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을 아시나요..공연 마케터들의 즐거운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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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공연을 사랑하는 장사꾼)'이라는 이름으로 소모임을 꾸리고 있는 공연 마케터 7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가 공연 중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이들은 "지금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미래는 밝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서동일기자 |
'공사장'을 아시나요?토목이나 건축 일을 벌이고 있는 공사장(工事場)이 아니라 '공연을 사랑하는 장사꾼들의 모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공사장에는 공연을 직접 제작하는 프로듀서에서부터 공연을 널리 알리는 홍보·마케터, 티켓 판매를 총괄하는 매니저, 극장에 근무하는 공연기획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사장 멤버가 아주 많은 건 아닙니다. 지난 2005년 한 회식자리에서 2명이 의기투합해 시작된 공사장에는 현재 8명의 '골수분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열화와 같은 요청이 있어도 앞으로 10명 이상으로는 덩치를 키우지 않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매년 이맘 때 쯤 개최하는 네트워크 파티에는 100여명의 공연 관계자들이 참석해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하다고 합니다. '공연계 선배와 후배, 공연계 종사자와 타업계 종사자, 공연계 사람과 관객 사이의 다리를 놓기 위해 결성했다'는 공사장의 연말 모임은 이름 그대로 시끌벅적하고 에너지 넘치는 공사장을 방불케 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홍대앞 클럽 비아(Via)에서는 공사장의 세번째 네트워크 파티가 열렸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100명에 가까운 공연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새롭게 친구를 사귀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하룻밤 재미있게 놀았다고 합니다.
'펀 & 나이트(Fun & Night)'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조별로 나뉘어 뮤지컬 '헤드윅' 따라하기 행사도 가졌습니다.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헤드윅 분장만으로도 이날 모인 사람들을 충분히 즐거워 했습니다.
세번째 연말 모임을 마친 공사장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공연을 사랑하는 장사꾼들과 함께 공사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2008년 말 지금의 공연계 시황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멤버들은 파이낸셜뉴스가 요청한 '즐거운 수다'에 흔쾌히 동참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 '해와 달' 레스토랑에는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 관계로 참석하지 못한 설앤컴퍼니의 오훈식씨(32)를 제외하고 김상미(30·라이브플러스 기획팀장), 김요안(34·두산아트센터 제작 프로듀서), 박종환(31·에이콤 홍보마케팅팀), 배태미(31·맥스무비 공연사업팀장), 백영선(33·한화 63시티 문화사업부), 손석호(31·PMC네트웍스 공연사업팀), 오지원씨(29·국립극장 홍보팀) 등 나머지 회원 7명이 모두 모였습니다.
■공사장을 아시나요?석호=공사장이 공식적인 첫 모임을 가진 것은 지난 2005년 10월 31일이다. 처음엔 7명으로 시작했고 한 사람이 나중에 합류했다. 2005년은 국내 공연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공연의 산업화가 논의되고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던 시기다. 비슷한 시기에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쳐보자는 뜻에서 공사장을 발족했다.
영선='공사장'이라는 이름은 내가 제안했다. 우선 어감이 재미있고 무엇인가 요란하게 일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을 모았다.
지원=이게 내 길이 맞나 고민하던 어떤 분이 지난주 열린 공사장 모임에 참석한 다음 힘을 얻었다며 다시 한번 열심히 뛰어보겠다는 말을 전했을 때 가슴 뭉클했다. 공사장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줘 너무 고맙다고도 하더라. 나도 고마웠다.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주고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공사장은 8명의 회원만을 위한 친목모임이 아니다.
요안=공사장 사람들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밤에 만난다. 월요일에 만나는 건 그날 공연이 없기 때문이다. 공연계의 '다리'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 파티 외에 공연계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세미나 모임이나 포럼 개최도 공사장의 주요 사업이다. 지난 3월에는 '인터미션'이라는 제목으로 두산아트센터에서 포럼을 열기도 했다. '5년 후의 공연계'를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연계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시됐다.
석호=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는 '공연 3세대'다. '명성황후'의 윤호진 연출자로 대표되는 1세대가 척박한 뮤지컬 시장을 개척하고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등이 2세대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면 이른바 '뮤지컬 빅뱅' 이후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은 우리는 그 뒤를 잇는 제3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공사장은 공연계 선후배인 이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다.
종환=우리 나름대로 시상식을 진행한 적도 있다. 이른바 '공사장 어워드'다. 지난해 연말 모임에서 1년동안 무대에 오른 공연 포스터를 놓고 투표를 해 '서울공연예술제'를 '2007년 최고의 포스터'로 선정했다. 상 받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쨌든 트로피를 만들어서 택배로 보냈다.
영선=공연 현장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 공사장의 작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향후 3∼4년 내에 책을 내자고 뜻을 모았는데 구체적인 기획은 회장인 석호가 진행 중이다.
석호=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도 있는데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건 순전히 머리 때문이다.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머리가 크기 때문이다. 하하하.
■요즘 공연계는…종환=요즘 공연계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실물 경제가 나빠지면서 많이들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 공연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엔 예전과 달리 한숨 소리가 넘쳐난다. 겨우 몇 명 놓고 공연했다는 등 여러가지 소문이 무성하다.
석호=예년 같으면 연말을 앞두고 있는 지금 기업들이 돈을 많이 썼을텐데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 관객들도 공연 두 번 볼 걸 한 번으로 줄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작은 공연기획사일수록 타격이 더 큰 것 같다. 공연 보러 오던 사람들이 요즘 극장에 안오고 술마시러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태미=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전체 공연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경제가 나빠진 하반기 이후에도 티켓 판매량을 살펴보면 지난해 동기에 비해 전혀 줄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는 작품 수가 지난해에 비해 늘어났기 때문에 매출 규모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상미=우리 회사의 경우도 경제 불황의 정도에 비해 큰 혼란을 겪고 있지는 않다. 물론 올 상반기와 후반기를 놓고 보면 상황이 나빠진 건 사실이지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다. 다만 단순히 트렌드에 매혹돼 우후죽순처럼 시장에 뛰어든 신생 공연기획사들에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공연기획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원=이번 고통을 계기로 거품을 빼야 한다. 이제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기가 왔다. 과거 낙관적인 전망 아래 마구잡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좀더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워졌다. 어려운 상황에도 관객이 공연장으로 오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영선=위기는 늘 있어 왔다. 공연계가 힘들지 않은 때가 어디 있었나. 사실 서울은 뉴욕과 런던을 빼면 가장 활력 있는 시장이다. 이번 위기를 통해 공연계가 자성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너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시장에는 자정 능력이 있다. 이번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다.
요안=사회·경제적으로 힘든 때일수록 사회적 구심점이 되고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공연이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활기를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공연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 이래서 좋다지원=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가 일이 된 사람들이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우리는 어차피 무대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최대 매력이다.
요안=나의 첫 직장은 광고회사(오리콤)였다. 공연이 좋아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서른에 대학로로 갔다. 악어컴퍼니에서 공연기획 일을 하다가 동숭아트센터를 거쳐 현재의 직장(두산아트센터)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미있는 것은 첫 직장과 현재의 직장이 모두 두산 계열로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영선=나도 대학로에서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다. 서울예술기획 등에서 일하다가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63시티 문화사업부 공연·전시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회사를 옮겼지만 달라진 건 없다. 공연계 사람들의 장점으로 흔히 거론되는 적극성과 열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무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즐겁다.
종환=커튼콜은 일종의 마약이다.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커튼콜이 이어지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의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모든 힘들었던 기억과 어려움은 그냥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 이 맛에 중독되면 공연계를 떠나기 어렵다. 세상엔 좋은 직업과 필요한 직업이 무수히 많지만 감동과 즐거움을 전하는 일만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태미=나는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지금은 첼로를 놓고 티켓 판매 관리와 공연 투자 업무 등을 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객석에서 울리는 박수 소리가 짜릿하다. 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한다.
상미=공연기획은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지만 치명적이다. '행복한 낙인'이라고나 할까. 어떨 땐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자부심과 열정으로 모든 것을 돌파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은 스스로를 무척 대견스러워 할 때도 있다.
석호=내가 올린 공연을 보고 행복해 하는 관객들을 볼 때마다 묘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고 느낄 수 있다는 점 역시 공연 마케터들의 즐거움이다. 월화수목금금금…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주7일 근무에 익숙하고 연봉도 여타 직업에 비하면 센 편이 아니지만 공연은 언제나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정순민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First-Class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구독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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