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보다 큰 지도]⑥ 헤밍웨이의 스페인




ㆍ'삶과 죽음 넘나드는 순간'을 만나다
자라온 땅의 정서는 피톨처럼 혈관을 따라 흐르게 마련인가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모국의 언어로 모국의 이야기를 쓴다. 이국의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그 나라를 상상하는 것은 저릿한 경험이다. 다른 사람의 안구로 가보지 않은 세상을 내다보는 경험. 그 때문에 우리는 읽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작가들의 책을 두근거리며 펼쳐보곤 한다.
그러나 "모국"이란 게 도대체 뭘까? 태어난 곳? 자라난 곳? 어느 곳이 한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오직 그 사람만이 알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지 모른다. 그가 쓴 글을 읽는 이들만이 냄새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
헤밍웨이는 미국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평생 영어로 글을 썼다. 그렇지만 그가 영어로 풀어낸 세계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돌아다닌 모든 나라들의 에너지를 자신의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작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정열적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 작가이기도 했다.
그가 살았던 파리, 쿠바, 그가 여행했던 아프리카, 스페인을 비롯한 전 세계 중에서,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를 꼽으라면 어디가 제일 앞줄에 서게 될까?
스페인. 그곳은 헤밍웨이와 닮은 점이 많다. 열정이 그렇고 극단을 추구하는 성정이 그렇다. 헤밍웨이가 스페인의 많은 문화들 중에서도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투우에 매료된 것은 그의 본성과 스페인의 정서가 맞아떨어진 곳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투우, 헤밍웨이를 만나다
헤밍웨이가 스페인을 방문한 것은 평생 모두 18회에 달하는데, 그중에서 아홉 번이 산 페르민 축제(Fiesta San Ferrmin)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1923년 5월, 스물네살에 처음으로 아랑후에즈에서 투우를 보았고,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그해 7월 6일 팜플로나를 방문하여 투우가 중심 프로그램인 산 페르민 축제에 참가했다.
매년 7월 6일에서 14일까지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는 그를 위해 만든 것처럼 헤밍웨이에게 딱 맞는 행사였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소와 함께 달리고, 투우를 즐기는 팜플로나에서의 1주일을 보내기 위해 그는 친구들과 함께 스물네살 때부터 서른 두살까지 딱 두번을 제외하고 매해 팜플로나를 방문했다. 그 뒤로도 54세에 한번, 60세에 한번 그 광란의 축제에 몸을 담았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게 노는 분위기도 헤밍웨이에게 딱 맞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매료되어있는 것은 축제의 핵심인 투우였다. 그는 논픽션 '오후의 죽음'에서 "전쟁이 끝나버린 지금 생과 사, 그것도 횡사를 목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투우장이다"라며 그가 왜 투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가 팜플로나를 자주 찾을 수 있었던 데는 지역적 조건도 한몫했다. 프랑스의 산악국경선에서 남쪽으로 약 38㎞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파리에 살던 헤밍웨이와 친구들은 쉽게 팜플로나로 넘어가곤 했다. 그 당시의 경험은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에 잘 묘사되어 있다. "축제는 7일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댄스도 계속되었다. 술마시기도 계속되었다. 시끌벅적함도 계속되었다." 지금도 팜플로나에는 헤밍웨이의 흉상 기념비가 서서, 웃고 즐기는 광란의 무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투우에 대한 헤밍웨이의 관심은 찾아가서 노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후의 죽음'과 '위험한 여름'이라는 작품으로 투우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지식을 정리했다. 1932년에 출판된 '오후의 죽음'은 스페인의 투우를 다룬 비스페인어로 된 투우서 중 가장 훌륭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논픽션 작품으로, 투우 외에도 스페인의 다양한 문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논픽션인 '위험한 여름'은 1959년 여름의 스페인 투우시즌에 대한 기록이다. 59년에 집필이 시작된 이 책은 이듬해 '라이프' 지에 세 개의 시리즈로 실리고 난 뒤, 1985년에 비로소 출판되었다.
헤밍웨이는 투우를 주제로 다룬 단편소설도 수편 써 냈다. 1918년 마드리드가 배경인 '패배를 모르는 사나이'나 '싱거운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여왕의 모친'의 무대는 멕시코이지만, 여섯 번의 투우경기를 계약하고 멕시코에 온 스페인의 투우사 파코가 주인공이다. 파코는 다른 소설에서도 몇 차례 얼굴을 내밀곤 했다.
헤밍웨이, 스페인 내전에서 활약하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관심은 단순히 스페인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먹고 노는 떠들썩한 축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1936년 7월 18일부터 1939년 3월 27일까지 있었던 스페인 내전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1936년, 선거에서 승리한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연합인 인민전선의 개혁에 대항하여 파시스트 프랑코가 벌인 이 전쟁은 정치적, 이념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스페인을 양대 세력으로 나누었다. 반란을 일으킨 국가주의자 진영으로 스페인의 로마가톨릭 교회, 군부세력, 토지자본가, 기업가, 우익팔랑헤가 결집하고 공화파 진영으로는 도시노동자, 농업노동자, 중산층이 단결했다. 헤밍웨이는 파시즘에 맞서 공화파 진영에 합류했다.
전쟁은 국제적인 정세를 반영하면서 각 나라들이 합류함으로써 그 성격이 더욱 분명해졌다. 프랑스, 멕시코, 소련이 공화파에 장비와 물자를 지원하는 한편,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 나치는 비행기, 탱크, 병사들을 프랑코에게 지원했다. 1939년 3월 27일 프랑코가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3년간의 전쟁은 종료되었다. 공화파는 패배하고, 파시즘은 승리했다. 그 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헤밍웨이가 공화파에 서게 된 이유는 간명했다. 프랑코는 파시스트였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막기 위해 헤밍웨이는 스페인에서 가능한 한 전력을 다해 공화파를 도왔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의 전황 급보를 취재하여 '북아메리카 신문연합'에 싣기 위해 세 번 스페인에 입국하고, 30개에 달하는 기사를 송고하여 스페인 전쟁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데 한몫했다.
그는 또한 선전영화인 '스페인의 대지'의 대본을 쓰고 이 영화의 홍보와 기금마련을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작가연맹' 모임에서 "파시즘은 사기다"("Fascism Is a Lie")라는 제목으로 반파시즘 연설도 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
이런 그의 맹렬한 활동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하게 했다. 여러 번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창 스페인 내전으로 활동하던 중 발표한 소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디트로이트에서 판매금지 처분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나, 불간섭정책 노선을 고수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하여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또한 전세계를 향해 스페인 내전을 방치할 경우 파시스트에 의해 세계전쟁이 일어날 것을 경고했는데, 결국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남으로써 그의 불길한 예언이 적중했다.
그는 작가답게 다양한 작품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다루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장편소설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세고비아 남동쪽 구아다라마 산맥에 있는 강에 놓인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받은 청년이 게릴리단에 소속되어 사랑과 죽음을 겪는 이 소설은 전쟁에 매료되는 한편 전쟁을 혐오하는 헤밍웨이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3막극 희곡인 '제5열'의 제목이 뜻하는 바는 스페인 내전 중 적에게 경도되어 아군을 배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마드리드의 플로리다 호텔은 전쟁 당시 헤밍웨이가 다른 기자, 작가들과 함께 머물렀던 바로 그곳이다. 또 스페인 내전 기록영화인 '스페인의 대지'에서 헤밍웨이가 육성녹음한 영화 속의 사운드 트랙 내레이션을 추려 책으로 출판한 동명의 작품이 이후 출간되었다.
단편소설인 '다리 위의 노인'도 스페인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파시스트들이 에브로강을 향하여 어느 지점까지 진격했는가를 알아내는 정찰임무를 맡은 군인은 전쟁으로 피란가는 대열에 끼어있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평생 동물을 돌보는 일만 하고 산,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나는 75세의 늙은 노인의 처량한 피란은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헤밍웨이가 쉬던 집, 라 컨슐러
말라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라 컨슐러는 헤밍웨이의 친구인 빌 데이비스와 그의 아내 애니가 소유한 별장이다. 헤밍웨이는 노후에 종종 이곳에 와서 쉬곤 했다. 그는 60회 생일파티를 여기에서 열었는데, 그것은 1959년 여름의 투우시즌을 즐기기 위해 스페인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여름'을 취재하고 집필하면서 그는 이 집에서 한숨 돌리곤 했다. 당시 그는 몸이 많이 불편했다.
다음해, 그는 라 컨슐러로 와서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 머물렀다. 그러나 그 시기에 그는 불행했다. 연초부터 그를 괴롭혔던 고혈압과 불면증, 심각한 우울증이 이곳에서 신경쇠약증세로 악화되면서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화를 통제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0월 8일 비행기로 뉴욕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이 그가 스페인을 마지막으로 떠난 날이 되었다. 그가 사랑했던 스페인의 풍토도 병으로부터 그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 이명석·박사 catwing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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