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여의도 조고(趙高)

2008. 8. 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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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자를 풍자할 때 종종 지록위마(指鹿爲馬)·위록지마(謂鹿之馬)를 인용한다. 환관 조고(趙高)가 진시황의 장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만만한 호해(胡亥)를 후계자로 만든 뒤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황제 앞에 사슴을 갖다 놓고서 "말을 바치겠다"고 한 데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권력을 앞세워 법과 상식 위에 군림한 게 조고였다.

현대판 조고가 모인 곳이 있다면 서울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일 듯싶다. 18대 국회의원 299명 모두가 법을 위반한 '범법자'이면서도 당당하기 때문이다. 국회법에는 임기 개시 후 7일 이내 첫 회의를 열어 의장단을 선출하고, 본회의 후 3일 이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게 돼 있다. 5월30일 임기 개시 후 두 달여간 국회가 한 일은 7월10일 의장, 7월16일 부의장단 선출이 고작인데 그것마저 법 규정을 어긴 것이다. 상임위원장도 아직껏 선출하지 않고 있다.

입법 기관이 자신들이 만든 법을 지키지 않고서 국민에게 법질서 준수를 말할 염치가 있느냐고 따진다면 이는 상식적 질문이다. 하지만 법·상식을 무시하는 게 조고와 같은 부류인 의원들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쇠귀에 경 읽기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그제 원내대표회담이었다. 국회 행태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데도 여야가 또 다른 위법 행위에 '가합의'를 했었다. 장관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키로 했었는데, 이는 소관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하도록 한 국회법과 요청안 제출 20일 이내 인사청문을 마치도록 한 인사청문회법에 모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청와대가 "법에 없는 정치적 타협은 안 된다"며 퇴짜를 놔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국회 직무유기를 놓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비를 반납하라는 여론이 비등하다. '조고'들에게 통할 법한 얘기가 아니다. 차라리 세비나 국고보조금 삭감 같은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불리한 입법을 할 리 만무하니 공염불에 불과하다. 평균 재산(초선·재입성) 31억7300만원의 부자들이 놀면서도 세비는 꼬박 챙길 수 있으니 국회는 '신도 놀랄 직장'이라 하겠다. 조고가 제멋대로 하다 3년 만에 몰락했던가. 권력에 취해 법·상식 무서운 줄 모르면 하늘이 응징하기 마련이다.

이익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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