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가 가수일까..기획사의 주판알

2007. 7. 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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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SM엔터테인먼트가 기묘한 상품을 내놓았다. 9인조 여성 아이들 그룹 '소녀시대'가 그것이다. 요란스럽게는 론칭됐지만, 사실 소녀시대는 탄생 배경부터가 위태로운 기획이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시장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 아이들 그룹인건 맞다. 그러나 여성 아이들 그룹은 방향이 틀렸다. 아이들 산업은 기본적으로 유사연애 산업이다. 해당 아이들 그룹 성별의 반대 성별 대중을 집중 타깃으로 삼는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솔로로 등장해 양성에 어필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놓거나, '실력파'로 포장해 가는 수밖에 없다. 딱히 실력파 이미지 부여가 힘든 아이들 그룹은 유사연애 산업에 종속되어 버린다.

그러나 여성 아이들 그룹 타깃층인 남성층은 대중문화상품 구매욕구가 휘발된 지 오래다. 없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 자체적로도 이미 '천상지희'를 놓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쯤 되면 '안 되는' 여성 아이들 그룹에 집착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의중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전제 하에, 소녀시대는 그 자체 속성에도 워낙 문제점이 많아 기획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소녀시대가 일본 '모닝구 무스메' 카피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2년 전 'i-13'부터 언더로 등장한 '키로츠'까지 모닝구 무스메 카피는 한국에서 꾸준히 실패해 왔다.

대형 그룹은 본래 오타쿠성 강한 대중을 상대로 기획된다. 많은 멤버를 하나하나 헤아려줄 집중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은 그런 경향을 일정부분 보여 왔다. 그러나 남성은 다르다. 다시 말해, '슈퍼주니어'는 '될 수도 있'지만, 소녀시대는 힘들다는 것이다. 대체 왜 '하필이면' 모닝구 무스메 카피 밴드를 기획했는지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유난히 일본에 강한 SM 특성 탓에 해외진출용이라는 예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소녀시대에서는 막힌다. 일본 여성 아이들 그룹 시장은 버라이어티적 능력을 우선으로 삼는다. 일단 언어에서 현지인을 따라잡기 힘든 한국 여성 아이들이 버라이어티에서 제대로 활약하기란 어렵다. 또한, 일본은 현재 모닝구 무스메조차 무너지고 있는 전반적 여성 아이들 그룹 침체기다. 잘 돼야 협소한 오타쿠 시장 착지고, 아예 무시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대중문화 흐름이긴 하다. 그만큼 실패를 확정 예측하긴 힘들다. 그러나 그 기획의도 만큼은 더 헤아려볼 수 있다. 수많은 약점과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소녀시대를 론칭 '시켜야만' 했던 '진짜' 기획의도 말이다.

현재 정황으로 보아 '진짜 의도'는,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으로 포문을 연 'SM픽쳐스'와 연결 짓는 것이 자연스럽다. SM픽쳐스는 시작단계에서 큰 실망감을 줬다. 첫 작품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은 아무리 봐도 '고정팬 전용' 초저예산 프로모션 비디오였다.

그러나 SM픽쳐스는 근래 들어 사뭇 진지한 행보를 걷고 있다. 먼저, 히가시노 게이고의 걸작 미스터리 소설 '백야행' 영화화를 다음 프로젝트로 잡았다. 50억원 규모로 '제대로' 영화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성공적인 한류 뮤지션 보아의 미국 진출은 음악이 아니라 영화가 될 전망이다. 할리우드 진출시 SM픽쳐스가 창구가 되리라 공언했다. 하다못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조차도 포기하지 않았다. 유난히 적극적인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으며, 주연 슈퍼주니어로 하여금 "우리의 꿈은 영화배우"라는 코멘트까지 내뱉게 했다. 실제로 영상산업 쪽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다.

선도적인 전략이다. 그리고 동시에, 서글픈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음반시장은 끝났다. 음원시장도 유통과정의 문제 탓에 수익성이 적어 '껌장사'라 불릴 정도다. 적어도 단기간에 부흥될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대중음악산업 자체가 초장기적 불황에 허덕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아이들 산업의 '중심 축'을 옮겨봐야 할 때다. 어차피 비주얼 시대가 탄생시킨 것이 아이들 산업이다. 아예 비주얼로 중심을 옮기는 게 정확한 현실인식이며 미래 방향이다.

소녀시대는 SM이 설정한 새로운 아이들 산업 방향, 즉 영상산업 중심화의 선언격 기획일 수 있다. SM의 영상산업은 기획사+콘텐츠제작사 형태다. 소속 연예인들을 세트 캐스팅시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러티브형 영상 콘텐츠는 남성 연예인만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여성 연예인들도 필요하다. 남성 연예인만 자사 충당하고, 여성은 외부에서 데려오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나 콘텐츠를 통해 여성 연예인이 뜨면 남 좋은 장사만 시켜준 셈이 된다. 기획사+콘텐츠제작사 구조에선 두 분야의 밀착된 윈윈이 목적이다.

온전한 윈윈을 거두기 위해선, 적어도 SM이 현재 보유한 남성 연예인에 준하는 여성 인원이 필요하다. 띄울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는데 투자를 아끼는 건 얕은 수완이다. 실패한 카피 모델이건 뭐건 중요치가 않다. 어차피 음악활동은 네임밸류 확보용이다. 대형 여성 아이들 그룹이 필요하다. 3,4명짜리 작은 그룹을 몇 개 난립시키는 것보다, 한 팀으로 묶어 내놓는 것이 비용 면에서나 관리 면에서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룹 네임밸류로 인지도를 얻어 곧장 영상산업으로 투입된다.

소녀시대 멤버 윤아(17)는 그룹 데뷔 이전에 벌써 TV드라마에 캐스팅돼 연기자로 먼저 선보여졌다. 다른 멤버들도 대부분 CF모델 출신이며, 연기가 가능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애쓰고 있다. '실력파', '가창력' 등을 강조하려는 근래의 여성 뮤지션 홍보 트렌드가 소녀시대에는 전혀 없다. 그런 이미지 설정은 오히려 영상산업 진출 시 걸림돌이 된다.

음악 활동을 굳이 포석으로 깔아놓는 이유도 자명하다. 영상 콘텐츠에 종속된 스타는 이미지 전환이 더디고, 까다롭다. 홍보용 언론플레이도 콘텐츠 종영과 함께 힘을 잃는다. 그러나 음악활동을 깔아놓으면 영상 콘텐츠 사이사이의 틈새를 쉽게 메울 수 있다. 한 장르에서의 실패가 장기적 영향을 미치지 않게도 유도한다. 음악과 영상은 전혀 다른 장르인 탓에 이미지 전환도 쉽게 받아들여진다.

동일 이미지가 아니니, 노출도와 비례한다는 이미지 소진도 걱정을 던다. 무엇보다, 모든 계층, 모든 장르편식층에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 산업은 본래 음악과 영상, 양쪽으로 승부하는 것이 정석이다. 다만, 음악활동 수익모델이 현격히 부실한 여성 아이들 그룹은, 초반 인지도 확보용 빅뱅 이후 음악활동 투자비용을 줄여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똔똔'은 되는 남성 아이들 그룹 음악활동과 다른 부분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종합영상회사의 타이틀을 건 SM픽쳐스는 영화만 노리고 만든 회사는 아닐 것이다. 향후 각종 TV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의 외주제작사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사보다는 오히려 TV외주제작사로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 그룹 멤버의 인지도는 유료 영상매체보다 무료 영상매체에서 특효를 발휘한다. 유료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은 '신뢰도'다. 그러나 무료라면 '인지도' 정도로도 충분히 소비 가능하다. 또한, TV는 '스타의 영역'이라기보다 '스타를 발굴해내는 영역'이다. 그 속성상 TV는 늘 '새 얼굴'을 필요로 하며, 여기서 '새 얼굴'이면서도 '안전한 새 얼굴'로 꼽힐 수 있는 것이 아이들 그룹 멤버다.

이들은 신인배우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인지도를 지녔다. 그만큼 콘텐츠 지목도와 언론 관심도를 보장해 주기도 한다. 이런 이점이 있음에도 SM픽쳐스가 영화부터 시작한 것은, 진입장벽이 방송만큼 높지 않은 까닭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방송으로의 진출까지도 고려한다면 여성 연예인의 다수 확보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물론 SM식 아이들 산업 전략이 영상 산업에서도 제대로 먹혀들어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SM은 일본 아이들 기획사 전략을 롤모델로 삼아 성장한 회사다. 그러나 쟈니스, 에이벡스 등 SM이 롤모델로 삼는 일본 기획사들 중, 어느 곳도 SM처럼 전폭적인 영상산업 중심 이동을 꾀하지는 않고 있다. 불황이긴 해도 아직 한국만큼 음악산업이 죽어버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SM은 SM픽쳐스를 통해, 아마도 최초로 '롤모델이 없는' 사업방향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위험부담이나 시행착오 확률도 생긴다.

만약 SM식 아이들 전략이 영상산업에서도 먹혀들어간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염려스런 일이 된다. 아이들 산업은 극단적인 대중 영합산업이다. 장르의 본질을 파괴하고, 그 상업적 속성만을 취해 확대·확장시키는 산업이다. 뿌리가 빈약해 항상 위기론에 시달리는 한국영상산업에 이런 대중 영합적 발상이 주류가 된다면, 더욱 빈약해진 뿌리에 열매만 너무 커 위태로운 양상이 심화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크게 도끼눈을 뜨고 지켜볼 필요도 없을 듯싶다. 어찌됐건, 현재 침체 위기에 놓인 한국 영상산업 분야에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래 남보다 '먼저' 흥미로운 전략들을 쏟아내는 공격적인 기업의 행보는, 그 자체로 산업 전체에 자극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관련사진 있음>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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