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성별곡' 박진우 작가 "안내상, 대본 이상의 정조"

2007. 12. 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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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올해에도 유난히 사극 바람이 거셌다. 지난해 50%라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주몽이후에도 `대조영` `한성별곡-정` `태왕사신기` `왕과 나` `이산` `정조암살 미스터리-8일` 등 올 하반기 안방극장은 사극이 점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극들 가운데 평단과 시청자들의 한눈에 받은 사극이 바로 한성별곡-정이다. 정조 말기정치적 격변기를 다룬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과 폐부를 찌르는 대사, 짜임새 있는 영상미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비록 5% 안팎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열혈 마니아들과 언론들은 "명품 사극"이라며 칭호를 부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성별곡-정의 세계를 만든 이가 바로 박진우 작가다. KBS `드라마시티`와 `이제 처용은 춤추지 않는다`로 첫 선을 보인 그는 8부작 한성별곡을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줬다. 모든 것을 PD와 함께 작업한 스태프의 몫으로 돌리는 박 작가를 통해 한성별곡이 말하는 정의 의미를 되짚어 봤다. 인터뷰는 작가의 사정으로 이메일과 전화로 진행됐다.

-작품이 끝난 지 약 4개월 가량된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7월말 방송이 끝난 후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9월부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한성별곡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드라마틱이 선정한 2007년 한국 드라마 총결산에서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방영 당시 '명품 사극'이라고들 했는데 작가의 생각은 어떤가?

'명품사극'이라 부르며 사랑해주신 시청자께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되돌아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시청률도 그랬고, 너무 빠르게 전개된 것 같다. 처음 보는 분들은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부분이 한성별곡의 장점이 될 수 있는데 뒤짚어보면 단점인 것 같기도 하다.

-한성별곡은 올해 정조 드라마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한성별곡 기획한 당시 얘기를 듣고 싶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006년 중순 곽정환 피디와 단막극 '그들의 진실'을 준비할 당시 KBS에서 사내 시놉시스 공모를 하고 있었다. 그때 잠깐 곽정환 피디와 예전에 썼던 단막 '한성별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의미있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많아 공모를 해보자 의견을 모으게 됐다.

8부작으로 기획된 이유는 이야기 크기가 통상의 미니시리즈 크기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다. 가장 참고가 많이 된 자료는 당연히 조선왕조실록 영,정조편이고, 정조에 대한 단행본도 많이 참조했다. 특히 영,정조 시대의 시장의 흐름을 알기위해 그와 관련된 도서들을 많이 접했다.

-애초의 단막극과 8부작 한성별곡의 차이점이 있었나?

작가 교육원에서 썼던 대본인데 그때 양만오, 김나영, 박상규 세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같았다. 당시 대본에 양만오가 왕을 독살한다는 계획정도만 있었는데 8부작에서는 정조 이야기가 추가되면서 확대된 것이다.

-한성별곡 이후로 정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많이 등장했다. 대선이 가까운데다 현실 정치와 정조시대가 비슷하다고들 하기도 한다. 또 작품 초반에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들도 있었다. 이후에 사라지긴 했지만, 작품을 쓰면서 당시 시대를 많이 연구했을 것 같은데 당대와 지금의 시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나?

우리 역사 어느 때이건, 돌이켜보면 언제나 현재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정한 것은 그 당시 몇 가지 점이 지금과 몹시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앙법의 보편화가 가져온 부의 편중과 그로 인한 양극화, 화성천도 시도와 기득권의 반발, 정치권의 심각한 갈등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했던 것은 서학을 비롯한 서양문물의 급속한 유입으로 인해 가치관이 몹시 혼란스러웠던 때라는 점이다. 그래서 당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던 젊은 세대들이 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관계가 다 다른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행동에 옮겨가거나 혹은 고뇌하는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이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자신과 닮은 캐릭터나 가장 애착이 갔던 캐릭터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려 달라.

'나'와 '우리'와 가장 닮아 있는 박상규가 그렇다. 나 역시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살았고, 박상규처럼 쉽게 결정하지도 결정했다해도 행동하지도 못했다. 자기 합리화지만 많은 삼,사십대가 그런 젊은 시절은 살았고 또한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젊은 시절이 지나버린 삼사십대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박상규라는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감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을까하고 한번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안내상이 연기한 왕은 독특했다. 피곤하고, 불안했고, 조급해 보였다. 대본 쓸 당시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개인 내부의 복수심을 억누르려는 군주, 기득권에 대항해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행에 옮기려는 군주, 좌절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군주, 이 정도가 대본 쓸 당시 캐릭터였다. 하지만 안내상씨는 대본 그 이상의 정조를 보여줬다. 그것은 대본을 뛰어넘는 배우의 개인 능력이 뿜어져 나온 것이라 생각하는데, '한성별곡'에서는 안내상씨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연기란 무엇이다라고 몸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작품과 함께 한성별곡은 안내상이라는 배우가 주목 받은 작품이 됐다. 안내상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일부 보도에 알려진 대로, 곽정환 피디가 KBS 드라마 '반올림' 뒷풀이 자리에 찾아가 안내상씨에게 부탁해 캐스팅이 성사됐다. 나도 대본 수정 차 곽정환 피디를 찾아갔다가 동석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영화 '음란서생'을 보고 임금 역할로 안내상씨가 좋을 것 같다 생각했던 차라 곽정환 피디를 거들게 됐고, 얼마 후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진이한이나 김하은 같은 신인들이 주연을 맡았다. 그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신인 배우가 주연을 맡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 캐스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이미 전작 '그들의 진실'에서 신인배우들과 함께 좋은 연출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인배우든, 기성배우든 곽정환 피디가 잘 해줄 거라 믿었다.

♣ 박진우 작가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TV리포트는 2007년 한해 드라마를 돌아보면서 작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청률과 별개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위 말하는 `명품 드라마`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작가들이 말하는 드라마를 통해 2007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박민정작가 인터뷰] "영애씨 욕설은 세상을 향한 분노"

♣ [이경희작가 인터뷰①] "사회의 편견 말하고 싶었다"

♣ [이경희작가 인터뷰②] "내게 죽음은 다른 의미"

♣ [이경희작가 인터뷰③] "극중 캐릭터는 내 자식 같아"

[진정근 기자 neodoors@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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