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이주실 "내겐 무대가 藥"

2007. 5. 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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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배우의 뺨이 자꾸만 발그레해진다. 아파서도 더워서도 아니다. 맡은 배역을 설명하며 막 사랑에 빠진 스무살처럼 생기가 돋는 배우 이주실(63·사진). 그는 12일 시작하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강인한 모정과 생활력을 보이는 '한나'를 연기한다. 1993년 암선고를 받은 후, 암환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에 간간이 서긴 했지만 정식 무대 복귀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배우로 다시 서는 첫 작품이에요. 돌아오니까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네요. 신세계를 만난 듯이 매일매일 새로워요."

2시간가량의 공연 동안 그는 거의 모든 신에 출연한다. 열정이 뜨겁다 해도 달라진 제작환경에 적응하며 노래와 연기, 춤을 함께 소화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70년대 후반 '한네의 승천' 등 3편의 음악극에 출연하긴 했지만 요즘 방식의 뮤지컬과는 다르다.

그는 "겁없이 뛰어들었다"며 웃었다. "사실 우리 세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익숙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이사람들이 날 뽑다니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연습 들어가고 나서 '앗 뜨거워' 했어요. 경력이 얼만데 나이값은 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 먹고 있죠."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호흡에도 신경쓰고 있다. 그는 "젊은 배우들과 너무 행복하게 '놀고' 있지만 지켜줄 부분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연습하다 저녁 때가 되면 눈이 붉어지기도 해요. 그런 부담을 주는 것도 같은 배우로서 할 짓이 아니죠. 연습 끝나고 애들이(배우들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도 하지만 제가 서로를 위해서 그러지 말자고 해요. 일단 전 연습에만 몰두하고 사적인 활동은 중단하는 게 모두를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투병생활 동안 무대활동은 뜸했지만 사회적 활동은 활발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에서 15년 넘게 교사로 일하며 '인성변화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버려진 농가를 개조해 만든 숙소에서 시작할 때부터 그는 동료 교사들과 비닐을 덮고 자며 숙식을 함께했다. 이번 공연 때문에 잠시 나와있지만, 아직 그의 짐은 학교에 있다. 소년원 두 곳과 교도소, 재활원 등도 다니며 소외계층을 만나왔다. "나이 좀 많다고, 좀 유명하다고 함부로 그네들 인생에 뭐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부도 새로 했다. 2005년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 임상사회사업을 공부했고, 현재 원광대 예술치료학과 박사과정 1학기를 밟고 있다.

"의식적으로 뭘 주입하려거나 바꾸려고 하면 안돼요. 같이 놀고 같이 얘기하고 그러다보면 상대도 나도 함께 치유되는 거죠."

그는 상담을 하러 갈 때면 "마주보고 앉지 않고 꼭 옆에 앉아서 같은 시선으로 보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누구를 만나든 '나는 너를 이해해'라고 말하지 않아요. '나는 너랑 같아'라고 하죠. 우리 다 상처가 있고 힘든 사람들이잖아요."

이번 작품 역시 그에겐 "훌륭한 치유과정"이다. "극중 인물들도 서로에게 배우고 치유받거든요. 뭐든지 인간관계와 놀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긴 투병생활을 멋지게 견디며 그가 지녀온 '사랑끈'에 대해 들려줬다. "전요, 이 세상에 사랑 하나로 못고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부모든, 이웃이든, 친구든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집중해서 사랑을 쏟아주고 끈이 되어주면 돼요. 제가 아플 때도 여러가지 끈이 저를 잡아줬거든요. 그 끈이란 게 실은 자기가 만들기 나름이에요. 자기가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이 세상에 끈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암은 완치됐다지만,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해도 괜찮을까. "건강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거죠. 요즘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지, 친구들은 무릎 때문에 계단도 피해가는데 전 무대에만 서면 목소리가 확 터져요."

〈글 장은교·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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