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가도 저항정신 그대로..정희성 시인 '돌아다보면 문득'

2008. 8. 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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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은 "여유를 갖고 돌아보니 너무 긴장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면서 "요즘엔 시를 쉽고 재미있게 쓰려 한다"고 말한다.

정희성(63)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창비)을 펴냈다.

2001년 발표한 '詩를 찾아서' 이후 7년 만이다. 1970년 등단한 이래 38년 동안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만 시집을 냈다. 그는 1970∼80년대 저항시인으로 주목받았고, 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해 연행되기도 했다. 이번 시집은 깊은 연못물처럼 잔잔하지만, 때론 현실을 맵게 비판하며 참여시인의 면모를 보인다. "시대가 날 현실주의자로 만들었지 본질적으로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시인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서정시들로 구성된 들머리는 시집 전체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노년에 접어든 자의 외로움, 도로변 코스모스로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 날 선 감정을 다스리는 지혜 등은 시집 전반에 부드럽게 깔려있다.

"마음이 만약 쓸쓸함을 구한다면/기차 타고 정동진에 가보라/ 젊어 한때 너도 시인이었지/ 출렁이는 바다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바닷가 벤치'에서)

그의 시는 고독, 소외감에 젖지 않기에 읽는 이의 가슴으로 날렵하게 직행한다. 감상과 기교를 뛰어넘은 노 시인의 소탈함은 동심(童心)과 유사하다. 우울을 노래할 때조차 해맑고, 순수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집 안에 틀어박혀/ 말도 안 되는 시만 쓰지 말고/ 비타민 디를 먹고/ 햇볕을 많이 쬐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득한 전생에 상추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우울증' 전문)

정 시인은 35년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작은 텃밭을 가꾸며 은퇴 이후의 삶을 보내고 있다. 시집에 드러난 그의 일상은 담담하고 소탈하다.

"평생 아이들 자라는 것만 보다가/ 퇴임하고 들어앉은 나에게/ 허구한 날 방구들만 지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불쑥 내민 호미 한 자루/ 하느님, 나는 손톱 밑에 흙을 묻혀본 적 없고/ 상추 한 잎 이웃과 나눈 일이 없습니다"('작은 밭'에서)

고요한 서정시를 주로 담았지만, 투사의 기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반도 대운하 등 정치현안을 비판한 시편도 있다. 시인의 확고한 신념, 저항정신은 세월이 가도 결이 죽지 않고 빳빳하다.

"이제 더 내다팔 아무것도 없이/ 시장의 논리에 맡겨진 이 나라도/ 대통령도 할 일이 없어졌다/ 보시기에 평화로웠다"('2007년 6월의 마지막 날'에서)

"실용주의를 자처하는 당신들 눈에는/ 시인은 아마도 가장 비실용적인 인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 해도 시인은 생태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누가 어머니의 가슴에 삽날을 들이대는가'에서)

정 시인은 권말에 "스스로 세상 밖에 나앉았다고 생각했으나 진실로 세상일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시인의 숙명을 새삼 되새긴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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