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이서진 인간의 얼굴을 한 군주 '사극의 뉴패러다임'(종영②)

[뉴스엔 이현우 기자]
"왕은 어떻게 인간의 얼굴을 하고 권위를 얻었는가"
MBC 월화드라마 '이산'(극본 김이영 / 연출 이병훈 김근홍)이 16일 마지막회 77회 정종 이산(이서진 분)의 죽음을 끝으로 9개월간의 대장정을 끝낸다.
지금까지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극은 그 왕의 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어떤 특정한 개성을 캐릭터 전면에 집중시켜 왔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연산군의 모습을 광기에 찬 것으로 그린다거나 영조를 다소 완고한 성격의 성군으로 그려왔던 것은 사극의 이런 룰을 따른 것. 하지만 '이산'은 보다 인간적인 모습에 집중했다. '이산'은 이산이 온갖 시련과 역경 속에서 왕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만큼 이산의 성장에 집중했다. 여기에 상상력의 산물로 극적 장치로 배열된 대수(이종수 분)와 송연(한지민 분)의 관계 설정은 이산의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 이산 그리고 대수와 송연, 사극속 현대적 감수성
이산, 이서진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역시 송연과 대수와의 관계다. 어린시절 동무로 설정된 세 사람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인간감정을 자극하는 이산의 감성코드다. 이서진은 이런 관계를 연기하며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줬다. 비록 이산 캐릭터가 사극 특유의 시공간 설정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더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서진의 연기는 대수에게 회심의 윙크를 날린다거나 정조와 송연의 혼례식에서 한번 더 깜찍한 윙크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송연과의 애틋한 감정을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연기하고, 송연의 죽음 앞에서 엉엉 소리내 우는 장면 까지 이어진다.
지금까지 배우 이서진은 도회적인 세련미와 따뜻한 감성의 연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시켜 왔다. 그가 기존 이미지와 다소 충돌이 자명한 사극 장르에서 이같은 자신만의 연기적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서진이 배우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는 방증이다.
○ 영조에게 카리스마와 박력을 배우다
드라마 초반 이산의 나약함은 시청자들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산은 끊임없는 암살음모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는 무력한 세자였다. 그런 이산이 조금씩 군주로서의 결단력, 권위, 카리스마를 가르친 것은 영조(이순재 분)다.
이순재는 영조가 붕어(崩御)하는 극의 44회까지 '이산'에서 가장 정통의 사극연기를 보여주며 이서진이 정조로 등극한 이후 연기에 대한 롤 모델을 제시해줬다. 이서진이 비록 '다모'를 통해 사극을 경험한 바 있다 해도 초반 정통 사극 연기와 군주로서의 기품을 표현하기에 지나치게 현대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이순재와의 연기호흡은 이서진을 성장시키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극중 인물간 관계설정에서도 이순재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이서진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게 돕는다. 이산이 영조 즉위기간 중 대리청정에 실패하고 이를 영조가 보듬는 과정은 정조의 성장 뿐 아니라 이서진의 성장 배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해도 손색이 없다.
○ 정순왕후 시련을 통한 인간적 성숙
정조를 왕이 아닌 하나의 나약한 인간 이산으로 그리기 위해 필요한 시련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순왕후(김여진 분)의 몫이었다. 또 인간적인 증오와 분노와 회의 고민도 정준왕후로부터 기인한다.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정순왕후를 향한 증오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복수심은 이산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간적인 면모다. 하지만 이산 정조의 분노는 지극히 절제돼 있다. 그것은 그가 군주라는 위치와 영조의 후궁-정조에게는 조모-이라는 관계적 정의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암살음모로 붙잡힌 정순왕후가 자신의 노론벽파 수족들을 모조리 잃으면서도 끝내 자신의 죄를 말하지 않겠다고 버티며 목놓아 울고 그런 정순왕후를 등지는 정조가 절망감에 젖은 표정을 보이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결국 정조는 정순왕후를 끝내 용서하지 못한다. 오열 속에서 삶에 대한 회한을 표현하는 정순왕후와 끝내 용서를 말하지 않는 주인공 정조 이서진의 모습은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산은 정조의 이름이다. 이 드라마의 타이틀이 '정조'가 아니라 '이산'인 까닭은 드라마 '이산'과 이서진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궁중 사극이 아닌 인간 이산을 다룬 사극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30%의 시청률로 성공이 증명된 이같은 기획 의도는 이산을 연기한 이서진의 공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이서진에 의해 인간의 얼굴로 해석된 군주의 모습은 사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현우 nobod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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