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기 자리엔 선풍기만 덩그러니.."

용인 고시텔 화재로 본 소방시설 실태
일부는 공사중 안내문 내걸고 문까지 잠궈
지난 25일 불과 40분 만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인 고시원 화재. 이 참사는 극빈층의 마지막 주거지로 전락해버린 열악한 고시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겨우 한 사람 정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복도와 마치 벌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방 배치, 굳게 잠겨버린 비상구, 외부인들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 보안환경 등은 숱한 대형 화재 속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안전불감증의 산물이었다. 이번 화재 사건을 계기로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긴급 점검한 서울 주요 지역 고시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수의 고시원에서는 법적으로 구비해야 할 완강기나 피난안내도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화재 발생은 곧 대형 인명 사고'라는 우울한 등식은 여전히 유효해 보였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H고시원, 화재 시 비상 탈출 용도로 완강기가 있어야 할 곳이지만 완강기 대신 걸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선풍기였다. 다른 인근 지역 고시원들도 마찬가지다. 완강기는 온데간데없이 설명서만 붙어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한 고시원에는 밧줄 없이 완강기 도르래만 외롭게 걸려 있기도 했다. 심지어 K고시원에는 완강기가 걸려 있는 문 앞에는 "공사 중이니 문을 열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현행 법령상 고시원은 비상 탈출 수단으로 완강기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역시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구비돼야 할 피난안내도의 경우에는 아예 설치 의무를 모르는 업주들이 태반이었다. 피난안내도 비치에 대해 묻자 신림동의 B고시텔 업주는 "구조도 단순한데 무슨 피난안내도가 필요하느냐"며 "피난안내도는 형식만 내세운 법 조항"이라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비좁은 복도와 무용지물의 탈출로는 해묵은 과제로 남아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고시원은 주 출입구 외에 별도로 설치토록 돼 있는 각방의 비상구 확보, 피난유도선과 각방의 소화기 설치, 휴대용 비상조명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소화기가 작동하지 않는 곳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으며, 소방교육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가리봉동 모 고시원에 거주하는 김홍태(47.노동) 씨는 "고시원에 오랜 기간 생활했지만 입주할 때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화기 사용법이나 비상탈출기구 사용법을 들어본 바 없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이번 용인 고시원 화재에서 지적된 보안상의 문제점에서 상당히 취약한 모습이 노출됐다. 각 고시원은 낯선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CCTV를 갖추고 있었으나 가동을 안 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고시원 이용객 대부분이 주거가 일정치 않음을 고려할 때 용인 고시원 화재와 같은 '묻지 마 범죄'의 재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였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모(27.대학생) 씨는 "고시원에 사는 것이 불안하긴 하지만 돈 없는 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돈이 없어 서러운 사람들이니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현실이 한탄스럽다"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회부 사건팀(su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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