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기자의 Who's Now] '꽃노털옵하' 소설가 이외수

입력 2008. 8. 29. 03:33 수정 2008. 8. 29.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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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은 질색… 이 나이에 좀 놀면 안돼?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3월말 출간된 잠언집 <하악하악>은 몇 달째 베스트셀러 1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고, 그가 인터넷에 올린 댓글들은 어록으로 만들어져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무릎팍도사> 등 각종 토크쇼 출연으로도 모자랐는지,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선 치매 걸린 선장 역을 맡아 연기자로도 변신했다. 이뿐인가. 대중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광고, 그 중에서도 광고의 꽃이라는 휴대폰 CF에도 긴 머리 휘날리며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외수?'(외수형) '꽃노털옵하'(꽃미남 노인 오빠)라 불리며 88만원 세대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소설가 이외수(62). 불현듯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 그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을 찾았다.

화천군이 생존 작가로는 처음 조성한 이 '이외수 마을'에서, 화천 최고의 브랜드이자 관광자원인 그는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 요즘 굉장히 바빠 보이십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외부 강연이나 방송 의뢰 같은 게 많이 들어와요. 인터넷 서점의 이벤트 같은 것도 많고. 하지만 철저하게 밖으로 안 나가고 불러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화천군수가 날 여기 데리고 올 때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들이라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튼 굉장히 다양하게 활동을 하는 편이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냥 노니는 걸로 생각합니다. 내 나이 정도 되면 이젠 좀 놀아야 되지 않느냐, 현역에서 치열하게, 그야말로 일하는 개념으로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는 거죠.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외수가 나이 들고 화천 들어가더니 돈독이 올랐다', 뭐 이런 말하는 안티들이 있는데,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원고료 제일 많이 받는 작갑니다. 저는 단 한번도 책이 영업에 실패해본 적이 없어요. 100%입니다.

출판가에서는 약 40만명 정도로 제 고정독자를 유추하고 있는데, 만약에 내가 돈독이 올랐다면 엎어져서 하룻밤에 100매 이상씩 원고 쓰고 있지 뭐 하러 번거롭게 돌아다니겠어요? 매당 5만원씩 받는데 편안하게 엎어져서 하던 지랄 계속하는 게 낫지.(웃음) 돈엔 큰 미련이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 전부가 그래요."

- 먼저 돈 얘기를 꺼내시니 반가운데요. <하악하악>이 40만부 판매를 향해 가고 있는데, 다들 <무릎팍 도사> 도움을 받은 거라고 얘기해요. TV에 자주 등장하시는 걸 상업적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고.

"아니에요. 난 원래 그 정도 팔렸어. 예전부터."

- 똑같이 40만부라고 해도 독자층이 달라졌잖아요.

"더 늘었죠. 더 젊은 세대 쪽으로 하향조정됐고."

- 그 봐요. 그 젊은 친구들이 책을 사서 보는 건 '놀아주는 작가'라고 할까요, 선생님께서 젊은 세대와의 밀착을 통해 작가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환심을 사려는 아첨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거죠. 왜 뒤늦게 그렇게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시는 거예요?

"그거야 간단해요. 놀아보세요, 재미있어.(웃음) 소통은 사실 즐겁습니다. 하지만 소통을 안 받아들이게 될 때 여러 가지 부작용, 거부반응이 생기거든요. 가령 나의 그러한 것을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라고 본다든가, 단순히 책을 팔아먹기 위한 제스처로 본다든가,

그렇게 해석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단순한 친구들이겠지만. 근데 그건 소수고, 전체적으로는 누구나가 소통의 즐거움을 갈구하고 그 즐거움을 또 압니다.

난 엄숙하고 거룩하고 근엄한 건 체질적으로 안 맞아요. 조상 탓인 거 같애. 내가 양녕대군파 17대손입니다. 우리 양녕대군께서는 왕도 싫다고 대궐 담 타넘어 나가 풍류를 즐기신 분이니까. 저도 격식 같은 거 잘 안 차리고, 비교적 자유분방한 편입니다.

특히 이 시대는 어른이 없다고 하잖아요. 근데 내가 볼 땐 애들이 없거든. 다 애늙은이만 있지. 지금 젊은이들 역시 잔소리는 싫어하죠.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것 중에 아주 좋은 점은 자기가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고치려고 애쓴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노골적으로 이게 잔소리라고 얘기합니다. '어른이기 때문에 때로 꿀밤을 먹일 수도 있고 회초리를 휘두를 수도 있다.

너희들은 애들이기 때문에 좀 맞아주면 고맙겠다. 내가 잘되려고 그런 거 아니다. 너희들, 나라, 세상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니까 인정해달라.' 그 친구들 얘기는 지금 저 나이에 자기들하고 대화가 통하고 같은 커뮤니티에서 놀아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좀 듣기 싫더라도 수용하고 따르자, 그래요. 그 수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갑자기 중요한 소명이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젊은이들은 왜 이외수라는 사람한테 열광하는 걸까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장래가 다 불투명해. 다들 불안해 하거든요. '불안해 하지 말아라. 늬 나이 때 나도 그랬다',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야 되고, 그 말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지금 구조 자체가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고스란히 경험했던 잡초형 인간이 하나 나타나서 '야, 걱정하지 마. 너희들처럼 살았지만 내가 지금 뻔뻔스럽게 잘 살고 있지 않니?' 이런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니까요. 누군가는 총대를 메줘야 한다는 거죠."

이외수는 언제나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대중 작가였지만, 이처럼 폭발적으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는 처음이다. TV와 광고뿐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인터넷 해방구이자 놀이터인 디씨인사이드엔 이외수의 별도 갤러리가 마련돼 있고, 그의 홈페이지는 그의 촌철살인 한마디를 기다리며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느 연예인 못잖은 인기. 하지만 여기서 상업적 혐의를 거두기란 쉽지 않다. 그는 왜 외도를 하는가.

- 연기는 해보니까 어떠세요?

"그게 치매 걸린 노인 역이잖아요. 내가 평소에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평소대로만 하면 돼. 괜히 연기한다고 망치는 것보단 자연스럽게 하는 게 좋죠."

- 섭외 받고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좀 하셨나요, 어떤가요?

"좀 고민했죠. 내가 연기자는 아니잖아요. 옛날에 내가 최양락씨가 진행했던 <알까기>라는 프로그램에 나갔었어요. 나랑 친한 전유성씨가 자기랑 알까기 대국을 하자고 하길래 처음엔 내가 '작가가 무슨 코미디 프로에 나가서 알을 까고 있냐' 그랬죠.

그랬더니 전유성이가 일갈하기를 '아직도 형은 그런 관념 속에서 사우?' 그래요. 그때 내가 홀연히 '이걸 깨야 된다, 이게 무슨 범죄도 아닌데 그런 걸 구분하고 가리고 사는 건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라고 하면 어쨌든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해보는 게 작품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연기자들이 다 착하잖아요. 잘 챙겨줘요, 내가 서툴거나 그러면."

- 근데 광고는 좀 다르지 않아요? 작가가 언제 어디서 뭘 비판할지 모르는데, CF 나가서 '이 제품 좋아요, 이거 써보세요' 했다가 나중에 어떡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음…. 글쎄요. 뭐 나쁜 걸 선동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도 뭐,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난 고정관념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걸 깰 수 있는 기회라고 봤고. 콘티를 딱 봤는데 스트레이트 파마 하는 거더라구요.

사람들이 난 절대로 파마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좀 깨뜨려버리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 2005년 <장외인간>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안 쓰고 계세요. 이외수가 말년에 연예인으로 전향했나, 작가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작품을 해야지, 왜 소설은 안 쓰고 TV에만 나오나, 이렇게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많아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농사꾼한테 한평생 논바닥에서 말라죽으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얘기예요. 그렇다고 농사꾼의 고충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농사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피땀만 강요하는 건 아주 잘못된 겁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내 책을 몇 권이나 읽었나 난 물어보고 싶어.

내 독자들은 '선생님, 제발 그만 좀 쉬세요' 그러거든요. '우린 정말로 행복합니다. 이런 작가와 함께 같은 시간대에 숨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젠 쉬셔도 좋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작가한테 치열하기만 바라지 말고 치열하게 책도 좀 읽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난. 난 치열하게 안 쓴 거 하나도 없으니까 그거라도 다 읽고 그런 소리 하라고."

- 그럼 앞으로 소설은 안 쓰시겠단 말씀이세요?

"써야죠. 내가 직업이 그건데. 내가 원고지에다 코 박고 죽는 걸 제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놈인데."

- 그러니까 농사꾼이 뙤약볕 아래서 농사 짓다 죽는 것에도 숭엄함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 자세는 다 돼 있어요. 하지만 농사꾼도 정자 나무 아래서 막걸리도 마시고, 북장구도 치고 그래야지, 내가 허구한 날 논바닥에서만 살아야 돼? 그게 못돼먹은 습성이라는 거지."

'꽃노털옵하'로 불리기 전 이외수에겐 온통 기인과 도인의 이미지뿐이었다. 감지 않는 긴 머리, 무박3일 음주에 하루 너댓갑이 넘는 줄담배, 개집에서 잠을 자고, 창살 속에 갇혀 글을 쓰며, 세수도 안하고 양치질도 안 한다는 풍문이다. 거기다 '이왕 굶는 거 도나 닦자'며 시작했다는 수행,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소설 세계, 실제로 공중부양을 한다더라는 소문 등등이 한데 뒤섞였다. 다가서기 어렵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마주한 그는 흰 셔츠에 흰 바지, 얇은 검정 넥타이 차림이 아주 세련된 도시적 노인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내와 두 아들을 '글밥'으로 먹여 살린, 뜻밖에도 화목한 가정의 모범가장이었다.

- 예상과 달리 아주 스타일리시하세요.

"다 우리 마누라가 코디해준 거지."

- 요즘은 좀 자주 씻으십니까?

"네, 거의 매일 씻죠. 일단 여름, 겨울에는 여기서 문학연수를 40일씩 하니까 씻어야죠. 거기다 요즘은 TV출연을 하니까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씻을 때도 있어요. 귀찮아."

- 지금은 스타일리시한 '꽃노털옵하'지만 예전에 기행과 도인의 이미지가 절대적이었어요.

"그게 사실 육안에 속는 거지, 뭐. 내가 추종하기는 하죠, 도를. 동양은 모든 분야가 도에 이르는 것이 절대목표예요. 어쨌든 최고 찬사가 '예술이다' 아니면 '도사다'거든. 그거, 하고 싶기야 하고 싶지. 하지만 전문적으로 '도나 기를 아십니까' 쪽은 아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나는 머리도 기르는 게 아니라 대학 때부터 늘 노숙하고 한뎃잠 자고 그랬기 때문에 방치하는 게 습관화된 건데, 사람들은 내가 그걸 기르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마치 도사연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거고.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거든. 새삼스럽게 지금 와서 깎는다는 게 오히려 쑥스럽잖아요. 아직도 사람들은 내가 산 속에서 사과 궤짝이나 엎어놓고 피 토하면서 글 쓰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이맥 컴퓨터 능란하게 쓰는 것 보고 배반감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자유분방한 작가라면 자고로 결혼은 두세 번쯤 하고, 연애도 수십 번씩 하고, 그래서 자식들도 여기 저기 많고 그럴 것 같은데, 의외로 일부일처제를 모범적으로 준수해오셨어요.

"내가 그런 걸 못하잖아요. 우리 마누라는 나더라 가사적인 남편이라고 해요. 옛날에는 애들 간식도 많이 만들어주고 그랬거든요. 언젠가 TV를 보니까 교과서에 나오는 훌륭한 작가들의 자제들을 찾아다니면서 모니터한 프로그램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거기 나온 자식들이 다 아버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해요. 엄마들이 허구한 날 애들 붙들고 '니 애비는 글 쓴답시고 조선팔도를 떠돌면서 가족들은 돌보지도 않는다' 이랬던 거 같애요. 그때 '난 저건 안 하겠다. 저 소리는 내가 안 듣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식들한테 80점 이상은 받는 아버지가 돼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정엔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일반 남자들보다도 굉장히 신경 많이 쓰는 편이에요. 최소한 의식주만은 불편하지 않도록 해줘야 옳지 않겠느냐, 가족이 굶고 있을 때 작가랍시고 공상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지.

난 첫 애 낳고 작가폐업 선언 했잖아요. 첫 애를 내 손으로 직접 받았거든. 근데 기저귀도 없지, 우유 살 돈도 없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게 무슨 작가냐 이거야. 두 식구도 치다꺼리 못하는 놈이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할 자격 없다, 작가 폐업하고 그 길로 월부책 장사 나갔잖아요."

-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에 비해 문단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거의 외면받다시피 했는데요.

"대한민국은 그렇잖아요. 학연공화국, 지연공화국인데, 내가 강원도 인제 깡촌에서 그야말로 '배출'된 놈인데, 학연이 있어요, 지연이 있어요. 학연이래야 춘천교육대 중퇴가 다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니, 내가 데뷔할 때는 진짜 떠들썩했어요.

그랬는데 3년 동안 청탁이 안 와! 그게 문제가 뭐겠어요? 결국 끼리끼리 논다는 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독립선언 하는 수밖에 없지."

- 문단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 같은 건 안 생기셨어요?

"나는 독자, 출판사, 작가, 이 삼각구도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해요.

- 스스로 꼽는 대표작은요?

"없어요. 대개의 경우 그렇잖아요. 고통이 안 가시면 그게 굉장히 애쓴 거 같은 생각이 드니까 작가들이 보통 제일 나중 작품을 얘기할 거예요."

- <하악하악>이요? 그게 대표작이라고요?

"아암, 대표작이지. 대단한 거예요."

- 솔직히 그거 너무 쉽게 씌어진 책 아닌가요? 댓글 모아놓은 책인데.

"아니야. 그것도 노심초사, 매일매일 갈고 닦은 거예요. 문하생들이 알아요. 그거 거저 나온 거 하나도 없어. 한 줄짜릴 쓰더라도 몇 번을 고쳐 쓴 거예요. 사실은 <장외인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건 내가 첫 머리만 40매씩 40번을 바꾼 거예요.

달을 없앨 만한 타당한 복선을 만들기 위해 내가 달의 지성체들을 불러서 채널링을 해가면서, 점검을 해가면서 문의를 하고 썼다고요. 난 실제로 했으니까 했다고 말했는데 졸지에 또 이상한 놈 취급 받고."

- 진짜 채널링을 하세요? 요즘도요?

"한 8개월 전에도 했어요. 늘 친구처럼 지내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묻고 그러지. 올림픽 열리기 전에 '우리나라는 성적이 어떨 것 같냐' 물어보니까 예년 수준을 유지할 거래요. 맨날 묻는 게 '한국은 언제쯤 좋아지냐?'

이건?'기대하지 마라. 너희 나라는 지금 음의 궤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니까 기다려야 한다. 넌 왜 맨날 똑같은 걸 묻냐?' 그래요. 그 친구들이 날 좋아하는 건 난 내 일에 대해 별로 걱정을 안 해. 다 남의 일을 걱정하지.

내가 그 친구들 처음에 만났을 때 물어봤던 게 '너희들이 알고 있는 지구인의 특성이 뭐냐'였는데, 뭐라는 줄 알아요? 안 해도 될 걱정 만들어 하는 게 지구적 특성이래요. 아주 배꼽을 잡고 웃었지. 너무 맞는 말 아냐?"

aurevoir@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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