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 전봉준, 그는 근대적 정치체제를 꿈 꿨다
"국사를 한 세력가에 맡기는 건 큰 폐해… 몇사람의 명사가 함께 정치를 맡아야"
정치의식·혁명성 적극적으로 해석 눈길
녹두 전봉준 평전 / 김삼웅 지음 / 시대의 창 발행ㆍ568쪽ㆍ1만6,500원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힘이 강할수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영웅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 역시 지배세력에 의해 오랫동안 금기시된 민중의 영웅이었다.
동학혁명에 참가한 농민군이 한 때 동비(동학의 비적)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 동학혁명이 동학난으로 통칭됐던 것처럼, 민중의 계급적 각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 때문에 전봉준의 이름에는 '불온'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그 전봉준을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불러왔다. 저자는 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이미 김구, 신채호, 한용운, 김창숙 등 민족주의자의 삶을 평가해 책으로 낸 적이 있다.
<녹두 전봉준 평전>은 그 동안 축적된 동학혁명과 전봉준에 관한 폭 넓은 연구를 섭렵해 한 평범한 농촌지식인이 근대 민중사의 절정인 동학농민혁명을 진두지휘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도 전봉준의 정치의식에 관한 적극적인 해석이 특히 눈길을 끈다. 노비제 폐지, 과부의 재가허용 등의 요구사항을 내건 폐정개혁 12개조에 나타난 동학혁명의 반봉건적 의식이나 '척왜(斥倭)'의 기치를 걸었던 혁명의 반제국주의적 대의는 잘 알려져 있지만 혁명의 최고 지도자가 어떤 정치체제를 열망했는지는 간과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왕권을 타도대상으로 삼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점을 들어 동학혁명의 한계를 거론하는 학자도 있지만 저자는 일본 신문의 기사와 공초(신문조서) 등을 꼼꼼히 살핀 뒤 전봉준이 분명히 근대적 정치체제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취조 과정에서 전봉준은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크게 폐해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몇 사람의 명사에게 협합(協合)해서 합의법에 의해서 정치를 맡기게 할 생각"이라고 밝히는데 저자는 이것을 근대적 대의민주주의, 나아가 공화주의체제에 대한 전봉준의 비전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한다.
연대기의 나열로 무미건조하기 일쑤인 여타 평전과 달리 전봉준의 일생을 소재로 한 빼어난 문학작품을 인용한 점도 돋보인다.
관군과 농민군의 대혈전이 벌어졌던 황토현 전투를 묘사한 대목에는 '한 시대의 /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 고독과 공포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시작하는 김남주의 <황토현의 노래>가 삽입돼 있다.
형형한 눈빛으로 최후를 맞은 전봉준의 죽음에는 '저 들판 끝 바람 앞에 선 사내하나 / 앙상한 뼛골로 우뚝 서 있는 / 서서 죽은 사내의 정수리에 들입다 꽂히는 바람아'로 시작하는 문병학의 시 <전봉준의 눈빛>이 수록돼 있다.
그래서 평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웅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나 전봉준이 동학의 접주였는지, 대원군과 내통했는지 등 학술적 쟁점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저자는 "전봉준은 개혁을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 결국 망국의 길을 간 지배층에 온몸으로 경고한 인물"
이라며 "전봉준 사상의 근대성, 혁명성을 부각하는데 주력했다"며 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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