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 우리에게도 이런 철학자가 있다

2007. 7. 11. 19: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우리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확신합니다."(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그의) 데이터(자료)에 충실한 철학은 지금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서양으로 역수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최화 경희대 철학과 교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이 나라에 존재했다니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윤 대표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사상이라는 게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이 스승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여긴다.

서양 형이상학의 거목 박홍규(1919~1994) 교수의 유고집 다섯 권(민음사)이 12년 만에 완간됐다. 5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강독〉이 나옴으로써 박 교수 타계 이후 13년 만에 유고집이 완성된 것이다. 1·2권인 〈희랍철학논고〉와 〈형이상학강의1〉은 1995년에, 3·4권인 〈형이상학강의2〉와 〈플라톤 후기 철학 강의〉는 2004년에 나왔다.

1946년부터 35년 동안 서울대 철학과에 재직한 박 교수는 살아생전 저서를 내지 않았다. "스스로 공부가 모자란다고 생각하셨습니다."(윤 대표)

박 교수는 논문도 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석·박사 학위는커녕 학사 학위도 없다. 서울대 교수 재직 동안 쓴 7편의 논문도 주로 부교수, 정교수가 되기 위한 '요식적인' 글이었다. 김남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논문도 직접 쓰지 않으시고 선생님은 불러 주고 학생들이 받아 썼습니다." 논문이나 책을 쓰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으셨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유를 끊어내는 일을 학생들이 맡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우리만 들으면 안 될 강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고집은 이 녹음테이프를 풀어낸 것이다. 지금은 내로라 하는 중진 철학자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이 대학원 재학 시절 스승과 함께 철학의 근본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의 철학은 왜 위대한가?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 교수가 바로 '자네 안경을 벗고 그 이론을 가지고 안경을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윤 대표)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은 철학은 의미가 없다는 게 박 교수 사유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실증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수학과 심리학, 생물학 등을 두루 섭렵한 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삼아 사유를 풀어놓는 철학 방식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그가 보기에 '코기토'(cogito·나는 생각한다) 개념을 들고 나온 데카르트(1596~1650)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갈릴레이(1564~1642)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데이터' 없이 생각만 하는 사람은 중세의 수도사처럼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험을 했다. 변하는 데이터에 맞춰 학설도 계속 수정할 수밖에 없다. '보수'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다.

"(박 교수는) 데이터에서 출발한 뒤 추상화 과정을 거쳐 원리로 가는 것이 플라톤 이후 학문 정신이라고 보았습니다."(최 교수) 윤 대표는 박 교수의 기획을 이렇게 요약했다. "박 교수는 공간과 시간적 사유를 겸한 플라톤(기원전 429?~347)의 사상과, 공간적 사고를 펼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와 시간적 사고를 펼친 베르그송(1859~1941)의 거대한 사상을 이어받아 이를 종합하려 했습니다."

최 교수는 박 교수 사상의 또 다른 특질로 "무궁무진한 사유의 유연성과 지칠 줄 모르는 분석력"을 꼽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제대로 읽는 법' 곧 분석력을 강조했다. 플라톤 저작의 번역이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부가 덜 되었다고 판단한 스승이 말렸기 때문이다. 경직성과 습관성도 경계했다.

그 때문에 박 교수가 칸트를 비판하는 중요한 논점 중의 하나가 주관이라는 생명체 기능 속에 범주라는 경직된 틀을 놓았다는 것이라고 최 교수는 밝혔다.

유고집의 마지막 권은 1981년 3월부터 1983년 12월까지 3년에 걸쳐 매주 토요일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대학원생들에게 강독한 내용이다. 박 교수는 베르그송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라고 사유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정태적 형이상학'과 반대 지점에 있었으나, 생물학 등 자연과학의 결과를 토대로 삼아 철학적 사유를 펼친 점 등을 들며 그를 플라톤 철학의 적자로 보았다.

후학들은 유고집을 프랑스어나 영어로 번역해 서양에 박 교수 철학을 역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0월에는 프랑스의 베르그송 연구자들을 초청해 〈창조적 진화〉 출간 100년 기념 학술대회도 열기로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