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과 미네르바.. 그들이 주는 메시지

입력 2009. 1. 18. 20:38 수정 2009. 1. 18. 20: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이정환 기자]"실명 비판 잡지, < 인물과 사상 > 이 8년 만에 1월호를 끝으로 종간한다고 도서출판 개마고원이 밝혔습니다. 잡지를 이끌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신속성과 영향력에서 최근 인터넷에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종간 이유를 밝혔습니다."(2005년 1월 18일 MBC 뉴스 김주하 앵커)

'단인사'( < 월간 인물과 사상 > 의 줄임말인 '월인사'와 구분해 단행본 < 인물과 사상 > 을 줄여 이르렀던 말)가 종간한 지 벌써 4년이 됐다. 비록 33권을 끝으로 아쉬운 이별을 고했지만, 우리나라 언론사(言論史)에서 '단인사'가 차지하는 무게는 실로 적지 않다. '저널룩(Journalism + Book)'이란 용어로 대변되는 '출판의 언론화'는 여전히 유효한 명제임에 틀림없다. 허나 그보다 지금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는 바로 '1인 저널리즘'의 원조라는 점이다.

< 조선일보 > 희희낙락... '단인사'의 역사적 가치

강준만 교수

ⓒ 인물과 사상

일단 '강준만'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단인사' 종간의 가장 큰 원인으로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됐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초창기 1만부를 넘기던 발행부수가 (종간 당시) 2천부 남짓으로 줄어들었다"고 하고, 이로 인해 "출판사 개마고원이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터넷의 급성장으로 인한 매체 환경 급변이 거론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강준만 교수는 '단인사' 마지막호인 33권 머리말을 통해 "책보다는 인터넷이 대세로 자리잡은 현실에 순응한다"고 했다. 당시 < 미디어오늘 > 도 "인터넷이 정치 사회적인 쟁점과 이슈를 완전히 흡수해버려서 비슷한 주제를 다뤄왔던 출판계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1인 저널리즘 원조'로서의 피로감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내 경우엔 인터넷보다는 민주당 분당 이후 전개된 정치적 사태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절대 다수의 생각과 충돌할 때엔, 나의 '퇴출'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종간호 머리말 말미에 밝혔었다.

< 조선일보 > 로서는 노무현 정권을 '까는 데 써먹기 좋은' 소식이었다. 2005년 1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1인 언론을 표방하며 출간한 < 인물과 사상 > 은 초기부터 조선일보와 보수진영을 강력히 비판하는 안티 1호로 성격을 분명히 해왔다"며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선악 이분법을 구사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는 강 교수의 말은 역설적"이라고 고소해 하는 데 '머물렀다'.

반면 < 한겨레 > 는 "한 사람이 출판을 통해 저널리즘 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도전적인 실험", "조선일보·지역주의·학벌주의 같은 기존 언론이 금기시했던 민감한 문제를 과감히 의제로 채택한 성역 깨기", "실명 비판이라는 글쓰기 방식의 혁신" 등을 예외적인 성과로 꼽으며 '단인사'를 높게 평가했다.

" < 한겨레 > · < 오마이뉴스 > 등 개혁언론 경제플레이어 돼야"...그러나

'단인사' 종간호

ⓒ 인물과 사상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찬사'의 공통분모는 바로 '1인 저널리즘'이다. '단인사'의 성과들은 '1인 저널리즘'이란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인사'가 종간한 그 해,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한 강 교수가 < 한겨레 > 를 통해 밝힌 소감은 오히려 '미네르바'가 하나의 키워드가 된 요즘 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강 교수는 "근본 문제는 조중동이 아니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을 찍는 독자들이 집에서는 조중동을 보고 부동산·주식·과외교육에 몰두하며, 이른바 민주·개혁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라며 "국민들의 경제적 보수성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 < 한겨레 > 나 < 오마이뉴스 > 같은 개혁 언론이나 개혁·진보세력들이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조중동이 제시하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미래를 대체할 비전과 방향을 진보 세력이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사회과학도들이 경제 문제에 무지한 상태로 경제를 부정부패의 온상, 악의 근원으로만 바라보는 한 이런 한국 사회의 이율 배반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이를테면 그는 < 한겨레 > 가 저항자로서의 생각을 버리고 주도자로서 책임감 있게 현실에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2005년 11월 23일자 한겨레)

그럼 강 교수의 기대치만큼 < 한겨레 > 나 < 오마이뉴스 > 와 같은 개혁언론이 바뀌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미네르바'에 대한 열광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무엇보다 경제 문제에 무지하지 않았다. 경제를 악의 근원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저항자'가 아닌 '주도자'로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해법과 전망을 제시했다.

강 교수의 주문이 < 한겨레 > 나 < 오마이뉴스 > 가 아닌 '1인 저널리즘'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는 언론사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광고가 주요 수익원인 언론사는 권력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것저것 따질 수밖에 없다. 민감한 문제를 과감히 의제로 선택하기 어렵다.

1인 저널리즘 '전범' 제시한 I.F.스톤

I.F.Stone

ⓒ ifstone.org

"억압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 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억압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미네르바' 말이 아니다. 2005년 12월 < 프레시안 > 에 소개된 I.F.스톤(I.F.Stone, 1989년 사망)이 한 말이다. 미국언론인으로 독립적인 언론인의 '모범'이자 정직한 블로거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특히 그를 잘 드러내는 말은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말은 단 하나도 믿어선 안 된다"이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은 < I.F 스톤즈 위클리 > 란 '1인 신문'을 발행한 것이었다. 혼자 취재하고 자신의 집에서 편집하고 주간지를 찍어냈다. 인쇄가 끝나면 우체국으로 가서 구독자들에게 신문을 직접 발송했다. 발행 부수만 무려 7만부에 이르렀다고 한다. 1953년부터 1971년 건강 문제로 폐간할 때까지 일군 성과였다.

'1인 신문'이 각광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 때문이었다. "공공문서, 의회 청문회 기록, 주류 신문 기사를 헤집으며 그 속에서 기사거리를 찾아냈고, 고위 소식통이 없어도, 기자회견에 초대받지 못하면서도, 어떤 유명 언론인들보다 많은 특종기사를 터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아주 오래 전에 스톤은 이미 '1인 저널리즘'의 모범을 제시했다. 정부의 거짓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덕분에 막강한 권력자였던 FBI 에드거 후버 국장조차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강준만 교수가 < 조선일보 > 에게 그랬듯, '미네르바'가 강만수 장관에게 그랬듯 말이다.

I.F.Stone

ⓒ ifstone.org

근본 문제는 조중동 아니라, 1인 저널리스트 '양병'

영화 < 주유소 습격사건 > 에서 유오성이 그랬듯, 주야장천 '한 놈만 팰 수 있는 것'이 바로 '1인 저널리즘'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본질적인 '힘'이다. 그 가능성은 I.F 스톤, 강준만 교수 그리고 미네르바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만약 이런 1인 저널리스트들 100명이 활약한다면 어떻게 될까.

1인 저널리즘이 사회적 어젠더를 설정하고, 기존 언론사는 '뒤처리'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언론사가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또한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선결과제는 있다. 1인 저널리스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훨씬 열악한 사정인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1인 저널리즘의 원조 '단인사'가 종간한 지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씨앗'들이 사방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1인 저널리즘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중이다. 강 교수 말을 빌리면 "근본 문제는 조중동이 아니라", '근본 대안은 개혁언론이 아니라', 1인 저널리스트 '양병'일지도 모른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