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사리장엄구도 백제 유물
639년 미륵사 장엄구와 "똑같아"(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 한정호(39) 연구원은 지난 19일 익산 미륵사 석탑 사리장엄구가 공개된 직후, 현장을 다녀온 다른 연구자들에게서 "축하한다"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한 연구원은 1965년 익산 왕궁리 5층 석탑을 해체하다가 발견한 사리장엄구가 8-10세기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시대 초기 유물이라는 통설을 거부하면서, 백제시대 유물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2005년 10월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잡지인 '불교미술사학' 3집에 투고한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사리장엄구의 편년 재검토'라는 논문에서 이 사리장엄구는 제작기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백제시대 작품임이 틀림없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한 연구원이 전화를 여러 통 받은 이유는 3년여 전에 제기한 그의 주장이 미륵사 사리장엄구가 공개됨으로써 '사실'로 판명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미륵사 사리장엄구를 현장에서 본 불교미술사 전문가 대부분도 왕궁리 석탑 사리장엄구를 둘러싼 논란, 즉 그 제작시기가 백제시대인지 아니면 종래 통설처럼 8-10세기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이제는 풀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1천3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639년 무렵의 백제 무왕시대에 제작됐다는 기록이 명확히 남은 미륵사 사리장엄구는 여러 모로 왕궁리 사리장엄구와 흡사했다.
불교미술사 전공인 강순형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현장에서는 "(왕궁리 사리장엄구와) 비슷하긴 한데, 여전히 고려초기 흔적이 있는 듯하다"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지만, 불과 며칠만에 이런 짐작을 수정하고는 "백제 것이 틀림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연구소로 돌아가 차분히, 그리고 면밀히 두 사리장엄구를 비교할 결과 "같은 장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될 만큼 문양의 종류라든가 그것을 제작, 배치하는 기법이 똑같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비교 대상은 미륵사 사리장엄구 중 금제 사리호(舍利壺)와 왕궁리 사리장엄구의 금제 사리내함(舍利內函).
높이 13㎝, 어깨 폭 7.7㎝인 미륵사 금제 사리호는 넓적한 구연(口緣.아가리) 위로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달린 뚜껑과 긴 목, 둥근 어깨를 지닌 몸통으로 구성된다.
뚜껑과 목, 그리고 바닥에는 연꽃잎을 넣었고, 몸통에는 인동초와 당초문을 배열했으며, 그 여백에는 어자문(魚子文)이라는 물고기 알 모양 문양을 촘촘히 넣었다. 바닥에 가까운 몸통 바깥을 둘러가면서는 이파리 3개가 난 연꽃잎을 일정하게 배치했다.
이와 거의 똑같은 문양은 왕궁리 석탑의 사리내함 뚜껑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이파리 3개가 난 연꽃잎과 어자문은 미륵사 사리호의 그것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한다는 것이 강 소장의 지적이다.
한편 한 연구원에 앞서 불교미술 전공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도 왕궁리 5층 석탑이 양식으로 보아 백제석탑이라는 주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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