올해는 800여명에게 설문지를 보냈으나 100~150여명만이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경영자들은 개발원이 직접 설문을 했다. 응답자들은 각 항목별 1~6점 사이 점수를 매겨 평가를 마무리한다.
사실 국가경쟁력 순위의 객관성 논란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해 개발원의 우리나라 평가를 세부 항목별로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순위가 41위에서 2위로, '기업가 정신을 공유하는 정도'는 44위에서 10위로 급등했고, 정부 효율성은 17위에서 47위로 곤두박질치는 등 널뛰기를 했다. 올해에는 노사관계 생산성 순위가 꼴찌보다 한단계 높은 56위로 나와, 일부 언론에서 '기업경영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사용자 쪽에서 답한 주관적 의견이 대서특필된 것이다. 개발원의 국내 설문조사를 담당했던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 연구원은 "실제 표본 선발 방식에서 통계학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으며, 국가경쟁력이 1~2년 사이에 들쭉날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종합적인 진단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답변을 취합한 조사자료는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참고사항을 정부가 정책결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본 개념을 가지고 조사가 이뤄져 지표들이 갖는 문제점과 한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업들의 어려운 점을 비쳐볼 수 있기에 다른 부처도 관심 갖고 평가결과를 토대로 자기 영역에서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가는 기업과 달리 단순 지표 하나로 핵심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경쟁력 개념은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쟁력 순위에 대한 집착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과민반응은 언론에 비친 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내놓은 '국가경쟁력 지수의 허와 실'이라는 보고서에서 국가경쟁력 순위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호들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하는 통계를 내놨다. 1년동안 <뉴욕타임즈>나 <시엔엔>(CNN) 등 미국 주요언론들의 국가경쟁력 평가 보도는 전무하며 영국 <비비씨>(BBC)도 한차례 보도한 것이 전부인데, 국내 언론은 모두 308건(보도기사 274건, 사설 34건)에 이르렀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헝가리나 아일랜드 등 작은 경제규모에서 적극 개방해 높은 국가 경쟁력 순위를 보이던 나라들의 혹독한 경제위기는 큰 시사점이 있다"며 "올해 개발원이 몇가지 테스트 항목을 추가한 것도 20여년 넘게 발표해온 지표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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