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풋풋함이 매력'..가요계 '소녀 열풍'

2007. 10. 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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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그간 이렇다 할 화제랄 게 별로 없었던 국내 대중가요계에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워낙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신인 그룹들이 많은 시대라, 전국민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 것만도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영순위의 '패러디' 대상으로 떠올랐고, 검색어 순위는 물론 가요 순위, 대학 축제 출연 연예인 인기 순위 등 각종 차트를 점령 중이다. 팬들은 '원걸 대 소시'로 나뉘어 서로 자신의 우상을 옹호하느라 여념이 없다. 팬들간의 라이벌 양상은 1990년대 중반 대학 농구의 '연대 대 고대'나 'HOT 대 젝키'의 거대한 대결 구도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새로운 소녀들의 등장

'그래봐야 SES와 핑클의 변종 정도 아니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들의 면면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일단 숫자가 많아졌다. 원더걸스는 5명이고, 소녀시대는 무려 9명이다. 나이대는 대폭 어려졌다. 최근 여성 그룹들의 연령대가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모두 '성인' 멤버는 없다. 원더걸스의 평균 나이는 17살. 19살 1명, 18살 2명에 나머지 2명은 15살(중3)이다. 소녀시대도 멤버 전원이 여고생이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팬층의 확대다. 기존의 소녀 아이돌 그룹들이 10~20대의 팬층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면, 이들은 10~20대의 동년배는 물론 초등학생들, 30~40대까지 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30대 이상 남성 팬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얼마 전 열린 원더걸스의 팬사인회에도 30대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출연해 이목을 끌었다. 기획사로 팬클럽 가입 문의를 하는 '아저씨'들도 많다. 원더걸스의 팬이라는 박모씨(39)는 "우리도 그들에게 '오빠' 뻘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삼촌'이라고 일컫는다"며 "조카처럼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기획하고 키워온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들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원더걸스의 기획사 JYP 홍보팀의 한수정씨는 "애초 기획 의도는 청순함과 성숙함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녀 동년배의 여성팬들에게는 '워너비'의 대상이, 남성팬들에게는 이상형으로 자리잡는 데 있었다"며 "지금도 주된 팬층은 10대 후반의 여성들이지만, 예상 외로 30~40대 남성들에게도 큰 반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왜 '소녀'인가

팬층의 확대는 '전국민적' 인기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30대 이상의 남성들이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의 새로운 '캐릭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그간 여성 그룹들을 장악하고 있던 '섹시' 코드나 '청순' 코드는 식상해진 지 오래다. SES, 핑클은 '청순함'을 앞세웠고, 이후 베이비 복스, 주얼리 등 수많은 여성 그룹들은 '섹시함'에 목맸다. 간간이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나 '씨야' 등의 그룹이 등장했지만 이렇다 할 특징은 찾기 힘들었다. 소녀 아이돌의 인기는 주춤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풋풋한 '여동생'들이 단체로 발산하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섹시함'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귀여움'은 대중들의 욕망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지금의 소녀 아이돌은 일부러 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초딩' '중딩'으로 보이는 앳된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며 "이것은 '섹시함'과는 다른 면에서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90년대 IMF 이전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세대 범위 안에서 문화를 소비했지만, 지금은 탈세대화해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적극적으로 새로운 아이돌을 소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작가씨는 "10년 전 SES와 핑클을 좋아했던 10~20대가 30~40대가 되면서 새로운 소녀 아이돌에 대해서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소녀 열풍의 중심에 있는 '원더걸스'의 인기는 기본적으로 '텔 미'라는 노래의 힘이다. 80년대 디스코풍의 이 노래는 중독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갖고 있다. 복고적인 분위기는 '나이 든' 팬들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했고, 천편일률적 R&B나 정교한 사운드의 제이팝적 아이돌 노래 일색이던 가요계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노래의 힘은 '소녀'들의 퍼포먼스와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귓가에 손을 대고 엉덩이를 절묘하게 흔들며 앳된 목소리로 "텔미텔미 테테테테테 텔미/나를 사랑한다고/날 기다려 왔다고" 노래하는 소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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