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노무현 대통령 5.18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사

2007. 5. 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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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노무현 대통령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스물일곱 돌이 되었습니다. 먼저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임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고문과 투옥, 부상의 후유증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 고통 받고 계신 피해자 여러분,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고 통한의 세월을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충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역사의 고비마다 시대적 사명을 앞장서 실천해 오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5.18은 역사에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80년 광주에서 타오른 민주화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군부독재를 무너뜨렸습니다. 군부와 언론에 의해 폭도로 매도되어 무참히 짓밟혔던 5.18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로 부활했습니다.

5.18 그 날의 광주는 목숨이 오가는 극한상황에서도 놀라운 용기와 절제력으로 민주주의 시민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너와 내가 따로 없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주먹밥을 나누었습니다. 시민들의 자치로 완벽한 민주질서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세계 시민항쟁의 역사에 유례가 없는 민주시민의 모범을 남겼습니다.

이제 이 같은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불의한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큰 물줄기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이 도도한 진보의 흐름을 가로막거나 되돌리지 못할 것입니다.

4.19혁명, 10.16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의 역사가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

걱정스러운 일도 없지는 않습니다.

요즈음 다시 민주주의의 역사를 냉소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세력이 무능하다거나 실패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주세력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무능하다는 말입니까? 언제와 비교해서 실패했다는 말입니까? 군사독재가 유능하고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까?

민주세력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안보, 모든 면에서 87년 이전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독재 정권을 퇴장시키고 민주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루고, 독재체제에서 구축된 특권과 반칙,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했습니다. 정경유착과 권력형 부패의 고리를 끊어냈습니다. 권력기관은 제자리로 돌려 보내고, 권력과 언론의 관계도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유착은 없을 것입니다. 과거사 정리로 역사의 대의를 바로 잡고 있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창의를 꽃피우고 있습니다. 진정한 국민주권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무엇입니까?

군사정권의 경제성과를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업적은 부당하게 남의 기회를 박탈하여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업적이 독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업적이었다는 논리는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87년 민주화 이후부터 우리 경제는 체질을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IMF 위기는 개발독재의 획일주의와 유착경제의 잔재를 신속하게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는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후 우리 경제는 인재중심의 지식기반 경제, 혁신주도의 경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고, 개방을 통해 세계적 흐름에도 한 걸음 앞서가고 있습니다. 경제규모, 과학기술, 산업경쟁력, 환경, 문화 분야 모두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습니다.

수출 4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의심 없이 3만 달러 시대를 공약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창의가 꽃피는 사회,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라야 의욕 넘치는 시장, 혁신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민주정부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고 전국민 국민연금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복지투자를 사회투자 전략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더불어 잘 사는 균형사회를 만들자는 전략입니다.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전 2030'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또한 민주정부가 하는 일입니다.

평화주의를 확실한 대세로 굳혀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오랜 냉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화해협력의 길로 확실한 방향을 잡았습니다. 핵심적인 군사요충지였던 개성공단이 한반도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반세기 이상 끊어졌던 남북한의 철길도 어제 다시 열렸습니다. 이렇게 가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더욱 굳어지고 한국경제에 새로운 기회도 열릴 것입니다.

또한 한미관계가 일방적인 의존관계에서 상호 존중의 협력관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주국방도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여전히 공고합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달라진 것입니다.

이 모두가 민주정부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민주세력이 이룬 성취입니다. 민주세력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아직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아직 남은 일이 있습니다. 아직도 지역주의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 정치에 살아 있습니다.

5년 전 이 곳 광주시민들은 참으로 훌륭한 결단을 해 주셨습니다. 영남 사람인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결단에 보답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이제 국정 운영과 정부 인사에서 지역 차별을 한다는 비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남도 화답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의 선거에서는 영남에서도 30% 내외의 국민이 지역 당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걸어볼만한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선거제도가 합리적인 제도였더라면 상당한 당선자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기에서 다시 후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역주의는 어느 지역 국민에게도 이롭지 않습니다. 오로지 일부 정치인들에게만 이로울 뿐입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정책과 논리로 경쟁하는 정치,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의 뜻을 모아가는 정치, 정치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치, 그런 수준 높은 정치를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욕설과 몸싸움, 태업과 공전을 일삼는 국회, 공천헌금과 정치부패를 반복하는 정치가 없어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공천헌금 비리가 118건에 이르렀습니다. 이대로 가면 부패정치가 되살아 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대통령의 중책을 맡긴 것은 제가 일관되게 지역주의에 맞서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저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 더 남은 힘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다시 국민 여러분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깊은 헤아림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민 여러분,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역사를 멀리 내다보고,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바른 역사, 정의로운 역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5·18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깁시다. 마음과 힘을 모아 성숙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선진한국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갑시다.

이곳에 계신 5·18 영령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5월 18일 대통령 노무현

정리=권대경기자 kwond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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