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희·일엽·혜옥·수옥.. '한국 불교의 반쪽' 재조명

2007. 4. 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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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스님이 만해스님의 오도송인 '흰 눈 속에 복사꽃이 조각조각 흩날린다'는 구절을 들어 대중에게 물었다. "흩날린 꽃송이는 어느 곳에 있는가." 한 비구니승이 단정히 일어나 대답했다. "흰눈이 녹아지니 한 조각 땅입니다." 만공스님이 칭송했다. "다못 일편지를 얻었도다."

우리나라 근현대 비구니 선맥의 중흥자로 평가되는 법희스님(1887~1975)이 법을 인가받는 장면이다. 한 젊은 납자가 만성스님(1897~1975)을 찾아왔다. "도를 닦음이 있습니까." "닦은 바가 없다." "생사를 해탈함이 있습니까." "누가 너의 생사를 줄로 묶어놓았더냐!" "성불함이 있습니까." "본래 범부가 없노라."

비구와 비구니는 불교 출가 승단의 양날개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비구니 스님들은 비구 중심의 불교 현실 때문에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전국비구니회가 펴낸 '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예문서원)은 한국 비구니 승가의 역사와 비구니 큰스님들의 행적을 꼼꼼히 정리한 책이다. 제1부에서는 비구니 강원 발달사, 비구니 선원 '청규',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비구니들의 삶과 수행, 그리고 국제화시대 비구니의 위상과 역할 등 비구니 승가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동학사, 봉년사, 삼선승가대, 운문사, 청암사 등 현재 비구니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5대 강원 등이 소개된다. 비구니 선원은 1928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시작돼 현재 3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제2부에서는 법희, 일엽, 혜옥, 수옥, 계명, 인홍, 봉려관, 정행스님 등 한국 비구니 선지식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세속에서 문필가로, 신여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일엽스님(1896~1971)은 38세 때 수덕사 견성암에서 한소식을 접한 후 25년 동안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금룡(1892~1965)·혜옥(1901~1969)·수옥(1902~1966)스님은 근대 이후 '3대 강백'이자 '3대 법사'로 불린다. 금룡스님은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으며, 운문사 비구니강당을 개설했다. 혜옥스님은 길을 가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아이구, 송장 타는 냄새가 나는구나"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수옥스님은 내원사를 동국제일선원으로 키워냈다. '전국비구니회'의 초대 총재였던 석남사 인홍스님(1908~1977)은 '가야산 호랑이'인 성철스님을 빗대 '가지산 호랑이'로 불렸다. 해인사 삼선암 반야선원 선원장이었던 정행스님(1902~2000)은 99세 때 열반게송을 남기고 입적했다.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감이여(如是來 如是去兮)/백년의 생애가 한순간이로다(百年生涯刹那間)/만리 하늘은 늘 한빛이요(萬里長天一樣色)/청산은 그대론데 흰구름만 흐르네(靑山不動白雲流)'.

〈김석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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