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밥 먹고 글쓰기로 마음 닦기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지침서와 교양강좌가 크게 늘었다. 위는 KT & G 상상마당에서 진행하는 '우리말 달인의 건방진 글쓰기' 강의 모습.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최근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말의 하나다." 글쓰기 지침서 < 글쓰기의 최소 원칙 > (도정일 외) 머리말의 첫 문장이다. 글쓰기는 이제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직장인과 주부, 백수도 글을 쓴다. 편지지에서 이메일로, 200자 원고지에서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으로, 출판물에서 인터넷 블로그로 쓰는 곳과 펴내는 곳이 달라졌을 뿐이다. 글을 써서 남에게 읽히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또한 예전과 변함이 없다. 다만 그 길이 넓어졌다.
글을 쓰고 싣는 통로가 다양해지자 사람들은 좀더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글쓰기 안내 서적과 강좌가 인기를 끌었다. < 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 < 네 멋대로 써라 > (데릭 젠슨)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등 글쓰기 지침서가 매년 15권 이상씩 쏟아져 나왔다. 2005년 11월에 나온 < 글쓰기의 전략 > (정희모)은 3년간 9만여 부가 팔리며 지금까지도 인문 분야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좌도 곳곳에서 개설됐다. '한겨레 교육문화센터' '문지문화원 사이' 'KT & G 상상마당 아카데미' 같은 배움터는 물론이고, 민주언론시민연합·공공미디어연구소·줌마네 같은 시민 단체나 커뮤니티에서도 크고 작은 글쓰기 강의를 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두 달 정도 교육을 받으려면 20만~30만원씩 내야 하지만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 <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 국어 실력이 밥먹여준다 > (김경원) 같은 글쓰기 지침서 제목이 말해주듯, 글쓰기는 사람들에게 '유혹하는' 혹은 '밥 먹여주는' 도구로 쓰였다. 어찌 보면 살기 팍팍한 세상이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글을 쓰게끔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청년 구직자들은 눈에 띄는 자기 소개서를 써서 취업 전선을 뚫어야 했고, 직장인들은 흠잡을 데 없는 보고서를 써서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는 KT & G 상상마당 아카데미 사무국의 양미숙씨는 "교육생 중 한 분은 원래 회계를 담당했는데, 회사 측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규모가 작아져 갑자기 보도자료를 쓰는 일까지 맡게 됐다며 강의를 들으러 왔다"라고 말했다.
"글쓰기로 취업 경쟁력 높인다"대학도 글쓰기 경쟁력을 갖추려는 예비 구직자들을 돕고 나섰다. 아주대 기초교육대는 2009년 1학기부터 글쓰기 클리닉을 진행하고, 강사 대신 전임 교수가 작문 지도를 맡는 식으로 글쓰기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아주대 김철환 기초교육대학장은 '취업 경쟁력 강화'가 첫째 목표라고 말했다. "사회에 나가 있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글과 말 같은 의사소통 능력이더라. 글쓰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우리 학생들이 회사에 들어가 기안서나 보고서 하나라도 깔끔하게 쓰면 우리 학교 출신에게 호감을 느껴 취업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고려대·서울대·숙명여대·연세대 등에서도 교수·학습 개발센터나 의사소통 개발능력센터 안에 글쓰기 클리닉을 두고 학생과 교직원의 작문을 도와주고 있다.
'밥 먹여주는'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내면의 성장을 위한' 글쓰기도 차츰 자리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돈이 안 되고 밥이 안 돼도 글을 써서 남과 소통하는 것에 만족을 얻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전문 작가만이 글을 써 남과 소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면, 이제는 인터넷 블로그 같은 매체를 가진 일반인도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9년차 직장인 최수영씨(33)는 4년간 꾸려온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독인 적이 많다고 했다. "가끔 외롭고 힘들 때 새벽에 짧게나마 블로그에 글을 끼적여놓는데, 누군가가 달아놓은 댓글이 오히려 가까운 친구의 위로보다도 따스했던 경험이 많다." 블로그 방문자가 하나 둘 늘어나자 최씨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잘 표현하기 위해 3월부터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의 '창의적 글쓰기 과정'이라는 강좌를 듣고 있다.
10년간 글쓰기 강의를 해온 여성 커뮤니티 '줌마네'의 김상희씨는 "프로그램을 처음 짤 당시는 외환 위기 직후인지라 글로써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최근에는 돈 벌기보다는 자기 성장에 관심 많은 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글쓰기와 관련해 출판되는 책이나 새로 꾸려지는 강좌도 '실용'에서 '자기 성장'으로 방향이 사뭇 달라졌다. < 치유하는 글쓰기 > (박미라) 같은 책이 글쓰기 지침서 가운데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한다. < 치유하는 글쓰기 > 저자 박미라씨는 책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이 자기 내면에 숨겨진 비밀을 스스로 알아내고 위안을 얻는 경우를 많이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글쓰기 강좌도 예전엔 맞춤법과 문장 작법을 가르치는 교육적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 자아 발견을 위한 자서전 쓰기:마음 알기, 자기 알기 > < 글쓰기로 마음의 힘 기르기 > 처럼 '마음을 닦기 위한' 글쓰기 커리큘럼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돈보다 자기 성장을 위해 글을 쓴다"지금 한국 문학계가 침체기라 하지만, 비전문 작가들의 글쓰기가 구성하는 '저변의 문학계'는 호황이다. 인터넷엔 구구절절한 글이 넘쳐나고 라디오에도 끊임없이 편지가 날아든다. 지난해 각 언론사 신춘문예에 '예비 작가' 혹은 '비전문 작가'가 보낸 글들은 2007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10년 전 외환 위기 때처럼 만만찮은 불황이 찾아온 지금, 돈 안 되고 밥 안 되는 글쓰기로 사람들은 뭘 하려고 할까. 여행 작가가 꿈인 박미정씨(39·학원 강사)는 이러한 현상이 경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말했다. "하도 세상이 '돈 돈 돈' 하니까 내 영혼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팍팍할수록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 아닐까."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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