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4>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학문간 벽 허물자"… 지식의 대통합 '통섭' 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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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물학의 독보적인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는 대중과 유리된 학문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송원영 기자 |
과학을 과학자들의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학자들이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이들의 맨 앞줄에 자리한다.
그는 과학과 대중의 소통,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를 강조해 온 학자다.진정한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노력을 평가한 대중은 내놓는 책마다 찾으며 호응하고 있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상징어가 바로 '통섭'(統攝·Consilience)이다. '지식의 통합'쯤으로 설명될 이 말은 그가 번역서를 내면서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19세기에 자연철학자가 처음 사용한 이 영어 단어는 1990년대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재창조해 인용했다. 최 교수는 이를 국내에 번역했다.
윌슨 교수의 제자인 최 교수는 영어 원뜻을 살리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 파묻혔다. 그러기를 6개월 만에 통(統, 큰 줄기)과 섭(攝, 잡다)을 이용해 단어 '통섭'을 만들 수 있었다. 한양대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해 "의도한 가장 적실한 단어"라는 답을 받았다. 원효대사 등 불교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된다.
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이화여대 통섭원을 찾았다. 연구실을 겸한 통섭원은 그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직접 설계한 곳이다. 출입문 옆에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벽면은 책장이 둘러싸고 있다. 책상 뒤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그려놓았다. 책장에는 전공 관련 책은 물론 인문 도서도 많이 있다. 책장에 포도주도 보인다. 제품 이름이 컨실리언스(통섭, Consilience)다. 신기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입니다. 1990년대 중반 와인 생산업자들이 '와인은 우주와 인간의 교감 끝에 나오는 술'이라는 이유에서 이 교감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윌슨 교수가 아직 '컨실리언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때였지요.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단어인 '통섭'이 전혀 낯선 공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거지요."
'통섭'에 대한 그의 애정은 '통섭: 지식의 대통합'(사이언스북스)을 책의 제목으로 밀어붙일 때 힘을 발휘했다. 책의 제목은 대개 저자보다는 현장 감각이 있는 출판사의 제안을 따르기 십상이다.
"'통섭'을 제목으로 제안하자 반대가 심했어요. 독자들이 알아듣기 힘든 생소한 단어라는 겁니다. 초판이 안 팔리면 대신 구매하겠다고 버텼지요. 다행히 제가 주장한 제목으로 책이 나왔고, 6만권 넘게 팔려 저와 출판사 모두 웃고 있습니다."
통섭의 대명사로 등극하기 이전에도 최 교수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정받았다. 2006년 이화여대의 집요한 제안으로 대학을 옮기기 전에는 서울대 동물학과 교수로 이름을 알렸다. '개미 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과 '여성시대에는 남성도 화장을 한다'(궁리), '대담'(휴머니스트) 등의 저서를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호주제 폐지에 큰 공헌을 세워 여성단체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가 되기 전에도 그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수학을 못해서 서울대 의대만 두 차례 떨어졌습니다. 동물학과에 입학해서는 사진 동아리 '영상'의 초대 회장을 지냈기도 했습니다."
최 교수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사람은 영유아 시기는 물론 사춘기와 중년기에도 두뇌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집니다. 중년을 넘어서도 인간처럼 유연한 생물은 없습니다. 출생 후 오랫동안 보호를 받는 사람은 다른 동물이 볼 때는 한심하지요. 하지만 사람은 더디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조의 싹이 자라는 성인도 학생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학창시절에 공부하면서 지난해에는 일절 몰랐던 것을 올해는 너무 쉽게 이해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거에요. 전혀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보이는 게 인생입니다.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나도 모르게 저만큼 앞서가는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꽤 크잖아요."
그러면서 과학책 읽기를 권했다. 서양은 물론 일본에서도 과학책은 잘 팔리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책도 잘 읽으면 재미있어요. 무엇인가를 어려워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부분부터 자꾸 살펴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과학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는 신념이며 철학이다. 이는 고등학교에서 문·이과가 구별되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과 이어진다.
"한국만이 문·이과를 구분합니다. 수학이 어렵다고 문과를 가고, 국어를 못해서 이과를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래서일까. 그는 오래전부터 문·이과 구분 폐지 운동을 펼쳐왔다."3년 전부터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녔어요. 제가 나서 '교육 당국이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방안을 만들었지만, 파장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지요."
학문의 벽을 허물자고 제안하는 그는 "심리학·신경과학·물리학이 모여 새로운 학문인 인지과학이 나왔다"며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해 연구하면 더 많은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외통수 학문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면서 재미있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이 노벨평화상에 이어 다른 분야의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경제학도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수학과 논리에 강한 한국의 경제학도라면 어느 누구보다 앞설 것입니다."
그는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도정일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와의 대담 형식을 띤 저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대담'(휴머니스트)에서 "생물학은 인문학과 물리학의 연결 고리"라는 말을 했다.
"인문과학과 전통적인 기초과학인 물리학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물학은 어쩌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학문일 것입니다."
여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성 후보가 선출되기 어렵다고 예상해 적중시킨 최 교수의 말이기에 믿어보고 싶다.
최 교수는 요사이 '버즈워즈'(Buzzwords)를 번역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통용어'나 '유행어' 정도로 이해될 이 번역서의 출간 이후 어떤 통용어가 나올지 기대된다.
bali@segye.com ■최재천 교수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물행동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1954년 1월생으로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쌓여 있는 '눈'을 녹이는 군불 지피기를 반복하고 있다.
▷약력◁▲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동물학 학사(1977년)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수상(1989년)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1990년) ▲하버드대 전임강사(1990∼1992년) ▲미시간대 교수 (1992∼1994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1994∼2006년)
▷저서◁'개미 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여자와 남자' '알이 닭을 낳는다' '열대 예찬:정글을 헤매는 행복' '지식의 통섭'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등
▷역서◁'인간은 왜 늙는가: 진화로 풀어보는 노화의 수수께끼' '인간의 그늘에서'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안개 속의 고릴라' '통섭: 지식의 대통합' '제인 구달의 생명사랑 십계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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