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첼시투어] ⑩ 모스크바 공항에서 첼시 호텔까지

[스포탈코리아=런던(잉글랜드)] 서민지 첼시코리아 에디터= 투어 마지막 날의 피로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위해 로비에 나갔는데 선수들의 모습도 지친 기색이었다. 브리지과 애슐리 콜은 서로 상대방의 피곤한 얼굴들을 보면서 웃었다. 숀 라이트-필립스는 "내 침대가 그립다"며 중얼거렸다.
첼시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게 지는 바람에 3~4위전을 치러야 했다. 경기는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었는데 우리는 1시간 일찍 경기장에 도착했다. 첼시 선수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데 셰브첸코가 혼자서 AC밀란 선수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제 보트에서도 그러더니 할 말이 무척 많은 듯싶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피곤해 죽겠다고 투정부리던 애슐리 콜은 공격진을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으며 투지를 보여줬다. 겨우 하루를 쉬고서 또 다시 풀타임을 소화해 내는 그들이 정말 대단해보인다.
이대로 꼴찌가 될 순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첼시는 전반전에 3골을 내리 쏟아 부었다. 경기는 결국 5대 0으로 끝났다. 비록 1.5군의 밀란이었지만 첼시는 경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발군의 실력을 충분히 뽐낼 수 있었다. 아넬카는 4골을 넣으며 입단 이후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는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 '프리시즌 5경기 동안 6골을 성공시켜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말했다.
영어가 낯선 데쿠와 언변 좋은 체흐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데쿠를 잡았다. 그에게 첫 번째 프리시즌의 소감을 물었다. 데쿠는 "좋았다"고 말했다. 아직 영어가 서툴러서 긴 대답을 못하는 그이지만 매번 어떻게든 길게 답하려고 노력하긴 한다. 그걸 보던 미디어 담당관 스티브가 자꾸 옆에서 "얘한테 말해봤자 못 알아들어. 다음에 하자"라며 눈치를 준다. 나는 굴하지 않고 바르셀로나와 첼시에서 뛰는 걸 비교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똑같다"는 단답형이 흘러나왔다. 첼시에도 환상적인 선수들이 있고, 플레이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단다. 그래서 프리시즌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는데 못 알아들었다. 참다못한 스티브는 그냥 데쿠를 데리고 가 버렸다.
성격 좋은 체흐는 오늘도 기자들에게 붙들렸다. 성격도 좋지만 말하는 것도 즐기는 것 같았다. 미디어 담당관이 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체흐는 말을 잘 가리는 똑똑한 선수다. 그는 지난 번 모스크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에게 졌을 때 믹스트존에서 인터뷰했던 첼시의 유일한 선수였다. 언젠가 체흐에게 한국어인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줬을 때 이틀 후에 그가 응용하는 걸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지금은 잊었을까?
경기 종료 후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선수들도 너무나 좋아했다. 출국 심사는 입국 심사보다 까다로웠다. 발락과 테리 같은 유명 선수도 사진과 얼굴을 한참이나 대조하며 검사를 철저히 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양인이라 구분을 잘 못하는지 다른 동료 직원을 불러 사진과 실물을 비교했다. 바로 뒤에 서있던 에시엔은 "너 여권 가짜지?"하며 놀려댔다.
첼시 스타들이 공항에서 노는 법
우리는 탑승까지 2시간을 더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발락은 배가 고팠는지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시켜 순식간에 해치웠다. 다른 선수들도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노래를 듣기도 하는 등 자유 시간을 보냈다. 테리는 그 와중에도 스텝들과 '볼 키핑'을 하면서 공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사건도 있었다. 오늘 나는 결국 선수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첫 프리시즌을 함께 하는 신고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마사지사인 빌리와 램파드만 주동했는데 점차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돼 버리고 말았다. 선수들이 나를 보며 "민지, 민지, 민지"를 외쳐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이상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 노래인 '마법의 성'을 불렀다. 선수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쳐 주었다. 그 와중에도 선수들 얼굴을 봤는데, 카르발류가 제일 열심이었다. 조 콜은 좀 무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수들 앞에서 한국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프리 시즌 동안 고생한 선수와 스텝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끝내자 리키(히카르두 카르발류의 애칭)가 다가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네 노래 정말 좋았다"며 칭찬했다. 피터 캐년의 아들 패트릭도 박수를 쳤다. 다들 내가 불쌍해 보인 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다른 선수들 역시 비행기에서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먼저 프리 시즌에 참가한 정식 직원인 첼시TV 트레이시와 미디어 담당관 스티브 앳킨슨의 노래자랑이 있었다. 스태이시는 내가 추천한 본 조비의 노래를 불렀고, 선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티브 앳킨슨이 히트를 쳤는데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에 고함만 되게 질러 웃다가 숨 넘어 가는 줄 알았다. 선수들도 박장대소 했지만 유독 스티브만 심각한 표정으로 노래를 계속했다.
뒤이어 라니에리 시절부터 첼시와 7년을 동행해 온 토마스쿡 여행사 존 리브스의 기타 연주와 노래, 음악가 출신 주방장 대런 타일러의 수준급의 노래가 이어졌다. 에시엔은 부상에도 흥에 겨웠는지 몸소 기막힌 댄스를 보여줘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얌전하기만 했던 영국 웹사이트 에디터 폴 메이슨의 기타 연주로 즐거운 장기자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았다.
영국으로 돌아오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올 때는 52명이었지만 57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첼시미디어 마케팅 매니저 카스 나잇과 수석 스카우터인 프랭크 아르네센, 기술 이사 마이클, IMG의 제임스 등이 러시아에서 합류했고, 마카오에서 합류한 발락과 싱클레어도 있었다.
비행기는 3시간 40분을 날아 런던 갓윅 공항에 도착했다. 선수들 가족들 대부분이 마중을 나왔다(데쿠는 택시를 탔다). 나는 원래 잠자리를 주기로 돼 있던 홈스테이가 갑자기 취소돼 스탬포드 브리지로 와서 첼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체크인을 하다가 공항에서 고함치며 노래 불렀던 스티븐 앳킨슨과 마주쳤다. 그는 미국에서 14년을 살다가 첼시에 합류하기 위해 영국으로 온 지 겨우 2달밖에 되지 않아 집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스티븐 앳킨슨은 원래 주미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던 미디어 담당관이었다. 그가 호텔 측에 요청해 스텝 전용 할인을 받아주었다.
정신없이 지나왔던 시즌 투어의 열정을 간직하며 나는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여기는 진짜 런던이고, 나의 진짜 도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 사진 설명
(왼쪽 위) AC밀란의 전 동료들과 대화 중인 셰브첸코
(오른쪽 위) AC밀란을 5-0으로 격파한 첼시
(왼쪽 아래) 공항에서 대기 중인 첼시 선수들
(오른쪽 아래) 드디어 런던 도착. 첼시 호텔에서 숙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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