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국사회] '대학 등록금'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 우석훈
[한겨레] 야!한국사회
지난번 칼럼에서 과외금지를 국민투표에 부쳐보자는 얘기를 다뤘다. 기본적인 생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재의 심각한 사교육 문제를 정치권이 해결할 수 없다면, 직접민주주의의 장치로 1987년에 개정된 9차 개정헌법이 보장한 국민투표라는 장치를 사용해 보자는 것이다. 이는 교육 정상화는 물론, 많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경기 진작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나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는 아니라서, 현실에서 당장 대통령이 이런 과외금지 국민투표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다. 아직 4년이나 남은 얘기지만, 만약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투표에 갈음할 수 있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라도 이 문제가 대선 공약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현실이 멀더라도, 이 사교육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것이고, 절망스럽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교육 문제가 국민투표에 올라간다면, 나는 80% 이상의 국민이 지지할 것을 확신한다.
어쨌든 기왕 교육 국민투표라는 장이 열린다면, 여기에서 꼭 다루고 싶은 얘기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대학 등록금, 청소년 인권, 그리고 창의성 교육에 관한 얘기들인데, 오늘은 짧은 지면이지만 대학 등록금 얘기를 하고 싶다. 핀란드처럼 사실상 등록금을 받지 않는 나라가 있고, 약간이지만 등록금을 받는 나라들이 있다. 프랑스는 연간 등록금이 50만원, 독일은 100만원, 그리고 스위스는 그 중간인 70만원 수준이다. 물론 이런 나라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4만달러 정도인데, 이런 나라들이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한 것은 5천달러가 채 되기 전인 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우리는 왜 못하는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정부 지원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고, 치솟은 대학교수의 봉급을 일단 한국전력 수준 정도로 조정을 한다면 등록금을 연간 100만원 수준으로 맞추는 정책적 디자인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런 재정정책의 수혜를 받을 대학들로 일종의 공교육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등록금·학벌 문제 완화가 동시에 가능하다. 물론 정부 지원 없이 좋은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은 그렇게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 국고보조금이 가기는 곤란할 것이다. 만만찮기는 하지만, 공교육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간 등록금 100만원 정도에 맞추는 정책은, 넉넉잡고 국내총생산(GDP)의 0.5%만 추가적으로 사용하면 가능한 것인데, 지금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건설업에 쏟아붓는 돈의 아주 일부만이라도 고등교육에 쓴다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 네트워크를 공교육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싶은 사립대에게 우호적으로 개방한다면, 우리도 유럽에서 상식적인 100만원 미만의 대학 등록금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러 기술적 선택사항을 세밀하게 검토해야겠지만, 현정부에서도 마음만 먹는다면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10분의 1 등록금'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려 할 것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교육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스위스에서는 농업 지원을 두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교육개혁에도 국민투표를 통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2만달러 경제, 최소한 20대들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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