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미개하다고?

미국의 한 대학에서 언어학까지 전공했다는 한 교수가 하는 말이 "한국어처럼 시간개념이 없는 언어는 미개인이나 쓰는 말"이라는 망언을 해 나를 화나게 했다.
이 교수는 영어는 시간개념이 철저해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night'이라는 인사말이 세분화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Good night'은 인사로 치지 않는다. 이는 잘 자라는 작별인사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시간을 세분화하면 사실 오전 11시와 정오가 다를 수 있고 오후 1시와 3시는 천양지차로 사람이 하는 일이 다르다.
또 이런 인사말은 사람의 사는 환경이나 하는 일이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문명의 차이는 아니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복지대국 스웨덴을 보자. 스웨덴어에서는 북구에 백야가 있는 관계로 여름에는 낮이, 겨울에는 밤이 엄청나게 길다.
이 나라 언어로는 'Good afternoon'이 'Good afternoon'과 'Good evening'의 뜻 두 개를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후와 저녁의 차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하긴 이보다 위도가 낮은 아일랜드에서도 여름에 밤 9시가 되도록 해가 지지 않아 잠자는데 아주 힘들었던 적이 있다.
차라리 우리처럼 '진지 드셨어요?'라는 말을 쓰면 더 실질적이다. 어렵던 시절에 먹고 사는 것이 큰 일일 당시에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먼저 물어주는 것은 바로 신사도의 극치이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한국식을 따라가는 모양이다. 'Good morning'대신 만나자 마자 'What's up?(무슨 일 있어?)'라고 물으니 말이다.
'How are you?'는 이미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이다. 'What's up?'이라고 물으면 'Not much(별일 없어)'로 응수해야 한다. 만일 이 질문에 '우리 집에 어제 말이지…'라는 식으로 나가면 무슨 큰 일 난 줄 안다.
그런데 미국인과 한국인의 이런 인사법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상대의 고픈 배를 걱정할 때 미국인들은 이웃에 사는 친구 집에 도둑이라도 들면 집값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런 인사를 하는 것이다.
누가 미국을 자유의 나라라고 했는가? 이제 미국인들은 남의 집 일에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것이 일상화된 아주 속 좁은 국민으로 전락했다.
※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서규 통신원 wangsob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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