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선에서 태안선까지 해저발굴의 궤적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침몰 고선박이 또 한 척 발견됐다. 이번에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가 준 선물이다. 이 선박에는 수천 점에 이르는 각종 청자가 실려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저나 저수지를 조사 대상으로 삼는 수중고고학이 우리나라에서는 고선박 발굴과 궤를 같이해온 점은 특이한 대목으로 꼽을 수 있다.
수중발굴이 반드시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이 분야 고고학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서는 선박 외의 유적과 유물을 대상으로 삼은 조사 또한 활발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연근해에서 고선박과 연관되지 않은 조사가 시도된 적은 없다.
일천한 역사와 조사인력을 감안할 때 한국 수중고고학은 적지 않은 개가를 올리고 있다.
고고학계에서는 신안선 발굴이 수중고고학의 탄생을 알린 신호탄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1976년 발견 이후 1984년까지 조사가 진행된 신안선은 세계 수중고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성과였다. 1323년 원(元)나라 지배 치하 중국의 경원(慶元)에서 무역품을 가득 싣고 일본의 하카다(博多)와 교토(京都) 쪽으로 향하던 이 국제무역선은 지금의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좌초, 침몰했다.
여기서 건진 유물만 2만여 점. 신안선 선체는 보존처리와 복원에만 무려 20년이 걸렸다.
하지만 신안선은 '중국국적'이란 점에서 한국고선박 출현에 대한 갈망은 높았다.
물론 신안선 발견 직전인 1975-76년 경주 안압지 발굴에서 통일신라시대 목선(木船)을 발굴되긴 했지만 해양을 항해하던 선박이 아니라 저수지용 '유람선'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고선박에 대한 갈증은 1984년 완도선이 출현함으로써 비로소 풀렸다. 11세기 무렵 고려선박으로 추정되는 완도선은 최근의 태안선에 이르기까지 고려선박 발굴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완도선이 그런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완도선을 이어받은 주인공은 목포 달리도선. 1995년 발굴된 이 선박은 고려말기인 14세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학계는 본다.
이후에도 고선박 발견 소식은 한동안 뜸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급변했다.
군산 십이동파선(2004년)을 시작으로 신안 안좌선(2005년), 안산 대부도선(2006년)에 이르기까지 3년 동안 매년 고려시대 침몰선박이 1척씩 발견, 인양됐다.
주꾸미 어부가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 대신 고려청자 수십 점을 건져 올렸을 때, 연합뉴스는 청자 발견 상황으로 보아 "또 한 척의 고려시대 선박 발굴을 신고할 채비를 하고 있다"(2007.6.4 보도)고 예측 했는데 그런 예상은 사실로 판명됐다.
이번 태안선 발견으로 2004년 이후 매년 고려선박 인양이라는 진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비록 해저는 아니지만 육지에서도 고려시대 선박이 발굴됐다. 2004년 3월31일 전남 나주시 영산강변에서 고선박이 발견된 것이다.
나아가 해외에서도 고려선박이 발견됐다. 고려가 조선왕조로 교체되기 직전인 14세기 중ㆍ후반 무렵, 중국 산둥반도 최북단인 펑라이시(봉래시.蓬萊市) 소재 고대 항구 유적인 봉래수성(蓬萊水城) 해저에서 침몰 고려선박 2척이 2005년 발굴 인양된 것이다.
이로써 고려시대 선박은 이번 태안선까지 모두 9척이 확인됐다.
이 외에도 2005년 국립김해박물관이 발굴조사한 경남 창녕군 비봉리 유적에서는 무려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초기 통나무배가 출현하기도 했다. 지금은 해안에서 수십㎞ 이상을 떨어진 이곳이 신석기시대에는 바다와 육지가 인접한 곳이었음이 발굴조사 결과 밝혀졌다. 따라서 이 신석기시대 통나무배는 바다를 항해하는 데도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수중고고학 발굴에서 또다른 특이한 대목은 안압지선을 제외하고는 삼국시대 선박이 전혀 실물로 확인되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이는 워낙 역사가 오래되어서 그렇다고 해도, 고려시대보다 훨씬 현시대와 가까운 조선시대 선박 또한 단 1척의 실물도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한 때 거북선을 찾는다고 해군까지 나서 남해안 일대 해저를 샅샅이 뒤졌지만 실패하고, 그런 의욕이 지나쳐 가짜 거북선 총통까지 만들어내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실물 숫자가 적었을 거북선은 고사하고 그와 동시기에 활용된 판옥선은 물론이고, 이순신에게 무참히 깨져 침몰했다는 그 많은 왜선(倭船)조차 아직까진 단 1척도 건지지 못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멸망 3년 뒤인 663년, 백촌강(금강) 어구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백제부흥을 돕기 위해 출몰한 왜선 수백 척이 나당 연합군에 전멸했다고 하지만, 꽤 많은 해저탐사가 금강 하구 일대 해저에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짧은 역사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한국 수중고고학은 여전히 갈 길이 험난하다는 것이 문화유산계 중평이다. 무엇보다 전문조사기관이 문화재청 산하 해양유물전시관(목포 소재) 하나인 데다, 인력과 예산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이 유물전시관은 이미 각지에서 건져 올린 고선박으로 포화상태다. 선박 실물은 고작 신안선 1척만 전시 중이다.
나아가 문화재청은 해양유물전시관을 박물관으로 변경하려 했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의 반대로 박물관이 아닌 전시관이란 어정쩡한 명패를 유지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측은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인구당 박물관ㆍ미술관 숫자가 가장 적다"고 목청을 높이며 증설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해양박물관 출범에 대해서는 "왜 문화재청이 박물관 업무까지 넘보려 하느냐"는 이유를 달아 좌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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