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30년만에 국내 최대규모의 봉토목곽묘 학술발굴

2008. 5. 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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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뉴시스】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은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 제73호분~제75호분 및 그 주변부에서 노출된 소형분 10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난 해 5월부터 시작, 현재 마무리 조사단계에 들어섰다고 21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조사된 제73호분과 제75호분은 대가야의 왕릉급 규모로, 이러한 대형분 발굴은 지난 1977년에 실시된 제44호분과 제45호분 이래 30년 만에 재개된 것이며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데 가장 중요한 학술조사에 해당한다.

제73호분은 직경 24m의 원형봉분 중앙부에 길이 10m, 너비 5m의 거대한 묘광을 파고 그 안에 주곽과 부장품곽을 평면 'T'자형으로 설치한 목곽봉토분이다.

제75호분은 직경 27m의 타원형 봉분 중앙부에 길이 14m 너비 5.5m로 묘광의 윤곽을 만들고 다시 그 안에 평면 'T'자형으로 수혈식석실과 부장품곽을 따로 설치한 수혈식석실분이다.

두 고분의 축조방식과 구조형태 및 순장관계 등에서 새로운 사실들과 구체적인 내용들이 밝혀져 향후 대가야를 포함한 삼국시대의 심화된 고분문화 연구와 고대토목공법 연구에 필요불가결한 자료들을 제공하게 됐다.

특히 두 고분의 축조방식에는 고대 토목공법에 해당하는 네 가지 점이 구체적으로 조사됐다.

첫째는 호석과 봉분의 축조에 요즈음 케이크 자르듯 평면상 방사상으로 여러 구역을 나누어 분담작업을 하되 제73호분은 22개 구역으로 제75호분은 20개 구역으로 축조한 이른바 구획축조방식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둘째는 묘광을 판 흙으로 그 둘레를 먼저 둑처럼 높게 쌓은 다음 내부구조를 설치하고 다시 호석과 본격적으로 봉분을 축조하는 이른바 '흙둑'기법(堤狀技法)이 적용되어 있는 점이다.

셋째는 요즈음 임시로 물막이 둑을 쌓을 때 사용된 것처럼 흙주머니(土囊)가 '흙둑'의 내부범위에 대량으로 사용된 점이다.

넷째로 대가야식 수혈식석실의 초기형인 제75호분 석실에서 넙적한 개석 밑과 사이에 대들보 모양의 석재를 부가함으로써 토압을 견디기 좋도록 보완한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순장곽 존재 유무의 논란 해소는 물론 그 배치의 기획을 분명하게 밝히게 된 점과 봉토내 동물순장시설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구비하게 된 것이 성과로 꼽힌다.

또 호석 안쪽의 순장곽은 반드시 하나의 구획단위 안에 들어 있는 점이 확인됨으로써 순장자 위치가 처음부터 기획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또한 제75호분 주실의 묘광 안에서 처음으로 7기의 순장곽이 등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음이 밝혀져 그동안 한일 고고학계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순장곽 또는 순장 존재의 의문사항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 출토유물은 잠정적 집계에서만 근 1000 점에 이르고 그 중에는 관모장식과 은제 귀면장식 및 금동제 팔찌장식 등의 장신구류도 있다.

이외 금동제 봉황문을 갖춘 대도와 함께 8자루를 묶어둔 환두대도와 창 등의 무기류, 찰갑과 말갑옷 등의 무장구, 등자와 금동제 행엽 등의 마구류, 고대의 철제도구 재료이면서 거래의 매개수단(화폐)인 철정(쇠판) 100여 점 등 대가야왕의 위세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가 출토되고 다종다양한 토기류들이 발굴됐다.

현장조사팀 관계자는 "5세기 전반대 대형분의 이러한 구조와 다종다양한 대량의 출토유물은 대가야를 포함한 삼국시대 문화 연구에 매우 귀중한 학술자료가 된다"고 밝혔다.

<관련사진 있음>

이종일기자 r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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