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논란 속의 '품위있는 죽음'

입력 2007. 6. 5. 08:12 수정 2007. 6. 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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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더 이상 병이 나을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생명 연장에 대한 논란이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

최근에는 본인의 의지로든, 혹은 가족의 의사를 통해서든 더 이상의 고통을 없애고 직접 목숨을 끊는 경우에 대해서도 찬반이 분분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적극적으로 생명연장을 포기하는 경우는 커녕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에까지도 소위 '존엄사'에도 법적인 해석이 분분해 이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살인의사, 잭 케보디안 = 최근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투입, 안락사를 도와줘 2급살인죄로 기소돼 미시간 감옥에서 8년여를 복역해 온 소위 '살인의사' 잭 케보디안 박사가 출소했다는 사실이 미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그가 출소함에 따라 미국내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일고 있다. 미국에서 적극적인 안락사는 오리건주에서만 합법적인 행위이고, 그 외 다른 주에서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외 국가에서는 스위스와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합법화 하는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안락사는 물론이고,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소극적 안락사', 혹은 '존엄사'로 불리는 행위조차도 불법의 위험이 있어 의사들이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해미르의 정용주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는 촉탁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소극적인 의미의 안락사도 살인죄의 혐의에서 100%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 논쟁의 발단, 보라매병원 사건 = 우리나라에서 존엄사가 논란이 된 것은 지난 1998년 5월 남부지원 형사 1부에 의해 '치료비가 없다'는 가족의 주장에 따라 중환자를 퇴원시켜 의사까지 기소된 보라매병원 사례 발생 이후다.

1997년에 벌어진 이 사례는 58세의 환자가 우측 측두부 및 두정부의 경막외 혈종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의사가 환자 가족을 찾지 못하고 환자를 데려온 집주인에게도 서명을 거부당한 뒤 담당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응급 수술을 시행하면서 벌어졌다.

수술 후 나중에 찾아온 환자 부인에게 의사는 응급 수술을 하게 된 경위, 수술 진행 상태, 수술 후 상태 등을 설명했고 부인은 대체로 이를 수긍했으나 다음날 경제적 이유로 인해 치료를 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담당 전문의는 담당 전공의에게 퇴원을 만류 했으나 부인이 동의도 없이 수술해 놓고 퇴원도 못하게 한다며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했다.

더 이상 상호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담당 전문의는 담당 전공의에게 상황을 주지시킨 뒤 귀가서약서를 받게 한 뒤 퇴원시켰다.

당시 환자는 간이형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자가 호흡이 가능했으나 이를 제거한 후 얼마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환자의 부인은 장례비 보조를 받기 위해 관할 파출소에 사망 신고를 했으나 병사가 아닌 변사 사건으로 처리되어 재판을 받았다.

◇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 법원은 피해자의 부인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 진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담당 전문의와 담당 전공의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 각각 징역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이라 불리며 이후 의사들이 진료를 포기할 경우에 대한 사례로 여겨져 지금까지도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퇴원을 꺼리게 되는 방어진료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권용진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의식불명 환자 보호자의 입장을 존중한 의료진의 판단을 살인방조죄로 본 것"이라며 "의사가 보호자 및 법적 대리인 등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 암센터 허대석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의료 집착적 행위'의 극단에 서 있다"며 보라매 사건 이후 입원환자가 사망할 때 까지 퇴원시키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 의학 발전은 눈부셔도 법은 '그때 그 자리' = 사실 이같은 존엄사의 경우 독극물 등의 통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인 안락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치료 거부다. 그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며 존엄사를 선택했다.

존엄사를 도와주는 호스피스 기관들 중 천주교 관련 기관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허대석 교수는 회생 가능성이 없지만 장기 연명이 가능한 경우는 선진국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그 정도도 논의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도 의사들의 판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우선, 의료적 진보는 인공호흡기 등을 통해 일부 환자의 경우 무리해서 연명시킬 수 있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법은 발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 허 교수는 국내의 사회적 분위기상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의사와 보호자 사이에서 가치관에 비춰 결정하다보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의사들이 필요 이상의 방어 진료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안락사의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주지 않는 법안도 문제점으로 제기한다.

의사가 환자 본인이나 환자 가족과 의논, 소신껏 처리하려 해도 기준이 없어 결국 의료 사고화 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정용주 변호사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입법을 통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다.

그는 판례에 의해 판결이 내려지는 보수적인 국내 분위기상 판례가 있기까지 계속해서 이 문제는 논란의 선상 위에서 내려 올 수가 없다며 입법을 통한 법률 제정 등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근 기자 windfly@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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