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워커홀릭 정조 '어찰첩'에 생생히

이민정 2009. 5. 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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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조(1752~800)가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어찰 297통이 출간됐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정조의 불같은 성격, 막후정치, 정조와 정조의 정치적 적으로 여겨진 노론 벽파(僻派) 심환지와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2월9일 세상에 나온 이 어찰 가운데 10통에는 논란이 됐던 정조의 병인과 사망의 원인이 담겨 있다. 정조의 기질과 지병에 따른 병사 가능성을 높였다.

'정조 어찰첩' 번역에 참여한 진재교(48)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18일 "4년간의 편지 속에서 정조의 건강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으며, 사망할 무렵에는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정조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스스로 진단하고 의원들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10단인 어머니 헤경궁 홍씨도 정조 사망 직전까지 정조를 자주 문병했다. 독살기미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진 교수는 "정조의 독살설은 당초 정치적인 정황을 근거로 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문서나 기록으로 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닐 듯하다. 궁궐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문서나 기록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정조 독살의 명확한 기록이 드러나지 않는 한 정조어찰첩, 조선왕조실록, 풍고집(김조순의 문집) 등의 기록에 근거해 보면 정조의 사망 원인은 지병에 따르는 병사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진 교수는 "집착할 정도의 부지런함도 정조의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죽기 2주전에 한번 쓰러졌는데 다음날 일어나 또 정무를 보다가 다시 쓰러졌다. '눈코 뜰새 없다'는 말을 자주 쓰면서 새벽까지 공무를 돌보며 힘들다는 토로를 편지에 종종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어찰집이 일부 공개되고, 다혈질에 신하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정조는 성군이 아닌 폭군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안대회(48)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어찰집을 번역, 정리하면서 정조가 조급한 성질에 마음에 안 드는 신하가 있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을 거칠게 하고 욕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하들이 폭언에 반발해서 상소를 올리기도 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화를 내더라도 곧 이성을 찾았으며, 화에 못 이겨 신하를 바로 처벌하고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폭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조는 상소문 때문에 화가 나서 새벽 3시까지 일어나 있다가 심환지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이런 거 때문에 3시까지 이러고 있으니 우습다'면서 껄껄 웃기도 한다. 정조는 단지 다혈질일뿐 인간적인 인물이다."

정조는 심환지뿐 아니라 각 정파의 핵심 인물과 사적으로 정보망을 구축, 여론과 정국 현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남인의 영수였던 채제공을 비롯, 김희순, 어용겸, 서용보 등 노론 벽파에 속하는 인물들과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정국의 동향과 정보를 파악한 막후 정치의 대가였다.

'정조어찰첩'은 또 정조의 여론정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론을 반영하는 듯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움직이도록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 정조가 보인다.

진 교수는 "전제군주를 둘러싼 수뇌부에서 진행된 정치의 실태와 생리의 따끈따끈한 실상을 담은 정조어찰집에는 당대 정치사가 풍부하다. 책에 담긴 정치가들의 생생한 현장은 승정원과 실록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기타 왕실 기록들과 대조하면서 보면 국가 기록들에 대한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평했다.

이민정기자 benoit0511@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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