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일터] '간잽이' 50년 외길인생 이동삼씨

2008. 12. 22.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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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간고등어 명품화 '간의 달인'15세때 인연… '평생의 업'으로사는게 지옥 같던 어린시절초등학교 문턱만 밟고 나와"자식 모두 대학… 여한없어"

"음식은 간이 맞아야 잘 한 음식이고 간고등어의 핵심은 간입니다. 입맛에 맞는 간, 그게 따로 있소? 내 입에 맞으면 그게 딱 맞는 간이요. 가장 알맞은 소금의 양은 내 손에 잡히는 대로 뿌리는 것이지요."

이동삼(68ㆍ사진)씨는 '간잽이'다. 안동간고등어에서 냉동고등어를 해동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입에 착착 감기는 짭조름한 맛을 내도록 간을 치는 '간의 달인'이다. 수송수단이 좋아지면서 '생물'에 밀려 '한물 간' 신세로 전락했던 간고등어가 명품 식탁에 빼 놓을 수 없는 반찬이 되도록 한 장본인 중 하나다.

칠순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씨는 여전히 공장에서 소금을 친다. 다른 직원보다 가장 먼저 일직면 작업장으로 출근해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 손자 손녀, 이웃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안팎이 깨끗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은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요. 위생관리에 실패하면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제조비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 헛일"이라고 강조한다.

맛있는 간고등어가 탄생하려면 고등어와 간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일단 고등어가 실해야 해. 살이 단단한 게 양반이지. 간은 내 입맛에 맞으면 되고."

간잽이 이씨의 손을 거친 간고등어는 간이 딱 맞기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이씨의 손끝에 있다.

따로 얼마를 집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기가 막히게도 작은 고등어는 15g, 큰 것은 20g이다. 몇 년 전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번에 정확히 20g 잡는 시범을 보였는데, 몇 번을 반복해도 틀림 없었다.

이씨가 간고등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세가 되던 해다. 길안면 외딴 마을에서 3대 17명이 한집에 살았지만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밤낮없이 농사를 지어도 배곯기 일쑤였고, 한끼 먹으면 두 끼 굶는 것이 일상사이던 시절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 앉아 배불리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야속하게도 그런 일은 꿈에도 안 일어났습니다"

이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었다."초등학교 문턱을 밟긴 했지만 3학년때 6ㆍ25 전쟁이 일어나 대충 눈치로 한글을 읽는 정도였죠. 먹고 사는 것이 막막하던 시절 간고등어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평생 간잽이로 이끌었습니다"

일찌감치 재주를 인정 받아 군 제대 후 어물도가(해산물시장)의 D상회에 취직했다. " 들어 와 보니 환갑 넘은 선배 간잽이가 3명 있었는데, 소금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 선배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밤새도록 간 맞추기 연습을 했습니다" 한때 하는 일에 비해 벌이가 시원찮아 강원도 탄광서 막장인생을 걷기도 했지만 결국 간잽이로 되돌아 왔다.

내륙인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뜨게 된 것은 바다까지 거리 때문. 막 잡아 온 고등어를 달구지나 지게에 싣고 아침 일찍 영덕 강구항을 출발해 황장재를 넘고 하루종일 걸어 도착하는 곳이 임동면 채거리 장터다. 영덕에서 안동 시내까지 대략 중간쯤으로 이곳에 도착하면 해도 저물고 고등어 눈도 넘어간다. 그대로 두면 상하기 때문에 개울가에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뒤 소금간을 치던 것이 유래다.

"안동의 동쪽인 임동에 도착하면 고등어가 상하기 시작했고 부패를 막기 위해 친 소금과 부패직전에 나오는 효소의 오묘한 조화로 간고등어의 독특한 맛이 나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외길 인생이었지만 무조건 옛 방식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시대에 맞게 소금 양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죽염도 쓴다. 해동할 때 황톳물이나 녹차물에 담그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씨는 "일자무식이지만 간잽이로 50년간 잘 살아 왔고, 자식 넷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켰으니 여한이 없다"며 "안동간고등어가 세계적인 명품 음식이 되도록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권정식기자 kwonj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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