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정세균 대표 누구인가

입력 2008. 7. 6. 18:46 수정 2008. 7. 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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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잔뼈 굵은 `화합형 투사'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민주당 새 수장에 오른 정세균 신임대표에게는 `구원투수', `화합형 투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당 내부적으로는 화합의 카리스마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면서도 대(對) 한나라당 전선에서는 소신과 뚝심을 지키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 때마다 당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때문이다.

2005년 10.26 재선거 패배이후 3개월간 임시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대표적 개혁입법인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를 진두지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사학법 통과를 기점으로 난파 직전의 열린우리당은 위기를 벗어났지만 한나라당은 사학법 파동의 후폭풍에 휩싸여 강재섭 원내대표가 낙마하기에 이른다.

정 대표는 `경제통'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임원을 지내고 미국 페퍼다인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 실물과 이론에 두루 밝은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거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경제분야에서 탁월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그런 그가 리더형 정치인으로 한단계 도약한 결정적 계기는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다.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특히 같은 해 3월에는 한나라당의 단상점거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사법 처리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했다. 이때 치밀한 전략 수립과 용의주도한 실행력으로 `컴도저'라는 호칭을 얻었다.

2006년 1월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1.2 개각 파문'에 휩쓸려 잠시 당내 위상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내 제자리를 잡았고 11개월의 산자부 장관 재임 기간에는 수출 3천억달러 시대를 열어 `3천억달러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었다.

정 대표가 특유의 `통합의 리더십'을 과시하며 구원투수로 재등판한 것은 당이 분열로 치닫던 2007년 2월이다. 복잡한 당내 계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당 의장에 합의추대된 그는 같은 해 8월까지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통합의 초석을 놓았다.

당내에서는 거여(巨與)인 한나라당을 상대로 `강단있는' 원내전략을 구사하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정을 비판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다.

다만 정 대표는 경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데다 `관리형' 이미지가 여전히 강해 그의 정치적 `업그레이드' 가능성은 아직까지 공란으로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부인 최혜경(54)씨와 사이에 1남1녀.

▲전북 장수(57) ▲고려대 법대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학 석사 ▲15, 16, 17, 18대 의원 ▲연청중앙회장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열린우리당 당의장 ▲산자부 장관 ▲17대 대선 선대위원장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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